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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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우리 땅 걷기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인 신정일 님이 우리나라의 사찰에 담긴 이야기와 답사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오랜 시간 동안 백성들과 함께해 왔으며, 그 시간 동안 정신적인 도움의 장소, 국난을 겪을 때는 어느 조직보다 먼저 나라를 위해 희생을 했습니다.

 

사찰 답사기를 통해 지금껏 모르고 있던 보물과 같은 사찰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 장소를 방문했다고 하더라도 장소가 가지는 배경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 곳은 훨씬 더 마음속으로 다지게 되는 곳이 됩니다.

 

반대로 그 장소에 대해 알지 못하고 다녀오게 되면, 그냥 한 번 들르게 된 곳일 뿐인데요.

 

부끄럽게도 저는 책에 소개된 사찰들 중에서 방문해 본 곳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가보고 조상의 얼을 느껴야 할 곳이 너무도 많고, 역사적인 장소에 대해 무지하고 지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통해 각 사찰이 가지는 의미와 이야기를 알고 다음 기회에 방문할거라 생각합니다.

 

신정일 님은 열다섯 살 때,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절로 가출 아닌 출가를 하게 됩니다.

두 달의 시간 동안 화엄사에서 지낸 후, 주지 스님은 신정일 님에게 스님의 자질은 아니니 속세로 내려가서 다른 일을 하라고 알려줍니다.

 

스님 생활은 두 달로 끝나게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일 년의 반 정도를 우리나라 산천을 돌고 답사를 하게 됩니다.

 

 

곡성의 태안사에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의 영정비각이 있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강성했던 견훤의 후백제는 927년 경주를 공격, 포석정에서 잔치를 베풀고 있었던 경애왕을 죽이고 김부(경순왕)을 대신 왕으로 세웠습니다.

 

신라의 패전 소식을 접한 고려의 왕건은 대구 달성의 공산에서 견훤의 군사와 싸웠지만 대패하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합니다.

 

왕건이 견훤의 군사에 포위되어 생명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 외모가 비슷한 신숭겸이 왕건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왕건이 타고 있던 수레에 올라타 왕건으로 행세하며 김낙과 함께 싸우다 죽게 됩니다.

 

머리가 잘린 채 시신이 돌아오자 애마는 머리를 물고 사흘 동안 슬피 울었고, 그 소리를 듣고, 태안사의 주지스님은 장군의 머리를 묻어주고 제사를 지냈으며, 훗날 이곳을 장군단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숭겸은 그 뒤 평산 신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곡성의 서낭당 신으로 섬김을 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한 많은 여생을 기억하고 있는 경상북도 봉화의 청량사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고, 강원도 춘천의 청평사에 관한 원나라 공주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고려시대 3대 선원이라고 알려진 경기도 여주의 고달사 터도 그 화려함과 그 일대 30리가 절의 세력권이었다고 하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추측됩니다.

 

 

경기도 남양주의 천진암 터에는 이벽, 이승훈,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5인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천진암터 아래로는 1789년 강학회 멤버들이 아침마다 세수를 했다는 빙천이 있습니다. 다산이 기록한 그대로의 모습인데요.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 선구자와 신자들이 교리를 가르치고 배웠던 곳으로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이곳을 성지로 가꾸어야 한다는 천주교 측은 1979년 문화관광부에 사적지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느꼈던 감동을 이 책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답사기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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