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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건너뛰기
이주호 지음 / 브릭스 / 2020년 5월
평점 :
오늘 소개할 <무덤 건너뛰기>는 여행 작가인 이주호 님과 브릭스 출판에서 펴낸 책이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무덤 건너뛰기는 불교, 도교, 천주교의 성인이라 부릴 인물들과의 교감을 드러낸다.
저자는 여행을 전문적으로 다니다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인문들과 교감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무덤을 찾는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사람과의 교감을 원하지만, 무덤을 찾아다니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조상의 묘를 찾고, 여행지를 갔을 때 유명인의 무덤이 있다면 찾아간다.
우리 땅에 흩어져 있는 위대한 이들의 무덤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그들과의 교감을 극대화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주호 작가의 자장대사, 허균, 그리고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찾아다니는 것은 흥미롭고 많은 의미를 던진다.
책에서 소개하는 세 사람의 특징은 개인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다는 점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종횡무진 자신의 여러 종교적 의견을 나타내는 저자의 설명도 인상적이다.
목차를 보면 1장은 자장의 비명, 그리고 뼈를 둘러싼 몇 가지 가설, 2장은 허균의 유언, 유언을 유언이라 하지 못하고, 3장은 김대건의 필사적 생존, 오직 순교를 위한으로 나눠져 있다.
이제 자장에 대해 알아보자.
신라 승려 자장. 당나라에서 부처의 뼈를 들여온 사람.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신라 불교의 계율을 바로 세우고, 오대산에 들어가 깨달음을 완성한 사람. 그러나 이곳 태백산 어느 기슭에서 단발의 비명을 지르며 횡사한 사람. -19
한국의 적멸보궁은 부처가 아니라 신라 승려 자자의 행적을 기리는 곳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저자는 무덤 순례 대상은 부처가 아니라 자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자장은 정치 일선에 나서자 급작스레 깨달음이 미진하다 여겼던지 아니면 정치 세력 간 알력으로 그래서인지 자장은 바다 건너 당나라 유학을 결심한다.
자장은 당나라로 유학하여 오대산을 찾고자 한다. 오대산은 부처의 시대에 이미 ‘장차 문수보살이 살 곳’이라 예언된 동쪽의 산이다.
자장은 문수보살을 만나고 싶었다.
자장이 오대산에 입산한지 7일째 되던 날, 자장은 꿈에서 인도 사람처럼 생긴 승려를 만나 계시처럼 시 구절을 듣게 되는데, 잠에서 깨고도 용케 그 구절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일체법을 깨달아 알면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고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이같은 불성을 깨우쳐 알면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곧 노사나불을 볼 것이다
계율이 불교 수행의 시작이라면 정진 끝에 닿아야 할 이상인 마지막은 역시 깨달음이었다.
“그대 나라 명주 땅에도 오대산이 있다. 그곳에 1만의 문수보살이 살고 계시니 돌아가거든 그곳에서 예배를 올리라.” 이 말은 인도 사람과 중국 사람을 오가는 문수보살의 상황극 중에 나왔던 비극의 서막이었다. 본국의 호출과 별개로 자장은 신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44p
당나라에서 돌아온 645년, 자장은 경주 황룡사에 9층 목탑을 건립하여 호국불교라는 신라 불교 이념을 확립한다. 그리고 이듬해 통도사 금강계단을 세운다. 한번 부처의 계를 받으면 금강처럼 깨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금강이었고, 출가 수행자들의 모든 수계 의식은 이 계율의 단상에서만 치러졌다.
이제 허난설헌과 허균을 만나보자.
오래전, 아주 오래전, 세 아이를 잃고 남편의 외면 속에 삶을 마감했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 일곱.
그녀는 그토록 그리던 광한전 백옥루로 떠난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은 강릉 땅, 대문 앞에 냇가가 흐르는 마을이었다.
5세에 강릉을 떠나 을지로 부근 건천동에 살며 아버지와 오빠에게 글을 배우고,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란 글을 지어 신동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82p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어떠한 교조, 학풍에도 집착하지 않고, 권력보다는 우애를, 학식보다는 학문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유학에서 과학까지 두루 섭렵한 대학자 화담 서경덕의 산속 초가집을 찾아가 손수 밥을 지어 받치며 학문을 전수받았다. 이때 얻은 도가적 소양은 아들 허봉과 딸 허난설헌에게 전해졌다.
허균이 열두 살 되던 해 경상도 관찰사 임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다 상주 객관에서 병으로 숨졌던 까닭에 허균이 부정을 느낀 사람은 그보다 열여덟 살 많은 작은 형 허봉이었다.
이들 형제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허난설헌은 이른 나이부터 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허봉은 열여덟 나이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스물하나에 문과에 급제한 천재였다. 허균이 생원시에 합격한 건 스물하나, 문과 급제는 스물여섯이었다.
임관 초기 허봉은 선조의 총애를 받으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선조를 옹호하지 않아 유배를 당한다.
허봉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3,500여 명의 조선인 포로를 송환시킨 대승, 휴정 사명대사와 각별한 친구였다. 유,불,도를 망라한 허봉은 동생 허균을 사명대사에게 소개하고, 허균은 불교에 입문하게 되어 후에 사명대사의 비문을 썼다.
허균은 열아홉 나이에 허봉과 누나 허난설헌을 모두 잃는다.
이후 문과에 급제한 허균은 죽림 7현이라는 혁명 모임을 결성하는데, 일곱이 모여 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신세한탄과 세상에 대한 비판을 하고 지낸 듯하다.
이이첨은 강변 7인에게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옹위하려는 목적으로 반란을 획책한 거 아니냐는 시나리오를 건넸다. 영창대군은 궐에서 쫓겨났고 이들은 역성혁명을 도모했던 가상한 인물이 되어 생을 마쳤다.
정치 사화로 죽어간 이들이 하나둘 복권되었지만, 허균은 조선이 망하는 날까지 역적으로 남았다. 조선 유일의 역적...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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