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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발칙한 혁명 - 비틀스, 보브컷, 미니스커트 - 거리를 바꾸고 세상을 뒤집다
로빈 모건.아리엘 리브 지음, 김경주 옮김 / 예문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1963
발칙한 혁명>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당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48인의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입말을 통해,
(그들의 회고 및 감정을) 그 시대의 젊음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나의
인식은 정치와 경제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류적) 시각에 편승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접하면서 (문화로 세상을 바라보는) 좀더 '덜 딱딱한'
시각을 접했달까. (대중)문화, 엄밀히 말하면 대중매체보급에 기인한 대중문화가 혁명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차세계대전 후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모두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이래 대체로 미국중심경제권(북미)을 제외한 세계(유럽)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허덕였다. 그럼에도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재건, 희망의 빛은 있었고 그 싹은 돋고 있었다. 한국전쟁과 미소 냉전으로 핵무기 대결로 치달으면서 세계는 암울한 측면도
있었다.
<1963
발칙한 혁명> 속의 구절을 옮기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축축한 습기 속에서 십 대를 보낸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는 ~."
축축한 습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1945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청소년기를
보낸 시점엔 이들의 기성문화에 대한 반작용과 변화에 대한 열망은 이들로 하여금 당시 실력사회라는 뉴노멀 시대에 악기(기타), 카메라, 붓, 펜,
가위를 집게 했다. 그들은 글로벌 청춘 빌리지에 '저항'이라는 깃대를 꽂았다고
책에서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발칙한 혁명은 시작되었다. 비틀스, 밥딜런, 롤링스톤스,
비달사순, 메리퀀트 등이 이 시기 대표적 아이콘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혁명에 자유와 자연스러움이 있었을까? 베이비붐세대의 의식성장에 영향을 주거나 그 영향의 결과물로써 단파라디오, 텔레비전, 피임약, 미니스커트, 팝아트, 보브컷이 발명됐고 등장했다. 이들은
발칙한 혁명의 효시였고 1963년을 크든 작든 영향을 줬다. <1963 발칙한 혁명>은 4파트로 구성되어 각 파트 서두에 거시적인
시대변화상을 간략히 언급했다. 책이 자칫 미시담론(인터뷰)으로만 쏠리는 것을
절충한 셈이다.
인터뷰이의
주무대가 되는 영국과 미국은 시간적으로도 비교적 오늘과 같이 세계트렌드가 시작되어 형성되는 역사중심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1963년
혁명을 촉발한 정치, 음악, 패션, 性에 이르는 사회의 다변화는 이를테면 영국 국내에서 보수당->노동당 정권교체, 프러퓨모
섹스스캔들,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부터 전해진
이슈(시민권운동, 열차칸 흑백구분에 대해 법원 판결, 마틴 루터킹 목사의
인권선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미 최연소 대통령 존F케네디의 진보메시지,인기,암살)가 있었다. 당시 영국은 (실제론) 계급사회에
가까웠고, 노동운동 분출 직전이었고, 미국까지도 여성권익 신장 운동에 대한 열망이 격화하던 시기였다. 영국에선 징병제가 폐지되며 (노동자 계층의 청년으로서 미국 블루스, 로큰롤, R&B를 접했던) 해외로 파병근무한 군인출신 음악가 등이 사회에 복귀했고, 원치않은 임신에서 해방된 여성들은 사회에
적극 참여했고 따라서 1963년이 혁명의 해로 불리우는 데에 바탕이 된 것이다.
1963 혁명의
도화선으로 (프랑스에서 대학생들이 주도해 기성문화와는 다른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트렌드를 잉태, 더 나아가 사회전반에 파급한)
68혁명의 방아쇠가 당겨졌다고도 할 수 있다.
당대의 큼직하고 굵직한 사건들이 혁명의 주체의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것이 <1963 발칙한
혁명>의 주된 내용은 아니다. 그런 큰 사건보다도 1963 이들의 발칙함이 더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