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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가족
김상하 지음 / 창해 / 2020년 4월
평점 :

낙원연립은 골목 끝에 있었다.
회색의 낡은 건물은 땅에 주저앉아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늙은 코끼리 같았다. -11p
'엄마는 원더우먼, 형은 아이언맨, 누나는 블랙위도우, 셋 중에 하나만 돼도 해결되는데.'
'아버지는?'
'누가 납치해줬으면 좋겠어.' -16p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퀴퀴한 냄새가 일시에 온몸을 휘감았다. 위층의 누수로 인해 천장에서 나는 악취, 불량 체크밸브 때문에 역류하는 하수관 냄새, 화장실의 암모니아 가스, 라면을 끓여 먹고 개수대에 그대로 둔 냄비에서 나는 냄새가 마구 뒤섞여 집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좀비처럼 들끓었다. -21p
"넌 돈이 있어야만 가족이 되는 거냐?"
"돈 때문이 아냐."
"그럼?"
"우리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뜨렸잖아."
"그게 뭔 소리냐?"
"그 살기 좋은 동네에서 이사하게 만들고, 외갓집 선산이 신도시에 수용될 때 엄마가 소송까지 하면서 간신히 분배받은 거로 산 이 집도 우리 몰래 은행에서 대출이나 받고, 그 돈이면 베이커리 열고도 남았어." -69p
엄마가 없는 생활이란 아이한테는 사막을 헤매는 것과 같다. 그것도 모른 채 어른들은 자기 갈 길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인국은 경마장에서 날린 삼백만 원 때문에 속이 쓰렸고, 정아는 덕환의 오피스텔에서 아직도 서성대고 있었다. 정도는 심쿵하게 만들었던 핸드폰의 토끼 모자 여자한테 정신이 홀려 있었다. 식탁의 난은 십 분쯤 지나서야 정리되었다. -72p
한부장이 찾아온 용건은 코마상태에 빠져 있는 은숙을 존엄사로 유도하려는 회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
"일단 저에게 맡기세요."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혜정은 인사를 한 뒤 돌아서려다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근데 보상금액이 얼마나 된다고 했죠?" -81p
"솔직히 말해서 삼 억이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저희는 장례비용까지도 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부장이 삼 억이라고 말하는 순간 인국과 정아, 그리고 정도까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말이 없었다. 시선이 일제히 혜정에게로 쏠렸다. 혜정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116p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루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검은색의 큼직한 캐리어를 빈 쌀 포대로 덮어놓은 게 눈에 띄었다. 쌀 포대를 걷어내고 캐리어 손잡이를 한손으로 잡아 끌어냈다. 캐리어를 바닥에 놓고 천천히 지퍼를 열었다. 캐리어를 열자 오만 원권 지폐가 꽉 채워져 있었다. 정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벼락 맞은 거 같았다. 하긴 돈벼락이었다. -130p
오늘 소개할 소설은 김상하 작가의 <울랄라 가족>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가족이고,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부분이 쓸쓸하다.
울랄라가족의 아버지 인국,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어머니 은숙, 삼남매 택시운전사 정도, 베이커리를 열고 싶은 정아, 고등학생 정각 다섯명이다.
너무나 평범한 가족이지만 인국은 주식과 경마로 제대로 된 가장의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은숙은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인국에게 필요한 돈을 가져다주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들 가족에게 은숙의 존엄사에 대한 보상금과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은숙의 요양병원에 다녀오던 중 우연히 캐리어에 담긴 돈을 습득하면서 이들의 가정은 다시금 가족의 모습을 유지한다.
한 가족에게 있어 돈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결합을 이루는 고리는 느슨해져 서로가 이방인처럼 지내지만 습관처럼 매일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한다.
습관이 타성에 젖어 변화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준다.
돈이 이 가족에 스며들어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느낀다.
소설은 현대사회에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이 가족을 가장 끈끈하게 이어주는 건 어머니 은숙이라는 존재이다.
모든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온 ’엄마‘, ’어머니‘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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