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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고단하다. 삶이, 생각보다 더. 고등학생때는 대학생이 되면 뭐든 뜻대로 될 줄 알았고 대학생때는 취직만 하고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취직,이란건 내가 하고싶은 곳에 떡하니 할 수 있는 무엇인줄 알았다. TV나 영화 속 화려한, 커리어 우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 모두의 미래인줄 알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가 꿈꾸던 상상은 그저 상상이란걸 빨리 깨닫는다. 낭만과 멋보다 현실이 중요하다. 치이고 치이다보니 이기려면 조금 더 독해지고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원하는 사람은 많고. 조금 더 특별해야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는 세상. 우리의 낭만과 꿈은 그렇게 사라진다.
템페레 공항,이라는 단어부터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몇 번이고 곱씹으며 여긴 도대체 어디있을까, 어떤 모습일까 내내 궁금해했다. 핀란드의 작은 도시. 주인공처럼 나도 핀란드,라고 하는순간 휘바휘바가 제일 먼저 생각났고 그 다음 껌이 생각났다. 껌의 한 모퉁이에서 시작된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그 시절의 이야기. 회상하는 것만으로 아프다. 꼭꼭 숨겨둔 잘못을 날 것으로 끄집어 내는 느낌.
생각해보면 내게도 그런 잠깐의 기억들이 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많은 사람들. 우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 꼭 연락해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최근엔 SNS덕에 서로의 근황정도는 확인하지만 그보다 더 전에 만났던 인연들은 여기저기 어딘가 뿔뿔히 흩어져 서로의 기억속에 잠깐씩 남아있다. 함께 사진을 찍고, 비행기를 놓칠까봐 뛰어가는 나를 응원하며 밥을 한끼하지 못해 아쉬워하던 말레이시아인 부부, 함께 제주도 성산일출봉에 올라 일출을 보며 기뻐했던 싱가포르에서 온 30대 여성, 우연히 드른 제주도의 한 소품가게에서 끝내 인생상담까지 해준 주인, 일본의 지하철에서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한 일본할머니... 많은 사람들과 다음을 기약했지만 다음은 없었다.
주인공에겐 다행히 다음의 기회가 있었다. 핀란드 할아버지는 정성스럽게 사진과 편지를 보냈다. 기회가 있어도 나의 상황이 편안해야 받아들일 수 있는 법. 너무 많은 핑계속에 지나가는 시간을 무심히 보냈다. 기회는 점점 작아졌다. 이젠 용기를 내도 만질 수 없을만큼 작아진 기회. 어쩐지 눈에 거슬리는 먼지같아 서랍속에 쏙, 집어넣고 외면한다. 먼지와 함께 꿈도 집어넣어 버린다. 이젠 돈이 주는 안락함이 꿈보다 앞선다. 우리는 그렇게 적응해간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오래 울었는데도 이상하게 진정이 잘 되지 않았다. 심장이 물에 뜬 듯 출렁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봉투 안에 든 편지를 꺼내서 펼쳤다. “글씨를 힘차게 쓰던 용감한 한국의 숙녀분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구나. 나는 마치 그 편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노인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한줄 한줄 읽어내려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곳을 향한 미안함의 눈물이 자꾸 흘렀다. 편지의 끝에는 연락하고 지내자는 말과 함께 숫자 열세개가 적혀 있었다. 노인이 전화번호까지 적어줬었어? 왜 나는 이런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대체 왜.˝
결국 매순간 후회라는 글자앞에 핀란드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잠깐 함께한 순간은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마치 이루지 못한 꿈처럼, 쉽지 않았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꿈처럼, 그 사이사이 노인은 따라다녔다. 그의 정성을 무시한 나를, 나의 꿈을 접어버린 나를, 끄집어내는 순간 알았다. 내내 후회하고 있다는걸. 끝내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사실 이미 할아버지는 살아있을 나이가 아니지만 작가는 주인공에게 희망을 준다. 주인공은 편지를 쓰듯, 다시한번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는다. 아니, 어쩌면 그대로 다시 넣어둘지도 모르겠다. 그건 진짜 모르겠다. 그냥 내 바램은 편지를 쓰기 시작 했듯이 꿈도 조금씩 노력했으면 한다. 다시는 후회라는 글자앞에서 눈물을 쏟지 않도록. 조금 슬퍼질지언정 손놓고 목놓아 울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