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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주자학과 양명학
: 시대의 요청과 새로운 질서, 같으면서도 달랐던 두 시선
AK커뮤니게이션즈에서 출판한 시마다 겐지 교수님의 <주자학과 양명학>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 주자학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 읽게 된 책이다.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출판한 서적들의 공통된 특징은 상당히 전문적이고 전문가들이 남긴 기록을 출판한 책들이 다수라는 점이다.
이제 3번째 읽게 된 책이 <주자학과 양명학>인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상당히 학구적인 책이다.
저자인 시마다 겐지 교수는 양명학으로 학위를 받은 왕양명 전문가이고, 교토대학교의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책은 1964년 교토대학교 동양사 수업을 위한 강의 내용을 책으로 펼치며 일반인을 위해 쉽게 풀어쓴 책이다.
물론 나로서도 한번 읽어서는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고, 며칠 동안 주자학과 양명학에 관해 생각하는 기회였다.
조선의 사대부가 받아들인 주자학에 관해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내용을 되집어보면 주희가 기존의 유교 학문을 집대성 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럴줄 알았으면 열심히 공부할걸 엄청 후회하면서 그럼 주희가 집대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아다시피 유학의 시초는 기원전 6세기 춘추전국시대 공자와 맹자 시대의 저작물을 통해 처음 시작되었고, 이를 유학이라 부른다.
중국 최대의 사상가 주자
주렴계-정명도, 정이천-장횡거로 이어져 전개되어온 새로운 사상, 다시 말해서 당시의 용어로는 이른바 ‘도학’은 송나라가 남방으로 천도하여 남송으로 되었을 무렵에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이미 상당한 신봉자들을 얻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주자(주희 1130~1200)가 나타나서 그 도학은 수미일관된 체계를 갖추게 되어 이른바 주자학이 완성된다. 주자의 출현은 주자학이 영향을 미치는 곳이 단순히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동아시아 세계에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 132쪽
우리가 알아볼 내용은 공맹의 사상에서 주자가 주자학을 완성시키기 까지 무려 1,800년이 시간이 흘렀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나라 때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의 영향으로 유학에서 갖추지 못했던 개념을 도교와 불교에서 찾아서 차츰 그 토대를 확장한다.
불교에서는 ‘체용의 논리’를 가져온다. ‘체용일치’ 또는 ‘체는 곧 용, 용은 곧 체’라는 개념은 불교의 반야와 방편에 나타나는 내용이다.
청나라 말기의 ‘중학(중국의 학문)’을 체로 하고 자연과학이나 기술학으로서의 ‘서학’을 용으로 한다는 슬로건, 이른바 중체서용론이 주창되었던 적도 있었다.
불교와 같이 체용의 논리가 범신론의 논리임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조물주가 없어서 신이 무에서 세계를 창조했다는 인과설과 창조신에 대한 내용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송학(주자학)은 불교의 영향을 상당수 받았던 점이 드러난다.
다음은 도교의 영향이다.
중국에서 민중들의 생활에는 도교가 가장 밀착되어 있고, 제사, 주술, 부적 등이 성행했다.
더불어 도교의 핵심 이론의 근본인 우주와 공감하고 우주의 정수를 포착하는 것, ‘천지조화의 기운’을 붙잡아두는 것을 강조했다.
송학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대부들’이다. 송학은 사대부의 학문이며 사대부의 사상이다.
사대부란 누구인가?
당나라 시대 과거제도의 확립과 더불어 일어나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확고부동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지배계급이다. - 27쪽
이들은 유교 경전의 교양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과거시험을 통과하여 위정자가 되려던 사람이었다.
한나라는 호족 중심의 사회였다. 이는 출생의 원리로 하는 폐쇄적인 신분사회였고, 시대는 능력을 중심으로 개방적인 사회로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그 능력은 유교 경전의 교양 능력이었다.
이러한 시대 흐름을 가장 타고난 계층이 사대부였다.
송나라 시대에 등장하는 신흥 사대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람은 송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한유(768~824)이다.
그의 유명한 산문 <원도(도란 무엇인가)>는 인, 의, 도, 덕이라는 네 글자를 해석하고 원리를 밝히는 저서이다.
송학의 최초의 선구자는 한유보다 200년 뒤에 출현하는 주렴계(주돈이 1017~1073)이다.
그의 살아생전 신통한 관직이나 사상적 명성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문하에 유명한 정명도, 정이천 형제가 후일 주희에 의해 자신의 이론을 집대성하는 가운데 성인의 학문을 이룬 사람으로 소개되어 세상에 드러난 사람이다.
주렴계는 <태극도>를 강조하고, 성인이 될 방법을 소개한다.
그는 욕망을 부정하고, 정을 강조한다.
그이 사상은 정명도(1032~1085)에 이어져 ‘생’을 강조하는 사상을 확립한다.
또한, 정명도는 천지만물의 일체로서 ‘인’을 강조한다.
정명도의 동생인 정이천은 유교의 핵심적인 교의는 인이며,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소개한다.
정이천의 사상을 이어받은 주자가 이천의 말에서 가장 널리 찬양한 부분은 ‘성즉리’이다.
정이천의 ‘승즉리’와 장횡거의 ‘마음은 성과 정을 통괄한다’는 두 가지의 말은 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였다.
주자(1130~1200)의 윤리설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성즉리’이고, 그 후 300년이 지나는 동안 육상산(1139~1192), 왕양명(1472~1528)의 ‘심즉리’의 싸움이야말로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큰 논쟁이 된다.
송나라(960건국) 이후 중구은 사대부의 천하가 되었으며 철학, 사상, 이데올로기가 넓은 의미의 송학이었다. 송학은 현대 중국철학사가의 분류에 의하면 크게 세 유파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장재(장횡거 1020~1077)가 세운 유물론, 즉 ‘기’의 철학이다.
둘째는 정이(정이천)가 시작해서 주희(주자)가 완성한 객관유심론, 즉 ‘성즉리’의 철학이다. 이른바 주자학으로 불리는 이 유파는 곧 국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이론 자체의 정제성, 완결성 때문에 주목할 만한 독창적인 후학을 배출하지 못했다.
셋째로 육구연(육상산)이 주장한 주관유심론, 즉 ‘심즉리’의 철학으로, 그 선구는 정호(정명도)를 드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그 계승자로는 명나라의 왕수인(왕양명)을 드는 것이 정설이다. - 274쪽
<주자학과 양명학>은 서로 대립되는 학문과 사상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다.
중국에서는 유물론에의 접근도를 기준으로 삼아 주자학이 사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 중국 학계의 정론인 듯하다.
이에 우리 조선의 사대부 역시 주자학을 ‘성즉리’ 성리학을 근본으로 여겨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신유학이라 불리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를 찾아보는 이 책은 우리 조상과 우리가 하는 사고방식의 기원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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