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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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기억들 중에 아름답다고 할 만한 것들은 거의 없다. 나를 포함해서,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해맑은 모습으로 즐겁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물론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들은 조금 더 해맑고 조금 더 즐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린이였을 때의 나는 언제나 필사적이었다. 하다못해 이사한 동네에 놀이터가 없어 옆 동네로 놀이터를 찾아 떠날 때조차 그랬다.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싸움이 있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수영장의 냄새>는 내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기억들 속에 녹아 있던 감정, 감촉이나 냄새까지도 아주 생생하도록.


 어른들은 쉽게 아이들을 바보 같다거나 단순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남의 일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게 되는 법이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라면 더 그렇다.



 인상적인 장면이 아주 많았지만, 모든 장면을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가장 강렬했던 장면을 첨부해 본다. 누군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익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쿵, 하고 다가왔다. 내게는 너무나 얕아 보이는 물에서도 누군가가 잠겨 죽을 수 있다. 나는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일 때문에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특히 약한 사람들이 더 그렇다. 어리고 약하거나,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거나,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죽어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의 싸움이 있다. 그 싸움을 무시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얕은 물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책에는 수영장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수영장의 냄새>라는 제목은 이 책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강습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는 종종 수영장에 가곤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소독약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그 냄새가 별로 좋지 않았고 물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수영장에 간 건 오로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그 친구들 중에서는 희영처럼 예쁘거나 잘 생기고, 부모님이 학교에 자주 오고,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입던 수영복이 작아져 더 이상 수영장에 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새 수영복을 살 여유는 없었으리라.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잘 자라서 어린 시절에 수영을 배우지 못한 것도, 수영장에 많이 가지 못한 것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네가 겪는 일이 별 거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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