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리포트 - 소설로 읽는 안중근 이야기
유홍종 지음 / 소이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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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 우라! (대한 만세!)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소설로 읽는 안중근 이야기

 

소설을 읽고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건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피에 대해 무지했던 사실에 관한 반성이다.

 

오늘 뉴스에서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 거론되는 걸 지켜보며 안중근 의사가 이 글을 쓸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게 되어 가슴이 아렸다.

뤼순감옥에 수감되던 날부터 5개월 동안 그를 감시했던 일본 헌병 치바 토시치 상병은 의사의 정신과 품격에 존경심을 가졌다.

 

사형 당일, 안중근 의사는 그를 불러 호의의 뜻으로 글을 써주겠다고 하고 치바는 급히 비단천과 붓을 준비했다. 그리고 단숨에 써내린 "위국헌신군인본분"을 치바 토시치는 일본으로 돌아가 대림사라는 절에 그의 글과 위패를 모시고 가문의 보배가 가지고 있었다.

안중근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 안중근 의사 숭모 기념관에 기증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안 토마스라는 가톨릭 신자인 그의 위패를 절에 모셨지만, 그 의미를 알기에 의사의 인품에 존경심을 표현한다.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을 쓰는 순간은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사에서 작전한 이토 히로부미저격작전은 개인적으로 이토에 대한 원망보다 군사작적의 일환으로 자신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진행한 작전이고, 따라서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제는 당시 안중근 의사의 저격 사건의 형량에 따라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데 지장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군사법원이 아닌 형사재판을 통해 그를 사형에 이르도록 조치한다.

 

항소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제의 법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어머니에게 수의를 짓게 한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서 괴로운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의 편지가 당도한다.

 

네가 항소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네가 무슨 미련과 변명이 더 있겠느냐. 너는 부모에게 지극한 효자였고, 조선에는 조국의 독립 의지와 기상을 크게 떨친 애국자다. 여기 어미가 지은 한복을 보내니 입고 가거라. 자식을 먼저 저세상에 보내는 어미보다 가슴 아픈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만, 응칠아! 우리 다음 세상에서도 이 세상에서처럼 선한 어미와 아들로 다시 만나자.”

- 311쪽 마지막 고백성사 중

 

일제가 진행하는 법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 보조원 모두 일본인들에 둘러싸인 속에서 홀로 대한 독립을 외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묵이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인 것이다.

 

소이연에서 출판하고 유홍종 작가님이 집필한 <하얼빈 리포트>는 대한민국 필독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평소 역사블로거 히스토리2’님의 블로그를 보면서 그 동안 몰랐던 역사에 대한 사실을 좀 더 알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요즘은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 광복 전후를 조명하는 책들을 읽고 있다.

 

<하얼빈 리포트>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작전을 절정으로 그의 출생 배경, 아버지 안태훈 진사, 조부 안인수 선생이 고향인 해주를 떠나 청계동으로 이주하는 원인이 된 안태훈 진사 일본 유학생 선발 당시 갑신정변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한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위시한 개혁파 세력들의 쿠데타는 ‘3일 천하로 자멸하고 말았다. 특히 쿠데타를 배후에서 무력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일본 공사 다케조에는 일본 해군 함정을 타고 도주해버렸다. 그 결과 일본으로 달아난 김옥균은 상하이에 갔다가 대궐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하고 그의 부친과 동생은 투옥된 후에 감옥에서 옥사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목숨을 건졌지만, 가족들은 모두 정적들에 의해 피살당했다. 홍영식의 부친과 가족 20여 명은 집단자결로 생을 마쳤고, 박영효는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그의 부친은 구속된 후, 옥사하고 모친마저도 처형되었다. 친청파 수구 세력들은 급진 친일개화파에 연좌제를 적용하여 가족들까지도 철저한 숙청을 단행했던 것이다. - 35

이런 와중에 종현성당(명동성당)으로 몸을 피하게 된 안태훈 진사는 옥황상제라는 의미의 하나님의 실체를 뚜렷하게 규정하는 가톨릭 교리를 책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황해도 청계동에 가톨릭을 전파한다.

 

안중근 의사는 어려서 부친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로 평생을 나신다.

 

소설에서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제가 승리하는 원인과 가장 충격적인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가 러시아로 피신해서 2년 후 사망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이견이 존재하고,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가 사망하는 증거 역시 다양하다.

 

19세의 동학 접주 김창수(김구)와 안태훈 진사, 안중근과의 일화와 의사가 제국익문사 소속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펼치는 활동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다.

 

추가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도 2가지 생각할 수 있다.

 

1. “동학농민운동은 일본의 야쿠자 전신인 천우협과 흥선대원군의 입김이 작용했다.”

 

소설에서는 1894년 조선의 대궐에서 친중파 수구 세력을 제거하려는 또 다른 강력한 적대 세력이 있었다. 바로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였다. 이토는 조선 대궐의 민 씨 집권 세력을 제거하고 친일개화파 내각을 세운 후에 조선을 찬탈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토와 외무대신 무츠는 조선 침략 지배의 각본을 극비리에 움직여 연락장교 오카모도에게 겐요샤요원들을 조선 내륙에 침투시켰다. 겐요사란 이본의 메이지 정권이 등장하면서 몰락한 도쿠가와 막부 출신의 퇴역 사무라이들의 조직이다. 그들을 훗날 일본의 가장 거대한 폭력조직인 야쿠자로 바뀌게 된다. - 59

 

겐요샤의 하부조직 천우현의 중간 두목 우치다 료헤이는 조선인 내통자 이용구를 포섭하여 조선에서 테러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23살에 동학당에 입교한 제2대 교주 최시형의 수제자다.

 

일본으로 망명한 그는 천우협의 두목 우치다 료헤이를 만나서 친일파로 돌변한다.

천우협은 동학농민운동에 개입하는 방법으로 천우협의 조직원을 보부상으로 위장해서 직접적으로 개입하려하나, 이는 일본어를 구사하는 이유로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한다.

 

두 번째 방법은 이용구를 이용한 방법이고, 무기를 지원해서 황토현 전투에서 홍계훈이 이끄는 관군에 승리하고, 전주성을 장악한다.

 

1차 동학농민운동으로 성공을 이룬 전봉준 장군은 해산을 하려 하나, 대원군은 그에게 밀사를 보내 다시 한번 2차 농민운동을 하라고 요청한다.

대원군은 국왕과 왕비를 제거하고 친청파와 함께 재집권을 구상한다.

 

당시 한성 거주 외국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내용이 나온다.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 농민군의 무장봉기 배후에는 청일전쟁의 빌미를 만들려는 일본의 첩보전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 61

 

2. 김두성은 누구인가? 고종, 최재형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는 역시 안중근 의사가 말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상관은 김두성이라고 한다.

 

김두성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확정적인 인물은 확인되지 않지만, 고종 또는 최재형 선생으로 예상된다.

 

19026, 고종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황실 직속 군사 첩보기관 제국익문사를 출범시켰다. 익문사는 표면상 통신사였지만 극비문서의 운영 법규를 보면 군사조직체계를 갖추고, 이미 국내외에 다수의 비밀 통신원들을 파견했다. - 140

 

당시 궁궐은 국왕부터 궁인들까지 모든 정보가 일본군의 손바닥 안에 들어 있었다.

고종은 카를 베베르와 푸티아티 대령으로부터 국방과 관련된 진솔한 자문을 들었다.

 

카를 베베르 총영사와 무관 대령 푸티아티는 고종에게 러시아 황제 차르 2세의 직속 비밀경찰 조직의 <오크라나 운용지침서>를 참고할 수 있는 문서자료를 전해주었다. 러시아 차르 2세는 일찍이 친위세력들과 정부 각료들이 반정부 테러로 희생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황제 직속의 비밀 경찰조직을 창설했다.

 

그것이 바로 테러 대항세력인 비밀정보조직 오크라나였다. 오크라나는 훗날 악명 높은 소련의 비밀경찰(KGB)의 전신이다.

고종은 환궁 전에 시종무관 정재관을 불러들여 러시아의 오크라나와 같은 비밀 군조직의 창설을 위해 황실 직속 비밀 첩보무대의 <제국익문사 규정집>을 만들었다.

 

안중근과 이도엽은 돈덕전에서 익문사 독리 정재관에게 본인 친필로 의군 입대 재확인 절차를 마쳤다.

 

익문사의 통신원은 실제로 모스 전신이라는 빠른 통신수단이 있어서 멀리 미국이나 연해주에서도 대한의군 총사령관과 명령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국내와 해외에서는 익문사 통신원 77명이 모두 첩보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요원 간에 횡적으로는 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암호와 소속도 임무도 몰랐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직속 상관이 익문사 총독으로 오얏꽃이라는 암호를 쓰는 김두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그가 바로 대한의군 총사령관으로 모든 통신사 첩보원들을 지휘통솔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모든 익문사 통신원의 최고 상관은 하나였다. -145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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