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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종종 읽는다. 그런데 산문집은 처음인 듯싶다. 내가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글이 어렵지 않은 문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언젠가 고향 마을에서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책을 여러 권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또한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을 통해 한층 작가와 선생님 사이에 벽을 허문 것 같은 친숙함이 와 닿는다.
특히 작가가 떠나기 전 해에 출간 도서라 마음이 더 짠하다. 더욱이 원주 박경리 선생의 일화를 말씀하실 때 마음이 더 숙연해진다. 그 이유가 내가 사는 곳이 원주이고 단구동이기 때문일 거다. 모처럼 그리움이란 단어가 머리에 떠나지 않는다. 오늘 박완서 선생님, 작가가 그리운 이유이다.
○ 지금도 문학강연 같은 걸 하게 될 때는 소설이 지닌 이런 미덕,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말하곤 한다. 나는 내가 소설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걸 인정하고 소설가인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면 마치 허세를 부린 것처럼 뒷맛이 허전해지곤 한다._P24
○ 정작 여행 가방은 떠나는 날 아침에 내복 위주로 후딱 아무렇게나 싼다. 검정 바지 하나로 열흘 이상을 버틴 적도 있으니 짐 싸는 일이 수월할 수밖에 없다. 여행지에서도 그 나라 음식으로 버틸 것과, 옷은 될 수 있는 대로 안 갈아입기가 모토이니 남다른 결벽증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회용품들이 내 머릿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있을 때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뿐이지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결벽증하고는 다르다. 일주일에 한 번 도우미 아줌마가 오는 날 말고는 걸레질도 안 하고 살기 때문에 누워서 방바닥을 바라보면 엷은 먼지 위로 발자국이 찍힌 게 보일 적도 있지만 그건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그렇게 게으르고 무신경한 사람이다._P144
○ 거의 대부분의 책들은 삐딱한 생각을 담고 있으니 삐딱하게 서 있어야 마땅하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_P147
○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 낼 때까지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_P156
○ 역사소설은 경험자가 쓰는 게 아니라 훗날 누군가에 의해 상상됨으로써 쓰일 것이다. 상상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작가가 기울인 노고 속엔 사랑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도처에서 느껴진다._P204
○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다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_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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