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의 아카시아
박정윤 지음 / 책과강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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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딸과 한 아들의 어머니인 저자는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힘든 수술과 긴 항암 치료를 견딘다. <십이월의 아카시아>는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던 저자는 그 결핍으로 인해 긴 시간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엄마라는 사람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일은 아마도 저자를 영영 바꿔 놓았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이별이든 이별을 겪은 사람은 결코 이별을 겪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 만들었던 아름다운 추억들로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 추억들이 모든 고통을 견디게 해 주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별의 상처를 영영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행스럽게도, 책을 읽다 보면 지금의 저자가 자녀들과 서로 충분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상깊은 부분이 많았지만, 가장 공감이 가는 대목은 바로 위에 첨부한 대목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것도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잃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소중한 것도 없으리라. 소중한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는 삶과 소중한 것을 잃을까 두려워 잠 못 이루는 삶 중 무엇이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많은 이들의 밤이 지나치게 괴롭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책의 마지막 대목은 저자가 세 자녀 각각에게 남기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껏 저자를 흔들었던 그 많은 시련들도 저자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는 없었다는 점에 안도했다. 그 편지들이 나를 향한 편지들은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 글들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에게 이런 편지를 써 줄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겨울에 너무 많은 이별을 경험했기 때문에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십이월의 아카시아>는 겨울에 읽기 좋은 책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안타까워하다가, 웃음짓다가, 슬퍼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마 저자도 다른 누군가와 따뜻함을 나누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특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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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 다음입니다
하상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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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 다음입니다>의 주인공 기석은 솔직히 말해서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학생 때부터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그저 공부만 했다. 그래서 덕분에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쁜 상사에게 수시로 시달린다.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영어 공부를 한다. 특이 사항으로는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는데,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점이 특히 매력이 없다. 말도 거의 나눠 본 적 없는 입사 동기와 사귀는 상상을 하거나, 연애하는 법에 대해 다룬 유튜브 영상을 6개월 동안 매일 보며 따라했다는 부분에서는 그런 매력 없음이 절정에 달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석이 특별히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그냥 평범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30대의 남자 직장인인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암 말기임을 알게 된다.

기석은 평범한 인물이다.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 역시 평범하다. 울고 절망하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직시한다. 그는 언젠가, 혹은 다음에, 하고 생각하며 그 동안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아주 멋지거나 특별한 일들은 아니다. 부모님을 찾아가고, 우연히 만난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했던 사람을 찾아가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마 내가 어느 날 시한부라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와 비슷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평범한 사람들이 할 법한 일들을 한다. 그에게 기적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모습이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에게서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그가 마지막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나도 평소에 버킷리스트 만드는 걸 즐기는 편인데, 목록 중에서 결국 이루는 일들은 손에 꼽는다. 만약 내가 오늘부터 두 달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면 나는 예전에 만들어 놓은 버킷리스트를 다 이룰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으리라. 내 버킷리스트에는 외국어 원서로 된 책 한 권 읽기, 같은 항목들이 있다. 삶이 두 달 남은 시점에서 내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 외국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을 수준에까지 다다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음에, 나중에, 언젠가, 이런 말들로 미루다 보면 언제까지나 외국어로 된 책을 읽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외국어로 된 책을 읽고 싶다면 지금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다음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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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끝! -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한다는 거짓말
폴커 키츠 지음, 신동화 옮김 / 판미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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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일은 끝!>은 사람들이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의 헛된 부분을 폭로한다. 먼저 노동을 굳이 크고 훌륭한 가치들과 결부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터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받는 금원에 상응하는 노동력을 정당하게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과한 열정이나 자신의 업무를 벗어난 분야에 대한 의무감 같은 건 굳이 가질 필요 없다. 세상에는 적지 않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은 직업이 훨씬 많다. 무례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격무에 시달리지만 박봉을 받는 사람들에게 직업 만족도 같은 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그런 사람들에게 일을 통해 자아 실현을 하거나 인생의 의미를 찾으라는 요구까지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때로는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한다. 책에서 지적하는 대표적인 예시로는,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다'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건, 내가 갑작스러운 독감에 걸려서도 안 되고, 여행을 위해 휴가를 떠나서도 안 되고, 주말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의미니까. 물론 자신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사실로 안정감을 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다. 아플 때는 쉬고 싶고, 때로는 여행도 가고 싶고, 쉬는 날에는 일 같은 건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 같지 않은, 즉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주말에도 회사에서 오는 연락에 필사적으로 답하고,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고, 휴가까지 반납하고 일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빨리 소모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휴가를 반납하고 싶고, 시키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당사자들조차. 

 책에서는 '역설적 개입'이라는 개념에 대해 언급한다. '증상 처방'이라고도 하는데, 피하거나 막고 싶은 증상들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일을 하면서 마주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해 직시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입사 지원자들이나 신입 사원들에게 일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신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것들(예를 들면 월급), 일을 하며 각오해야 할 힘든 상황들에 대해 미리 설명해 주는 쪽이 낫다. 현실을 직시한다고 해서 일을 하며 얻는 고통들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고통스러운 일들은 줄어들 테니까. 세상에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 모든 사람들이 일과 관련 없는 의무감이나 일에 대한 환상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에까지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괴로움도 충분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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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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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기억들 중에 아름답다고 할 만한 것들은 거의 없다. 나를 포함해서,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해맑은 모습으로 즐겁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물론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들은 조금 더 해맑고 조금 더 즐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린이였을 때의 나는 언제나 필사적이었다. 하다못해 이사한 동네에 놀이터가 없어 옆 동네로 놀이터를 찾아 떠날 때조차 그랬다.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싸움이 있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수영장의 냄새>는 내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기억들 속에 녹아 있던 감정, 감촉이나 냄새까지도 아주 생생하도록.


 어른들은 쉽게 아이들을 바보 같다거나 단순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남의 일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게 되는 법이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라면 더 그렇다.



 인상적인 장면이 아주 많았지만, 모든 장면을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가장 강렬했던 장면을 첨부해 본다. 누군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익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쿵, 하고 다가왔다. 내게는 너무나 얕아 보이는 물에서도 누군가가 잠겨 죽을 수 있다. 나는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일 때문에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특히 약한 사람들이 더 그렇다. 어리고 약하거나,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거나,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죽어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싸움이 있다. 그 싸움을 무시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얕은 물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책에는 수영장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수영장의 냄새>라는 제목은 이 책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강습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는 종종 수영장에 가곤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소독약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그 냄새가 별로 좋지 않았고 물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수영장에 간 건 오로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그 친구들 중에서는 희영처럼 예쁘거나 잘 생기고, 부모님이 학교에 자주 오고,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입던 수영복이 작아져 더 이상 수영장에 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새 수영복을 살 여유는 없었으리라.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잘 자라서 어린 시절에 수영을 배우지 못한 것도, 수영장에 많이 가지 못한 것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네가 겪는 일이 별 거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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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나무 꿈꾸는 그림책 6
오사다 히로시 지음, 오하시 아유미 그림, 황진희 옮김 / 평화를품은책(꿈교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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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사후 세계라는 게 정말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길렀던 동물이 저승길 마중을 온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라거나. 사람이 불의의 사고나 큰 병에 걸릴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 사람이 기르는 동물은 사람보다 빨리 죽게 될 것이다. 가족처럼 지내던 동물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괴롭다. 오래 전 기르던 동물들이 죽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소중한 마음으로 사랑할수록 이별이 더 마음 아프다는 사실은 짐짓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이별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임을 안다.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 오던 할머니와 고양이는 고양이의 죽음으로 헤어지게 된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아끼더라도 우리는 모두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헤어짐의 괴로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가끔은 정말 죽은 존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고양이 나무>는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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