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상인가 - 평균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류와 차별들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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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상한 건가?' 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부터 나를 끌어당겼다. 표지에서부터 알 수 있지만, <나는 정상인가>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정상이란 이런 것이고, 당신은 정상이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가 무엇을 정상으로, 무엇을 비정상으로 규정해 왔고, 정상이란 개념이 얼마나 편협하게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지를 말하는 책에 가깝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은 정상성이란 어떻게 규정되는지, 정상적인 신체, 정신, 성생활, 감정, 아이들, 그리고 사회라는 파트로 나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다르겠지만, 나는 역시 신체와 관한 부분이 꽤 신경 쓰였다.

<내 몸은 정상인가?> 챕터에서는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특히 사람의 외모에서 어떠한 특질을 뽑아내려는 우생학적인 시도들에 대한 내용이 인상깊었다-내용을 다뤘다. 찰스 다윈의 사촌이 우생학으로 유명한 과학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에서 지적하는 내용이지만, 사람들은 정상이라는 개념을 평균이라는 개념과 쉽게 혼동한다. 이를테면 한국 여성의 발 사이즈 평균이 235mm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270mm의 발을 가진 여성이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270, 280mm 정도 되는 발을 가진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한국인은 아니고 영국인이지만, 280mm의 발을 가져서 이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종종 접했다는 모양이다. 당연히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세상에서 편안하게 활동하지 못한다고 장애인을 '비정상' 이라고 규정하는 건 옳은 일일까? 특정한 신체를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건 차별의 근거가 된다. 특히 인종주의적인 관점에서 백인의 신체를 '기본'이자 '정상'으로 놓고 거기에 벗어나는 신체를 가진 이들을 차별하는 사고방식은 아직까지도 사회 여기저기에 만연해 있다.

그리고 병리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신체부위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병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부위는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안경이나 교정 장치가 없으면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근시를 가진 사람을 '비정상인'이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건 근시를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심한 근시 역시 눈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명백하게 불편한 상태임에도 단순히 근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비정상'이라는 낙인으로 내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팔이나 다리가 불편해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다른 챕터들 역시 각각의 주제를 바탕으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내 마음은 정상인가?>파트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환각과 환청 같은 증상을 겪는다는 내용도 놀라웠다. 환각이나 환청은 정신병의 증상 가운데서도 꽤 심각한 것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환각이나 환청은 아주 심한 환자가 겪는 증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감정은 정상인가?>파트에서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졌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여성들이 감정을 드러낼 경우 그런 행동은 여성 전체를 일반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나는 아직도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지적이고 우월하며 고등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없긴 하지만 아이들에 관해 다룬 챕터도 흥미로웠다. 어른들은 아이들에 관해 쉽게 판단한다. 어떤 아이들은 우수하고, 어떤 아이들은 열등하며, 어떤 아이들은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책에 인용된 문장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어떤 아동이라도 비정상적인 환경에 처하면 대개 비정상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어른들 역시 그렇지만 아이들은 환경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으며, 아이들의 특질에 대해 무턱대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아이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집단의 아동들이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비정상적인 건 아동들이 아니라 그 특정 집단이라는 내용 역시 인상깊었다.

책이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간단하게 결론을 요약하자면, 결국 정상이라는 개념은 자연적으로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논리에 적극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특히 한국처럼 정상성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계속해서 자신이 정상인지 자문하게 되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정상에 집착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이런 인용구가 있다. "오늘 정상이던 것이 내일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닐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개인에게는 병적인 것이 사회에는 정상적일 수 있다." <나는 정상인가>는 평소에 생각해 볼 일 없었던 정상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어 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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