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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오쿠다 히로미 지음, 박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9월
평점 :
한국에서 동안이라는 말은 누구에게 무난한 칭찬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몇 살이 넘으면 아이크림을 바르기 시작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언이 돌기도 하고, 나이를 먹고 나서도 '젊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유행한다. 한국 사람들이 나이 먹는 걸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다 노인빈곤율이 높은 사회라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젊게 살고 싶다고 하는 걸 옳다 그르다 판단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이를 먹는 게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안다.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은 90세가 넘어서도 현역 정신과 전문의로 근무하던 한 의사 나카무라, 나이 들어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50대 의사 오쿠다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은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좋다고 느껴지는 점들(화장이나 옷차림 등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법,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죽음을 마주하는 마음가짐과 죽음을 앞두고 해야 할 실질적인 행동들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라는 3장의 내용들이 감정이입도 잘 되고 의미있었다. 처음부터 '막연하게 무언가가 불안하다면 남과 나를 비교하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라' 라는 일침으로 시작한다.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불완전하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한다면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며 굳이 불만족을 키울 필요는 없으며, 내 삶이 그 자체로 만족스럽지 않다면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즘 내가 고민하는 지점과도 닿아 있어서 더 인상깊었던 것 같다. 마음을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이 아닌 현재에 두는 방법으로 명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명상법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혀 있으니 직접 따라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90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저자 나카무라는 언제 죽어도 좋다는 사고방식을 오래 전부터 가졌다고 한다. 그건 살아오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5년 뒤에 죽는다면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하겠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해서 젊었을 때 여기저기를 다니며 구경했더니 나이를 먹어 다리와 허리가 불편해져도 후회가 덜하다는 이야기도 교훈이 되었다. 살아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는 말을 굳이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모든 일에는 대체로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게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지금 할 수 있는 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나중에 그것들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최대한 후회가 덜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파트에서 연명 치료에 관해 두 의사가 이야기하는데, 연명 치료의 과정을 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놀랍기도 했다. 나는 아직 연명 치료를 생각할 나이까지는 아니지만 연명 치료를 통해 더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도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생각이 더 굳어졌다. 저자 나카무라는 장례식이나 죽은 뒤의 일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자신이 죽고 나서 남은 일들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도 저자의 가치관에 공감이 갔다.
젊게 사는 법, 늙지 않는 법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나이 먹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는 사람들이 나이 먹는 걸 공포스러워하기까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은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갈지에 관한 지침이 되어 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