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 쐐기문자에서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
매슈 배틀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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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문자에서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라는 제목의 35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라서 가벼운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고 펼쳐 든 이 책은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저자인 매슈 배틀스는 글쓰기와 도서관에 관해 쓰는 작가라는 소개가 있어 내용도 부담 없이 다가올 거라 기대했다.

 

쐐기문자에서 컴퓨터코드까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글쓰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루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 <사피엔스>같이 글쓰기라는 단일한 주제를 가지고 인류사적 흐름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시대에 따라 글쓰기가 가지는 의미가 지식의 파도처럼 우리를 압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팰림프세스트(palimpsest)’에 관해 알아보자.

 

감각과 방식의 질감은 마치 팰림스세스트(palimpsest)처럼 한꺼번에 다가온다. 팰림프세스트는 고대에 이루어진 양피지의 재활용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원본 글이 삭제되거나 일부 지워진 자리 위에 새로운 글을 적어 넣은 표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 ‘확장된 용례에 따르면 팰림프세스트는 특히 예전 형태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한 채로 재사용된거나 변경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런 표면과 엇비슷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 “인간의 두뇌만큼이나 자연적이며 힘센 팰림프세스트가 또 어디 있겠는가?” -12~13

 

과거 글쓰기는 특정계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 한정된 특권이었다. 글 읽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글쓰기는 최근에 발병된 것이다.

글쓰기는 글자를 쓰기로 표현한 것이다.

 

글자 자체도 새긴 글에서 시작한다. 글자(character)의 어원은 자국은 남기거나 새기는 도구를 뜻하는 그리스어 카락테르’, 그리고 새기다’, ‘조각하다’, ‘자르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카락테인이다. 영어의 character는 글자 그 자체가 아니라 새겨진 모든 흔적과 기호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팰림프세스트의 고대 인도유럽어족 뿌리는 집어삼키다라는 뜻을 가리킨다. ‘캐릭터는 잘린 것이다. ‘글쓰기(to write)’ 역시 고대 게르만어족의 새기다’, ‘가르다’, ‘찢다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

 

글쓰기란 가장 아름답고 신기한 형상들의 영광이되, 이와 발톱이 시뻘겋게 물든 근본을 갖고 있다. 역사는 피투성이의 팰림프세스트이며, 집어삼킴의 기록, 셀 수 없이 많은 불완전한 것들을 문질러 지운 기록이다. 그리고 문자의 체계란 결국 구멍과 빈틈투성이로 악명 높은 불안전함이며 이 때문에 우리를 상실된 상태로 내버려두는 동시에 앞으로의 진화에 박차를 가하도록 한다. -22

 

인간이 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성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유지하려는 갈망, 자신이 아는 내용을 다른 구성원에게 전달하려는 갈망이다.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 종과 경쟁을 했던 당시에는 이 특성은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부분이었다.

 

글로 의사를 전달하기 전, 인류는 구술 발화 형태로 의견을 전달했다. 자신이 보았던 동물에 이름을 붙이고, 서로 약속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림문자를 시작으로 음절문자, 상형문자로 이어지던 문자체계는 알파벳의 진화를 끌어낸다.

 

통상적으로 일어난 일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글쓰기의 효과는 급진적이다. 글쓰기의 기원부터 의식 속에서 수행하는 밀접한 역할, 그 모양새 모두가 언어와 기억과 문명의 뿌리를 뒤흔든다. 급진전(radical)이라는 말의 어원 역시 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radix. 글자와 기호는 직선과 곡선이 타래처럼 엉킨 채로 땅에서 뽑아 올린 뿌리처럼 생기기도 했다.

 

글쓰기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특권이다. 특히, 중국에서 4,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난도의 여러 시험은 시, 악기 연주, 바둑은 물론 서예에도 조화가 깊어야 한다. 한자는 아름다운 문자였지만 수억의 중국인들은 이를 읽지도 못했다.

 

우리 역시 고유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 덕분에 익히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한글을 가지고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당시, 이를 가장 반대하는 계층도 집협전 학자라는 사실은 글쓰기가 가진 독점적인 권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큰 의미가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각종 계약과 이를 증명하는 서식의 작성이 왕왕 일어나는 일이며, 이를 수행할 수 있고 없음은 큰 차이를 만든다.

 

주인공 핍이 가장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묘비명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덧붙이고, 매형인 조 가저리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면은 문해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는 읽는 동안 독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새로운 사실을 알고 체득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유용하다.

 

지적인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이 책과 함께 글쓰기의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사 곳곳을 체험하길 추천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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