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지금의 안부 - 당신의 한 주를 보듬는 친필 시화 달력
나태주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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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가끔 시집을 산다. 되는 대로 아무 데나 펼쳐서 읽으면 참 대단하게도 그 짧은 글이 참 많은 걸 한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짧은 구절에 괜히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으니 시를 쓰는 사람들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태주 시인의 <지금의 안부>는 책상에 세워 두고 52주 동안 매주 한 편씩 시를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시집이다. 계절별로 열세 편. 한 계절이 시 열세 편에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탁상용이기도 하고, 편수가 많은 만큼 평소에 사는 시집보다는 두께와 무게가 좀 있다. 아무래도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은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게 되기 마련이다. 일상 속에 시를 두고 읽고 싶다면 부담 없으면서도 편안한 구성이다.

미리 다 읽어 버리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한 번에 다 읽지는 않았다. 넘기면서 제목을 쭉 읽고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펼쳐 몇 편을 읽었다. 나태주 시인을 대표하는 시이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해도 무방한 시 '풀꽃'도 역시 실려 있다. 생소한 제목과 처음 보는 내용의 시들도 있다. 신작들도 실려 있다고 하니 평소에 나태주 시인의 시를 많이 읽은 사람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대체로 사람과 사랑에 대한 시를 쓴다는 생각이 든다. 격정적이고 뜨거운 사랑보다는 잔잔한 사랑이다. 함께 꽃길을 산책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일을 깎아 주는 듯한 느낌. 그 가운데 이따금 쓸쓸하고 허전한 감정이 느껴지는 시들이 있다. 사랑이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질수록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커질 수밖에 없으니, 두 정서는 결국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시집을 읽고 글을 쓸 때마다 시를 어디까지 인용해도 좋은지 고민하게 된다. 다른 책과 다르게 시집의 시들은 몇 문장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시 한 편을 통째로 들어내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소설로 치면 소설 한 편을 전부 내 SNS에 베껴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좋은 시를 인용해서 누군가 시집을 읽어 볼까 싶어진다면 그것도 성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52편의 시가 실려 있으니 딱 한 편만 인용하고 싶다.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나태주, <사는 법>

고르고 나니 따뜻한 사랑보다는 그리움의 감정이 더 강한 시처럼 보인다. 평소에 잘 알던 이미지와 다소 다른 느낌을 주는 시라 인상깊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태주 시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쉬운 말을 쓴다는 것이다. 보고 싶다. 너는 아름답다. 네가 잘 지낸다니 좋다. 그래서 더 쉽게 읽을 수 있고 공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안부를 전하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어른들 선물로 좋지 않을까? 가볍게 읽을 시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 주에 하나씩 읽고 싶지만 이미 너무 많이 읽어 버린 시집 <지금의 안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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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망치는 말 아이를 구하는 말 - 1만 명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범죄심리학자가 전하는
데구치 야스유키 지음, 김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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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망치는 말 아이를 구하는 말>은 범죄심리학자가 쓴 육아 서적이다. 범죄심리학자와 육아라는 조합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소년분류심사원이라는 기관에서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 비행청소년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비행청소년들에게는 높은 확률로 부모와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부모들 모두가 아이들을 학대하고 폭행하는 등 강도 높은 괴롭힘을 가한 건 아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이들의 심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본 책에서는 저자의 경험을 통해 픽션으로 재구성된 사례들을 통해 어떤 말이 아이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지를 간단한 설명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2장에서 다루는 말은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 다.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은 그 자체로만 보면 참 좋은 말이다.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주변인, 특히 친구와 어떤 문제를 끌어안고 있을 때, 부모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건 보통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상대방과 사이좋게 지내기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부모의 말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아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이런 식으로 각 장마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쉽게 하는, 하지만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말들을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6장에서 읽은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짧게 언급하려고 한다. 6장에서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를 걸고 억압하며 아이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비난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시의 아이는 결국 '부모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란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어 3D 프린터로 만든 총으로 부모를 쏘게 된다. '확대 자살' 이라는 용어가 있다. 책에서는 '인생에 절망해 자살하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동반자살을 꾀하는 현상' 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서의 자살은 반드시 물리적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마저 포함하는 개념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비슷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읽게 되었다. 사람은 불안이나 동요를 느끼면 사고가 제한되고 좁은 범위에 있는 것들밖에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예시에 나온 아이 역시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 부모를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만든 데는 아이를 억압하고 비난한 부모의 책임이 크다.

책을 읽다 보면 '열심히 해라' 같은, 모두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열심히 하라거나,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 자체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건 아니다.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건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대화의 중요성이다. 부모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언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즉각적으로 사과하는 것과 사과하지 않는 것은 아주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저자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진지하게 대하면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 역시 동의한다. 어쩌다가 말실수를 했다고 해도 바로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충분히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자신의 육아법, 비행청소년들을 교화하는 방법 중 소년원에서 주로 이루어진다는 '롤 레터링' 이라는 프로그램이 신기했다. 자신과 부모, 선생님, 친구 등 상대방의 입장에서 각각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친구와 싸웠다면 내 입장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친구 입장에서 내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편지를 쓰는 걸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내 기분과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근 교육과 육아의 중요성이 여기저기서 대두되고 있다. 부모들의 과보호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고, 방임주의가 아이들을 망친다는 의견도 있다. 저자가 말했듯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그 점이 육아를 가장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가능성을 좋은 쪽으로 펼치게 해 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은 양육자 본인은 물론 아동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에게 적잖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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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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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동안이라는 말은 누구에게 무난한 칭찬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몇 살이 넘으면 아이크림을 바르기 시작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언이 돌기도 하고, 나이를 먹고 나서도 '젊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유행한다. 한국 사람들이 나이 먹는 걸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다 노인빈곤율이 높은 사회라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젊게 살고 싶다고 하는 걸 옳다 그르다 판단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이를 먹는 게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안다.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은 90세가 넘어서도 현역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던 한 의사 나카무라, 나이 들어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50대 의사 오쿠다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은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좋다고 느껴지는 점들(화장이나 옷차림 등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법,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죽음을 마주하는 마음가짐과 죽음을 앞두고 해야 할 실질적인 행동들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라는 3장의 내용들이 감정이입도 잘 되고 의미있었다. 처음부터 '막연하게 무언가가 불안하다면 남과 나를 비교하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라' 라는 일침으로 시작한다.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불완전하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한다면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며 굳이 불만족을 키울 필요는 없으며, 내 삶이 그 자체로 만족스럽지 않다면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지점과도 닿아 있어서 더 인상깊었던 것 같다. 마음을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이 아닌 현재에 두는 방법으로 명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명상법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혀 있으니 직접 따라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90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저자 나카무라는 언제 죽어도 좋다는 사고방식을 오래 전부터 가졌다고 한다. 그건 살아오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5년 뒤에 죽는다면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하겠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해서 젊었을 때 여기저기를 다니며 구경했더니 나이를 먹어 다리와 허리가 불편해져도 후회가 덜하다는 이야기도 교훈이 되었다. 살아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는 말을 굳이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모든 일에는 대체로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게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지금 할 수 있는 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나중에 그것들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최대한 후회가 덜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파트에서 연명 치료에 관해 두 의사가 이야기하는데, 연명 치료의 과정을 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놀랍기도 했다. 나는 아직 연명 치료를 생각할 나이까지는 아니지만 연명 치료를 통해 더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생각이 더 굳어졌다. 저자 나카무라는 장례식이나 죽은 뒤의 일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자신이 죽고 나서 남은 일들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도 저자의 가치관에 공감이 갔다.

젊게 사는 법, 늙지 않는 법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나이 먹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는 사람들이 나이 먹는 걸 공포스러워하기까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은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갈지에 관한 지침이 되어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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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 오늘도 마음을 노래하는 뮤지션 고영배의 다정한 하루하루
고영배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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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 참 시의적절한 제목이다. 무난한 에세이를 읽고 싶을 때 딱 집어들 만한 책. 실제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산뜻한 음악을 하는 남성 인디밴드 보컬의 에세이라니, 무난하고 소위 '힐링되는' 에세이를 읽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막상 이 책을 읽어 보니, 그 예상과 아주 다른 건 아니었지만 내 생각보다는 조금 무겁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세상을 보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유쾌하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소란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디...(지금도 인디라고 해야 하나? 라는 내용도 에세이에 있다.)밴드다. 한국 인디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십여 년 전부터 소란의 이름을 이미 들었으니 유명한 밴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찾아보니 13년 차 밴드라는데 지금도 주기적으로 콘서트를 하고 팬들을 만난다. 책에는 저자의 성장 과정과 소란의 보컬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데뷔 초기의 우왕좌왕했던 시절부터 자리를 잡고 난 지금까지, 나를 울컥하게 했던 가족과 결혼생활,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까지 많은 글이 가지런히 실려 있다.

특히 가족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한다. 혼자 아들 둘을 키우신 어머니를 향한 저자의 사랑을 나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군입대를 할 때 어머니는 겉으로 강한 척 하셨지만 친구와 통화를 하며 많이 우셨다고 한다. 아들을 의지하며 매일매일을 버티셨을 텐데, 그런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또 수영장과 관련된 글도 기억에 남는데, 저자는 어릴 때부터 동생과 함께 꾸준히 수영장에 다녔다는 모양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도 수영장에는 계속 다니며 자랐던 이유가 나중에 밝혀진다. 주인집에 얹혀 살며 욕실을 같이 써야 했던 상황이라서 욕실을 사용할 때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샤워실이 딸린 수영장은 비교적 쉽게 씻을 수 있는 장소였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나중에 다 크고 나서야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남의 눈치를 보며 자라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어머니가 정말 강하고 좋은 분이라고 느꼈다. 저자는 그런 사랑을 받으며 자라서 이런 단단하고 다정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 책은 인디밴드의 역사서(?)로도 어떤 기능을 하는데, 어떻게 소란이라는 밴드가 만들어지고 멤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첫 공연은 어떻게 했고 첫 음반은 어떻게 냈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디밴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인디밴드를 시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파트별로 멤버를 모으고, 곡을 만들고, 연습을 한 다음 홍대의 라이브클럽에 오디션을 신청한다. 간단히 합주 영상 정도로 접수할 수 있다. 보통 오디션은 평일 공연과 겸하기 때문에 사실상 즉시 데뷔다.'

이렇게 읽으니 놀랍게도 정말 간단해 보인다. 물론 실제로 여기 적힌 일들을 시도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마주할 것이고, 큰 난관이 없다고 해도 여기 적힌 일들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일단 뭘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밴드를 만들고, 일단 공연을 신청하고, 일단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매를 할 수 있게 신청하고, 일단 앵콜 공연도 신청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심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사람이니까 밴드를 13년 정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왠지 소란 노래를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오래 전에나 몇 번 들었던 소란 노래를 다시 틀었다. '가을목이' 라는 곡의 제목이 특이해서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지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책에 실려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쓰지 않겠지만 아마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는 소란의 팬들은 물론이고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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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상인가 - 평균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류와 차별들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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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상한 건가?' 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부터 나를 끌어당겼다. 표지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나는 정상인가>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정상이란 이런 것이고, 당신은 정상이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가 무엇을 정상으로, 무엇을 비정상으로 규정해 왔고, 정상이란 개념이 얼마나 편협하게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지를 말하는 책에 가깝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은 정상성이란 어떻게 규정되는지, 정상적인 신체, 정신, 성생활, 감정, 아이들, 그리고 사회라는 파트로 나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다르겠지만, 나는 역시 신체와 관한 부분이 꽤 신경 쓰였다.

<내 몸은 정상인가?> 챕터에서는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특히 사람의 외모에서 어떠한 특질을 뽑아내려는 우생학적인 시도들에 대한 내용이 인상깊었다-내용을 다뤘다. 찰스 다윈의 사촌이 우생학으로 유명한 과학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에서 지적하는 내용이지만,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개념을 평균이라는 개념과 쉽게 혼동한다. 이를테면 한국 여성의 발 사이즈 평균이 235mm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270mm의 발을 가진 여성이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270, 280mm 정도 되는 발을 가진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한국인은 아니고 영국인이지만, 280mm의 발을 가져서 이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종종 접했다는 모양이다. 당연히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세상에서 편안하게 활동하지 못한다고 장애인을 '비정상' 이라고 규정하는 건 옳은 일일까? 특정한 신체를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건 차별의 근거가 된다. 특히 인종주의적인 관점에서 백인의 신체를 '기본'이자 '정상'으로 놓고 거기에 벗어나는 신체를 가진 이들을 차별하는 사고방식은 아직까지도 사회 여기저기에 만연해 있다.

그리고 병리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신체부위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병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부위는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안경이나 교정 장치가 없으면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근시를 가진 사람을 '비정상인'이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건 근시를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심한 근시 역시 눈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명백하게 불편한 상태임에도 단순히 근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비정상'이라는 낙인으로 내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팔이나 다리가 불편해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다른 챕터들 역시 각각의 주제를 바탕으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내 마음은 정상인가?>파트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환각과 환청 같은 증상을 겪는다는 내용도 놀라웠다. 환각이나 환청은 정신병의 증상 가운데서도 꽤 심각한 것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환각이나 환청은 아주 심한 환자가 겪는 증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감정은 정상인가?>파트에서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졌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여성들이 감정을 드러낼 경우 그런 행동은 여성 전체를 일반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나는 아직도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지적이고 우월하며 고등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없긴 하지만 아이들에 관해 다룬 챕터도 흥미로웠다. 어른들은 아이들에 관해 쉽게 판단한다. 어떤 아이들은 우수하고, 어떤 아이들은 열등하며, 어떤 아이들은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책에 인용된 문장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어떤 아동이라도 비정상적인 환경에 처하면 대개 비정상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어른들 역시 그렇지만 아이들은 환경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으며, 아이들의 특질에 대해 무턱대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아이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집단의 아동들이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비정상적인 건 아동들이 아니라 그 특정 집단이라는 내용 역시 인상깊었다.

책이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간단하게 결론을 요약하자면, 결국 정상이라는 개념은 자연적으로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논리에 적극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특히 한국처럼 정상성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계속해서 자신이 정상인지 자문하게 되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정상에 집착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이런 인용구가 있다. "오늘 정상이던 것이 내일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닐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개인에게는 병적인 것이 사회에는 정상적일 수 있다." <나는 정상인가>는 평소에 생각해 볼 일 없었던 정상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어 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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