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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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도쿄대학교 요시미 순야 교수가 집필하고, 서의동 역자의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에서 출판한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이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왕(텐노, 천황, 일황)이라고 불리는 왕이 다스리는 얼마 전까지 전제왕권국가의 형태를 가졌던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점이다.

 

에도막부시대를 끝내는 대정봉환을 시작으로 메이지 1868~1912, 다이쇼 1912~1926, 히로히토의 쇼와 1926~1989, 아키히토의 헤이세이 1989~2019, 나루히토의 레이와 2019~현재라는 사실이다.

 

126명의 일왕이 역사에서 한 번도 자리바꿈을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다 보니 일왕의 치세를 시작으로 사용하는 원호(연호)의 사용은 서력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각종 공문서와 주민등록증, 병원문서, 회사문서, 술집에서의 병에 이르기까지 연호의 사용이 우리가 사용하는 서력을 대체한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첫머리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2세의 바사호 박물관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1618~1648년의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의 왕이자 영웅이나,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료들이 그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재위 기간 건조한 대형전함 바사호를 만들었던 기술자들은 배가 기울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만, 왕의 무리한 명령에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배가 진수되어 결국 침몰하게 된다.

 

마치 일본인이 상급자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못해 패전의 빌미를 가졌던 지난 과거의 경험이 떠오른다.

 

순야 교수는 조화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번 도서를 통해 일본에 대한 냉정한 어조로 헤이세이 시대에 관해 말한다.

일본이라는 박물관이 헤이세이 30년간 어떻게 서서히 실패하게 되는지 설명한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면으로 나눠 헤이세이 기간에 왜 일본 사회가 실패하게 되는지 너무도 솔직하게 서술해서 일본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주장이라 놀라면서 책을 보았다.

 

쇼와 시대의 일본은 지옥과 같은 나락에서 서서히 부상해서 1980년대에는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을 꿈꾸며, 당시 유행했던 일본 도쿄 땅을 팔면 미국을 다 살 수 있다라는 말이 회자하곤 했다.

실제 일본은 뉴욕의 주요 빌딩을 매입해서 그 열기를 한층 더 가열한다.

 

2차 대전 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에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마셜 플랜은 러시아에서 맹위를 떨치던 공산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 시절 무역적자가 심해지고, 재정 적자가 심해지는 쌍둥이 적자를 맞이한 미국은 1985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급 비리에 불러 합의한다.

 

독일과 일본의 화폐 가치를 인상하라는 요구이고, 이제껏 미국의 원조로 경제를 일으킨 독일, 일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플라자 합의를 시작으로 일본의 당시 엔달러 환율은 1년 만에 달러당 235엔에서 150엔대로 하락한다.

이런 급격한 엔화 강세는 일본의 수출산업에 대타격을 입힐 거라 예상되어 일본 정부는 재정투입이나 금융완화 조처한다. 즉 금리를 가파르게 인하하는 것이다.

198615.0%인 금리는 198722.5%로 인하하게 된다.

정부는 경기의 선순환을 유도했으나, 당시 시중에 넘쳐나는 자금은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금융권은 대장성을 믿고 부동산 담보대출의 비율을 70%에서 80%를 지나 심지어 110%까지 대출 경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일본 금융권은 어차피 가격이 상승할 부동산의 미래가치를 미리 계산해서 대출 경쟁이 벌였다.

 

하지만 이것은 버블의 시작이었고, 결과는 참담했다.

인플레이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금융 당국이 금리를 차례로 올리기 시작한 1989년을 기준으로 금융권에선 부실이 터지기 시작했다.

 

당시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노무라 증권과 쌍벽을 이루었던 도쿄를 거점으로 하는 야마이치증권이 파산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파산을 예견한 임원진은 어리숙하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임원 중 한 명을 사장으로 선임해서 이 모든 책임을 몰아가는 방법을 취한다.

 

야마이치증권의 파산을 시작으로 일본의 금융권, 부동산시장, 제조업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거품 경제의 붕괴는 오늘날까지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독일의 경우, 동독 서독 통일과 유로화에 편입하여 이런 문제를 피하게 된다.

물론 경제의 기초체력이 더 튼튼한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일본보다는 확실히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정치면에서는 헤이세이 시대 4가지 쇼크가 있었다.

1의 쇼크는 1989년에 정점을 찍은 거품 경제의 붕괴이고, 2의 쇼크는 1995년의 한신아와지대지진(고베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이다.

3의 쇼크는 2001년의 미국 동시다발테러와 이후 국제정세의 불안정화, 4의 쇼크는 물론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원전사고이다.

 

정치적으로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자민당이 정권을 공고히 한다.

2012년 보수적인 아베 정권이 집권해서 오늘날까지 일본의 보수 민족주의를 다지고 있다.

 

이번 주는 일본과 우리와의 정치 경제 관계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강제징용 사례에 관해 충분히 배상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일본 회사의 자산 동결 및 강제집행을 통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으려 한다.

 

일전에 한 블로거 분의 포스트에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멀어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 일본이 과거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선출되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가 상임이사국이 되는 걸 싫어하는 국가들의 모임인 커피클럽이 만들어져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좌절된 사건이 중요하다고 했다.

 

작년부터 일본의 원호는 레이와 시대이다. 이름에 걸맞게 주변국들과 질서, 평화, 조화를 이루어 헤이세이의 잃어버린 시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서로 발전하는 이웃 나라로 거듭나길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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