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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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를 위시한 중국 미스터리를 출간하며 신선한 충격을 준 출판사 한스미디어에서 이번에는 중국보다 훨씬 더 낯선 타이완의 추리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는데, 마침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셔서 빨리 만나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볼륨이 있다 싶었는데 약 430페이지 정도, 소설 본문으로만 치면 약 400페이지 정도로 그렇게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정말로 낯선 타이완의 추리소설은 과연 [13.67]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세 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팡멍위. 그는 사형선고 후 자살을 시도하고, 죽음을 앞둔 병원에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시신에 대한 언급과 함께 '네 번째 피해자'의 존재를 넌지시 밝힌다. 그 단서로 언급한 것은 팡멍위의 마지막 범죄의 피해자이자 네 번째 피해자가 될 뻔 했던 대학생 저우위제. 시신을 찾고자 하는 경찰과 특종을 잡고자 하는 언론사들 사이에 팽팽한 두뇌싸움이 오간다. 과연 네 번째 피해자는 실재하는가..


독특하게도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이미 처음부터 범인을 드러낸 상태에서 경찰과 기자, 플러스로 독자까지 찾아 헤매는 것은 바로 '피해자'이다. 누군지도 알 수 없고, 팡멍위와의 관계도, 죽은 때와 장소도,, 그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단지 저우위제에게 보내진 메일 하나로 추리와 수색을 거듭하며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사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히 '팡멍위의 살인 사건'이겠지만 소설의 흐름에서 '실시간으로' 가장 스펙터클하게 다뤄지는 것은 방송국 탕런글로벌의 두 아나운서, 쉬하이인과 좡징의 승진 다툼이다. 일견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 거의 대등한 위치의 두 아나운서는 상대방을 누르고 승진을 따낼 요량으로 독단적이거나 혹은 무모한 취재와 보도를 거듭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쉬하이인에 의해 사건은 빠르게 그 핵심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 과정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작은 단서 하나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시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쉬하이인이 보여주는 추진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묘하게 앞서나가지 못하는 것에 분노하여 더욱 무모한 취재를 감행하는 데서 독자는 답답함과 함께 미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추리소설에서 기자가 -이번에는 아나운서가 주가 되었지만 같은 언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주가 되는 경우는 많이 있다. 무모하고, 특종을 위해서라면 유가족에게 소감을 묻는 경우없는 행동도 불사하고, 남들보다 빠른 보도를 위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등 추리소설 속 언론사, 혹은 언론인은 좋은 이미지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정도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 어느 성추행 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피해자가 유명 인사의 관계자라는 것만으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도록 흥미 위주의 기사가 쏟아졌었다. 이뿐만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고, 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나몰라라 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소설 속 아나운서 쉬하이인도 물불 가리지 않고 취재를 거듭하고, 특종을 위해서라면 가해자, 피해자 구분하지 않고 인터뷰를 하려고 애쓰지만 정작 자신이 그 상황이 되기 전에는 그것이 잘못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다시 소설로 돌려서,, 소설은 '쉬하이인의 취재 과정' + '언론사의 뉴스, 기사 또는 온라인의 게시글 등'이 짧게 반복되며 전개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시점에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혹은 진실이라고 믿는 내용'일 뿐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속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생각보다 훨씬 참혹하다. 어느 정도 전개를 예상했음에도 충격적이었다. 네 번째 피해자의 존재도, 사건의 전모도, 그 배경이 되는 동기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의 불합리함까지 어우러져 그렇게 빨리 넘어가던 책장이 어느 순간 붙어버린 듯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처음 접하게 된 타이완의 추리소설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고 충격적이었고, 독특하면서도 '재미'라는 요소에 소홀하지 않았다. 최근 일본 소설에서 대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이 조금 뜸해서 아쉬운 틈을 중국에 이어 타이완 소설이 채워주는 것 같다. 그만큼 완성도 높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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