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코스트 마티니클럽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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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내 집 앞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 그 의미는?"



현재 60세, 전직 CIA 요원 '매기'는 은퇴 후 작은 해안 마을에서 농장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비앙카'라는 여성이 매기를 찾아와 역시나 은퇴한 CIA 요원 '다이애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녀는 매기에게 협력을 요청했지만 매기는 이를 거절하고, 얼마 후 비앙카는 매기의 집 앞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다이애나의 실종도, 비앙카의 죽음도 매기와 무관하지 않다. CIA 일을 그만두고 오랜 시간이 흘렀고, 기술도 신체도 녹슬었지만 자신의 안전과 진실을 위해 매기는 다시 한번 일어선다.



"긴장감 넘치는 현재, 그리고 과거"



[스파이 코스트]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적으로 전개된다. 주로 주인공인 매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때때로 다른 사람을 메인으로 내세워 매기는 알 수 없는, 그렇지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넌지시 독자에게만 알려준다. 현재는 은퇴한 후 나름대로 유유자적한 삶을 살던 매기가 집 앞에서 한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며 다시 한번 위험천만한 세상으로 발을 내딛고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전직 CIA 요원으로 여전히 영리하고 과감하지만, 현역에서 물러난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매기의 몸과 마음은 결코 만전의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조여오는 위협은 그녀의 현재 상태와는 관계없이 날카롭고 재빠르다.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부분은 역시나 은퇴한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애초에 누구도 믿을 수 없던 CIA 시절을 생각하면 동료조차도 100%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현재 시점은 아슬아슬하고, 긴장감 넘치고, 안타까우면서도 탄성을 불러일으킬 만큼 멋지다.



과거는 현재에 비하면 비교적 평온하다. 매기가 우연히 '대니'를 만나고 그가 없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준다. 매기와 대니가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은 여느 로맨스 소설 못지않게 운명적이고 은근히 끈적하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에게 끌린다. 그 모습만 보면 세상 평온하고 온화한데 정작 이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이 그렇지 못한 건 매기가 대니를 만나는 중에도 여전히 CIA 요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 현재는 함께 하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기가 CIA를 은퇴할 만큼 큰일에 분명 대니가 관계했음은 분명한데, 쉽게 맞춰지지 않는 퍼즐 속 대니의 조각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은 마음 반, 알고 싶지 않은 마음 반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과거 시점에서는 매기가 아무리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현재 살아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덜할 것 같지만, 연인에게조차 자신의 신상을 솔직히 말할 수 없는 매기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아슬아슬해서 오히려 더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 같았다.




"2권.. 2권을 달라... 2권 주세요..."



[스파이 코스트]는 보통의 영미 스릴러가 그렇듯 심리 묘사에 치중된.. 책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매기와 대니의 연애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조차 감정보다는 사실이 앞서는, 어찌 보면 '스파이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게 다소 드라이한 면이 있는 책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소설의 주요 분기가 되는 지점에 늘 감정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꽤나 색다른 느낌이다. 감정 묘사를 절제해서 속도감을 높이면서도, 직접적이지 않게 감정을 표현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능력이 그야말로 발군이다. 매 페이지마다 어찌나 아슬아슬한지 페이지를 넘기면 왼쪽 페이지가 아닌 오른쪽 페이지를 먼저 보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혹은 벌어지지 않았는지를 확인해야만 시선을 왼쪽 페이지로 향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은 작가가 전직 의사가 아니라 은퇴한 전직 CIA 요원은 아니었을까..를 의심할 정도로 생생한 묘사였는데, 이게 단순히 CIA 요원에 대한 묘사뿐만 아니라 '은퇴한' 요원이라는 설정을 너무나도 잘 살린 묘사라서 감탄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그 와중에 대니를 의사로 설정해 자신의 의학적 지식도 유감 없이 발휘하기까지...)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속도감 있고, 끝의 끝까지 진실을 알 수 없게 잘 숨겨놓고, 예상하지 못한, 그렇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반전을 선사하는 것까지.. 영미 스릴러는 묘사가 장황해서 읽기 힘들다..는 나의 선입견을 와장창 깨준 진짜 흥미진진한 스파이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은퇴한 CIA 요원들이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아직 풀어내야 할 감정(?)들이 남아있어서 이대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쉽다..고 생각 했는데 다행히 이미 시리즈 2권 출간 소식이!!(아직 출간 전인데, 내년 출간 예정이라고 함) 머지않은 시기에 꼭! 2권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지금 나의 삶은 과거의 유령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우리처럼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은퇴는 관에 못을 박는 것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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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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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10년 만에 다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하천부지에서 젊은 여성의 사체가 연이어 발견되고, 경찰들은 10년 전에 역시나 하천부지에서 젊은 여성의 사체가 연이어 발견된 사건을 떠올린다.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결국 불기소처분되며 미제로 남은 과거의 사건과 이번 사건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과거의 범인이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모방범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이번에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두 현의 경계를 흐르는 강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그리고 세 명의 용의자"



10년 전에 두 건, 그리고 현재 두 건. 무려 네 명의 여성이 아주 유사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전현직 경찰뿐만 아니라 10년 전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와 경찰 담당 기자, 우연히 사건 조사에 관여하게 된 범죄심리학자 등의 조사 결과와 의견이 더해져 현재 유력한 세 명의 용의자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당연히 10년 전에 체포되었던 용의자이다.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는 마약중독자로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분명 누군가는 죽였을 거라고 생각되는 인물이다. 두 번째는 현 의회 의원의 아들이자 은둔형 외톨이인 남자이다. 여성을 상대로 수상한 행적을 보인 적이 있고, 사건 당일 동선이 사건 현장과 겹친다. 여기에 흔히 말하는 다중인격자로 범행을 저지르고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 용의자는 공장에서 트럭 운전자로 일하는 계절노동자로, 사건이 발생하기 전 사건 현장을 몇 차례 오간 것을 과거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가 목격했다. 경찰은 세 명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해나가지만 쉽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사건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사건을 한층 더 어렵게, 또 한층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게 사건 현장이다. 사건 현장인 하천부지는 두 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사체의 발견 위치에 따라 담당하는 현이 다르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서로 의견을 내기 조심스러웠던 탓에 사건이 미제로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두 현 모두 보다 적극적으로 공조해서 수사를 해나가는 게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보통의 일본 경찰 소설에서 공을 다투기에 급급해 서로를 견제하는 것을 주로 보다가 오로지 사건 해결만을 위해 달리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는 건 이게 당연한 건데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과거의 사건이 미제로 남았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온 전직 형사의 재수사도, 딸이 살해당한 사건이 미제로 남았다는 한을 풀지 못했던 피해자의 아버지의 고군분투도 안타까움을 주는 동시에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지독히도 현실적인 '과정'"



일단 10년 전 미제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는 것과 유력한 세 명의 용의자가 있다는 것, 다각도로 사건을 조사하는 등장인물들의 고군분투로 사건의 베이스는 아주 흥미롭게 다져놓았는데 이후 전개는 어떨까. [리버]의 전개는 마치 작가가 어떤 사건의 조사 과정을 따라다니며 취재한 게 아닐까 싶은, 그래서 책을 읽는 나 역시 사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만 같은 생생함이 있다.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을 포함한 여러 인물들이지만 편의상 경찰로 표현합니다)은 아주 조그마한 단서도, 모호한 목격 증언도 흘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수사를 하고, 그래서 유력한 용의자를 세 명으로 압축하지만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게 너무 어렵다. 이미 여러 피해자를 낸 사건이라 내외부의 압박은 점점 심해지는데 정황증거와 심증만 있는 상태에서는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해도 검찰에서 기소해 주지 않는다. 결국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용의자가 셋이나 되다 보니 인력도 분산될 수밖에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은 커지는데 지쳐간다. 그게 활자 위로 보이는 것 같아서 독자 역시 지치는데 '아, 이게 진짜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조사로 결정적 증거를 찾고, 두 번의 현장검증으로 유력한 목격 증언이 나오고, 심증으로 몰아세우면 범인이 자백하는 일은 현실에 없다. 그래서 될 때까지 찾고 또 찾고 또 찾고, 될 때까지 몰아세우고 또 몰아세우며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 아니 해야만 하는 이들의 분투가 눈물겹다. 그리고 그런 지지부진한 수사 과정을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 생각, 행동을 곁들여 독자는 지지부진하게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게 또 놀라웠다. 분명 내용은 진전이 없는데, 소설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는 게 신기했달까...




"오쿠다 히데오 표 경찰 소설, 아니 '범죄 수사극'"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일단 '범인이 누구인가'는 아닌 것 같다. 추리소설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누가 범인이어도 이상하지 않다'거나 까놓고 얘기하면 '누가 범인이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죄의 궤적]이 "유괴사건을 벌이기까지 범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와 범인을 잡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것처럼 [리버]는 "범인을 잡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지..와 사건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추리소설이 범인과 동기, 트릭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과정에 집중하고 있고, 이를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어, 이대로 진짜 끝...??'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결말 부분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의 그간의 흐름에 이보다 더 잘 어우러지는 마무리도 없겠다..는 감상으로 바뀌게 된다. 오쿠다 히데오가 쓴 경찰 소설은 작가의 말처럼 경찰 소설보다는 '범죄 수사극'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고, 그래서 더 독특한 만족감을 주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밀려오는 여운에 잠기며 소설 전반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 막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받은 감상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여기에 2권 뒤표지 문장까지 곁들이면 더더욱) 라는 생각을 해보며. 역시 나에게는 오쿠다 히데오 작가님의 '이런 작품'이 잘 맞는다!는 생각에 방점을 찍어준 [리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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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꽃
로카고엔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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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우연히 만난 남자가 건넨 무거운 캐리어"



시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에 부정적이다. 남편은 모든 것에 침묵한다. 딸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미사키'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직장뿐이다. 미사키는 직장에 가기 전 잠깐 들른 카페에서 만난, 아름답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니코'라는 남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이런 사정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마스이브에 니코는 미사키에게 아주 무거운 캐리어를 선물로 건넨다. 이를 집 안 어딘가에 소중히 놔두라는 말과 함께.




"'그 남자'에게 나도 홀려버린 것일까."



내가 적은,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한 "우연히 만난 남자가 건넨 무거운 캐리어"라는 문장을 보는 사람은 그 캐리어의 내용물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그 문장을 적은 게 '나'라는 것, 그리고 나의 취향을 아는 사람이라면 꽤나 무시무시한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다.(나도 적고 나서 '어.. 이건 어째...' 하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의외로 내용물은 그렇게 무시무시하지 않다. 단, 그 내용물로 인한 결과는 어쩌면 내가, 그리고 저 문장을 본 사람이 상상한 것보다 더 무시무시할지도 모른다. 로카고엔의 소설 [죽음에 이르는 꽃] 속 일곱 개의 단편은 모두 이런 느낌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척하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아니, 이 책 내용에 딱 맞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잔혹하다'. 분명 잔혹한데 이상하게 끌린다. 어둡고 음습하고, 실상을 알게 되면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데 또 다음 이야기가 읽고 싶어진다. 일곱 편이나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이 잔혹한 이야기가 많이 남은 것 같으면서도 줄어가는 게 아쉽다. 책 표지의 아름다운 꽃이 흑백으로 표현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불길함은 이 책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먹으면 죽는 꽃'이라는 원제도, '죽음에 이르는 꽃'이라는 번역된 제목도, 표지의 흑백 꽃도, 구깃구깃 구겨진 듯한 표지 재질도, 하다못해 '로카고엔'이라는 낯선 울림을 지닌 -아마도 필명이겠지만- 작가의 이름도 이 책이 근본적으로 가진 듯한 기묘한 매력에 일조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 한 방울 정도, '똑...'하고 떨어진 물감이 모든 것을 물들이듯 한 남자가 아주 살짝 영향을 미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 놀랍도록 섬뜩하다. 앞선 이야기에서 당연했던 것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뒤집히고, 또 그다음 이야기에서 다시 뒤집힌다. 현실 같은데 비현실적이고, 호러의 느낌이 없는 것 같은데 차가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섬뜩함이 있다. 진실을 알면 알수록 추악해서 눈을 돌리고 싶은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책장이 넘어간다. 책 속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그 남자'에게 홀렸던 것처럼 나도 홀려버린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덫'"



앞서 언급한 미사키 외에도, 이 책의 각 이야기에는 현실이 힘겨운 인물이 등장한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남자, 아들이 사고로 죽은 후 하루하루 '죽어가는' 여자, 쌍둥이 여동생이 '짐'처럼 무겁기만 한 여자, 압도적인 재능 앞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보잘것없게 만 느껴지는 남자 등등..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되돌리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의 말은 하나같이 달콤하고 유혹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것이 설령 독을 품은 꽃이라고 해도, 그 꽃을 받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 결말을 알고 있는 나조차도 그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나 손을 내민다면 덥석 잡을 것만 같아서 두렵다.



[죽음에 이르는 꽃]은 그야말로 호러소설이다. '미쓰다 신조'나 '사와무라 이치'의 소설처럼 논리가 곁들여진 호러 미스터리가 아니라, 정통 호러에 가깝다. 독자는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여기에 소설 전반을 감싸는 불유쾌한 공기까지 더해지면 딱 내가 안 좋아할 스타일인데, 문제는 이 책이 너무 '매혹적'이라는 점이다. 진짜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무래도 제정신을 차리려면 다시 한번 '그 남자'를 만나야(?) 할 것 같으니, 이 잔혹한 세계가 언제고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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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그
이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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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가상현실로 보는 '취업 시험'"


2050년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취업 시험을 가상현실로 본다. 그중에서도 '선화그룹'의 입사 시험은 가장 어렵다고 정평이 나있다. 가상현실 장비만 있으면 18세 이상 누구나 선화의 슈퍼리그에 참여할 수 있지만 합격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서른 살 청소부 '만주'는 십 년 동안 선화 슈퍼리그의 1차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만주가 봉사활동 중 우연히 마주하게 된 '우삼'이 그에게 선화의 슈퍼리그에 도전하라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제안과 함께 우삼이 만주에게 준 것은 선화의 슈퍼리그를 대비할 수 있는 고성능 장비였다.



"비현실적인데, 그래서 더 현실적인 미래"



"가상현실에서 이뤄지는 취업 게임,

그 끝에서 마주한 인간 사회의 추악한 민낯과 진실"


오로지 미스터리! 추리소설!! 프로 편독러(?)인 내가 줄거리만 봐서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닐 것 같은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것은 위에 적은 저 문장이 내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취업 게임이 가상현실에서 이뤄진다고?? 그리고 그 끝에 인간 사회의 추악한 민낯과 진실이 드러난다고?? 완전 흥미로운 미스터리 소설이잖아!!?? 했던 것.. 205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게임'이라는 유쾌한(?) 단어가 섞인 문장으로 소개되었던 것에서 받은 느낌과는 달리 시작부터 낯설고 참혹했다. 18세 이상이라면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선화그룹의 슈퍼리그는 한없이 공평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슈퍼리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가상현실 장비만 있으면 되지만, 대여할 수 있는 장비는 성능이 좋지 않아서 슈퍼리그에 불리하다. 또 소위 '있는 사람들'은 트레이닝 팩을 통해 시험에 철저히 대비할 수도 있지만 하루 먹고사는 것도 버거운 만주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삼과의 만남을 통해 최고 성능의 장비와 실제 겪었던 슈퍼리그보다 더 생생한 트레이닝까지 받을 수 있게 된 만주는 꿈에 부푼다. 자신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도전한다.


시놉시스도 그렇고, 줄거리도 그렇고, 위에 적은 내용도 그렇고.. 이것만 놓고 보면 취업의 어려움과 일부 불합리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며 풍자하고 꼬집는 소설...로 느껴지고, 실제로 그게 틀린 것도 아닌데.. 사실 이런 건 이 소설을 겉핥기 식으로 표현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소설, 혹은 사회파 소설..이라고 하기에 이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 만주의 슈퍼리그가 잘 풀리는 것 같은데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고, 2050년 대한민국의 모습이 비현실적인데도 마냥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기이하다. 인간과 AI의 경계가 모호하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그래서 공평하게만 '보이는' 슈퍼리그에 목숨까지 걸어가며 매달린다. 슈퍼리그의 벽만 넘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환경이 이미 오염될 만큼 오염되고, 그래서 먹을 것조차 쉽게 얻을 수 없는 미래가 배경이라서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건네는 '행운'에 맹목적으로 달려들고, 그 행운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게 안타깝도록 현실적이어서 씁쓸하면서도 섬뜩했다.



"이상하게(?) 몰입해서 읽게 된다...??"



이렇게 '겉핥기' 감상을 넘어서기 위해 발버둥 쳐보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부족한 감이 있는 게.. 아무리 활자로 적어도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책에는 있다.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소설,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 현실을 풍자하고 꼬집는 소설....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무언가..랄까.. 그걸 굳이 표현하자면 대충 빚어놓은 달걀귀신같은 얼굴인데, 어느 각도에서 보면 엄청 사실적인 얼굴이고, 어느 각도에서 보면 얼굴로조차 보이지 않는 조형물을 보는 듯한 심정이랄까..ㅠ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감상은 표현하기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가볍게 술술 읽으며 현실에 대한 풍자를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한없이 현실적이지만 한없이 감성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뭔가 엄청 담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여러 설정 대비 크게 와닿지는 않아서 다소 아쉽다..고 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던 것 같은데,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모호해서 하나하나가 깊이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것들보다 근미래 SF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소설에 담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에 대한 감성 터지는 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게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그래서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전개에도 이 소설의 페이지를 넘어가게 만들어 주는 가장 큰 힘이 아니었나 싶다. 나처럼 모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소설이 주는 기괴함과 모호함이 다소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선호하지 않는 장르임에도 한없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진짜 기묘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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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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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균열, 그리고 '그 약'"



의사인 '기사야마'의 집은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행복하다. 하지만 기사야마는 늘 불안하다. 그 행복은 아주 작은 균열로도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균열'을 차근차근 제거하며 행복을 지켜오던 기사야마에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균열이 찾아오고,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 약'에 손을 대는데...




"악마...인가...??"



'정해진 시간 안에 이 책의 감상을 적으세요(3점)'라는 문제가 주어진다면, 나는 틀림없이 빵점이다. 몇 줄 안 되는 줄거리만 겨우 적고, 고작 그만큼 적어놓고 이후로는 한참을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은 마음과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격렬하게 싸운다. 당연히 스포는 안 된다. 근데 그럼 대체 무엇을 적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모든 게 스포 그 자체인데. 책 띠지에 "악마가 소설을 쓴다면 분명 이러할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그게 정답이다. 이 작가는 악마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책을 쓰다니.. 악마가 아니라면 분명 미쳤다... 미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한 다섯 번쯤 죽었다 살아난다고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발상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나는 작가가 책 속 '그 약'을 먹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쯤 되면 줄거리에도 등장하고 감상에도 나오는 '그 약'에 대해 궁금해질 것 같은데.. 당연히 나도 그 약에 대해 뭐라고 설명하고 싶기도 한데.. 정말 진짜 완전! 이 책 속에 나오는 모든 것이 복선이라서, 아무런 왜곡 없이 그 약에 대한 정보를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 머리 속을 맴도는 그 약에 대한 정보를 삼킬 수밖에 없다. 사실 저도 이렇게 감질나게 언급만 하는 거 정말 안 좋아하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구요...ㅠ


그래도 감상이니 뭐라도 더 적어보자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개념' 자체가 놀랍거나 새로운 건 아니고, 오히려 미스터리에서는 꽤 자주 다뤄지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소재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진짜 작가의 역량이 아니겠습니까.. 쉽지 않은 개념을 아주 쉽게, 일타 강사 수준으로 머릿속에 주입시켜주면서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독자를 끌고가는 건... 그야말로 악마(같)네요.. 네... 




"문제작인데.. 너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문제작이라 문제다..."



이 작가님의 [명탐정의 제물]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진짜 좋아한다. 이 작품은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나는 정말 극극극호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서 다소 허들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짜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막상 주변에 추천하려고 하면 턱!하고 걸리는 게 있었다.


[엘리펀트 헤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이 책은 진짜 독해서 저도 읽기 힘들었거든요...(수차례 말했지만, 근데도 주변에서 잘 안 믿지만 은근 유리멘탈임) 그렇게 독한데, 그래서 안 읽기에는 너무 재미있는 게 문제다. 그렇게 독한데, 너무 친절해서 쉽게 술술 읽히는 게 문제다. 이 책을 추천하면 주변에서 나의 정서(?)를 의심할 것 같은데, 아니 그냥 이 작품 자체가 문제인데, 그래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게 진짜 문제다... 이정도면 마침표 하나까지도 의도를 가지고 찍은 거 아닌가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발상부터 전개까지 십자로에서 악마라도 만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소설은 현실이 아니고 오로지 소설일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이 책이 주는 '지적 유희'에 푹 빠져서 전율할 수밖에 없는 결말을 느껴보시기를.......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제본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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