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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남자 편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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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생생하게 만나는 역사 속 ‘나쁜 남자’들
조선왕조의 가장 큰 특징은 방대한 역사 저작물인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한 일이다.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고 대략 1893권 888책 5천 만자에 이른다.
가장 훌륭한 역사서 중 하나로 알려진 사마천의 <사기>가 52만 6천 자 정도이니, 사기의 백배에 근접하는 분량이다.
이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인물들의 기록이 많이 존재할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최문정 작가님의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나쁜 남자 편>은 실록의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왕조실록과 관련해서는 다들 한 가지씩 추억이 있을 것이다.
신봉승 작가님의 <조선왕조 500년>을 보고 자라, 근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과 팟캐스트를 즐겨듣기도 했다.
지난 시절, 박영규 님의 <조선왕조실록>은 역사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설민석 님과 이덕일 님의 <조선왕조실록>은 많은 이들에게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집필되었다.
노회찬 님의 <조선왕조실록>은 실록에 담긴 일화 중, 흥미로운 사건 위주로 서술되었다.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되는 최문정 작가님의 <조선왕조실록 나쁜 남자 편>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주인공으로 빙의해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기본적으로 실록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인물과 관련한 야사나 소문 역시 같이 소개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작가님은 기존의 역사 속에서 조명을 받았던 인물 위주가 아니라, 주변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소개하는 면면을 보면
왕위를 버린 남자 : 양녕대군
기도 : 소헌왕후
나만 몰랐던 사랑 : 문종
붉은 적삼 : 연산군
다홍치마 : 단경왕후
장옥정전 : 궁녀 김원미
첫사랑 : 봉이
첫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양녕대군이다.
세종대왕의 큰 형으로 유명한 양녕대군이 폐세자되는 과정을 실감 나게 소개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보살펴주던 외삼촌들이 차례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왕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바람이 없어진다.
부모님이 동생 충녕대군을 세자로 염두에 둔 사실을 알고 그는 더욱 비행을 저지른다.
아버지가 했던 비행은 자신도 똑같이 하려 하고, 어리와의 사랑과 폐세자된 비교적 편안하게 일생을 보내게 된다.
두 번째 소개하는 인물을 세종대왕의 부인인 소헌왕후이다.
시아버지인 태종은 외척을 억눌러야 왕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이 1차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승리를 도왔던 민씨 가문을 초토화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충녕대군의 배필인 소헌왕후 심씨의 아버지인 심온과 그의 식솔들 역시 태종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예전에 중전마마의 친정아버지 심온이 영의정을 한사코 거절한 것은 좌의정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좌의정은 다른 관직을 겸할 수 있으니 심온은 병권을 장악하기 위해 병조참판을 겸직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좌의정 박은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으셨던 태종대왕께서는 단호하였습니다. - 68쪽
소헌왕후 처지에서 가문의 원수를 등용하는 남편이 미웠을 법도 한데, 그녀는 이를 참았고 태종의 병시중까지 한다.
세 번째 등장하는 문종의 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세자를 생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문종은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가 시간이 지나면서 본색을 드러내고 자신을 유혹해 잠자리에 끌어들이려 하자 점점 그녀를 멀리한다.
그녀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주술인 압승술을 사용하다 세종대왕의 귀에 들어가 폐세자빈이 된다.
두 번째 세자빈인 순빈 봉씨는 적극적이고 활달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랑을 표현해달라고 갈구한다.
문종이 세자 시절 그녀를 피하자 순빈 봉씨는 술주정과 다른 궁녀와 동성애를 가진다.
다시 한번 폐세자 빈이 되고, 문종은 자신이 사랑한 순임과 혼례를 치르게 된다.
시종일관 문종만 바라보고 참는 생활을 하는 순임을 문종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례를 올리지 않는다.
단종을 출산한 후, 출산열로 사망한 순임을 잊지 못하는 문종은 왕비 없이 왕위로 오른다.
평소 건강에 이상이 있었던 그는 왕비를 선택하지 않고, 순임과의 가례를 올리지 않고 왕위를 오래 가져가지 못해 계유정난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한다.
순임에게 못다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혼례를 미룬 것이 안타까운 결과로 되돌아온 것이다.
다음으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궁녀 김원미이다.
인현왕후는 현모양처고 장희빈인 사악하고 독살스러운 인물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 기존의 역사물과 드라마에서 이들의 관계를 이런 구도로 설정해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이 책에서는 이들의 관계를 서인과 남인의 권력다툼 구조로 해석한다.
김원미의 동료이자 매설가 궁녀인 민서가 <왕후 민씨 덕행록>을 통해 희빈을 희대의 악녀로 묘사한다.
김원미는 <장옥정전>을 써서 김상궁에게 발각되고 희빈 장씨와 만나게 된다.
왜 <희빈 장씨전>이 아니라 <장옥정전>이라고 지었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실록에는 왕비일지라도 여자의 이름을 남기지 않고 성씨만 남긴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마마의 존함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 싶었나이다. 그래서 희빈이라는 직첩을 쓰기 싫었나이다.”라 대답합니다.
이날 이후로 희빈마마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김원미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김원미는 희빈마마의 입으로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장옥정전>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는 한편, 그녀의 음성에 가득한 체념과 후회, 죽음을 준비하며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읊으시는 감정을 느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지금까지 악녀 장희빈과 현모양처 인현왕후가 숙종을 놓고 벌이는 대결 구도에서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당시의 권력 관계를 바라보게 되어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다.
최문정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나쁜남자편>에 이어 나쁜 여자, 좋은 남자, 좋은 여자도 출판할 예정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 속에 숨 쉬고 있는 더 많은 인물을 발굴해서 우리에게 소개해 주길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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