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허수아비
유영숙 지음 / 작가마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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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겨울 허수아비_유영숙

 

시인의 고향인 철원에 성장해 외지생활 후 다시 고향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유영숙 시인의 시집을 읽노라면 개울가에 물흐르는 소리, 청량한 철원 들녘의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것 같은 생각에 빠진다. 고향이 양구인 내게도 시인과 같은 기억들이 하나 가득인데, 그래서 시인의 시어(詩語)들이 나의 마음에 비집고 들어와 꽈리를 뜬는 것 같다. 언젠가는 고향마을에 기거하며 그곳에 아리랑을 쓰고 싶은 작은 소망을 갖고 있다. 그런 연유로 아리랑에 대한 목록과 자료수집이 한 가득 해 놓은 상태다.

먼저 실행에 오기신 유영숙 시인이 전하는 시어는 어렵고 난해함을 배제한 순수한 아이의 손을 맞잡고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같다. 또한 가을밭에 김장배추를 수확하기 위해 떡잎을 떼어내 싱싱히고 튼실한 알배추 같은 상상을 한다. 어렵고 난해해야지 진정한 시(), 입에 물어 사탕같이 긴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해하기 싶고 추운 겨울 겨드랑이의 따뜻한 온기를 내어주는 것 같은 배려가 있다.

개천에는 겨울을 지나 세찬 물결이 돌틈을 돌아 내는 소리같이 소소 하지만 정겨운 울림을 지닌 시들이다. 눈을 감으면 시인이 느꼈을 철원의 곳곳에 전경이 그려지고 상상이 가능해 진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고향 내음을 가득 담은 시집을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인의 시어들이 많은 독자에 마음이 전달되길 희망한다.



 

바람이 닿기도 전에/갈대는 먼저 엎드린다/스스로 자세를 낮추고/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다 같이 엎드리고/다 같이 일어난다_갈대_P18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거야./검은 콩 먹여서 흰머리를 안 나게 할 꺼야.”/딸아이가 크레파스를 들고/ 아빠를 그리며 말했습니다/아빠 코, 아빠 눈아이는 하나하나 그려 넣으며/회사 가서 밤늦게 오는 아빠를/마음에 새겨놓고 그림으로 꺼내고 있었나 봅니다/내가 조용히 물었습니다/“그럼 엄마는 어찌하구?”/아이가 가만히 생각하더니//“엄마는 어머니로 모셔줄게했습니다//그런 딸아이가 사춘기가 되더니 대체 왜 아빠 같은/ 남자하고 결혼했냐며 이해못한다고 했죠/서른이 훌쩍 넘은 딸은/이제 아빠의 친구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갑자기 딸아이에게 남편을 뺏길 뻔했던/아찔했던 날의 사랑스러운 꼬맹이가 생각나는/어린이날입니다_어린이날에_P36

 

() 아버지,/당신이 있는 하늘나라와/까치발로 올려다보는 내가 사는 나라/그 사이가 너무 멀어서/오늘 유난히 그립습니다_아버지의 나라_P48

 

그리움은/가슴에 묻어 두는 거더라//묻어 두고/아주 가끔 꺼내어 보는 거더라//죽을 만큼 힘들어도/잠시만 꺼내 보는 거더라//그리움은/자주 꺼내 보면/미련이 되는 거더라//그리움은/가슴에 묻어 두어야 하더라_그리움은_P64

 

우울했다/담담했다/서운했다/힘들었다/외로웠다/걱정됐다/그리웠다/미안했다/그래도 지나갔다_어제_P83

 

다섯 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굳이 대학진학을 하였고 기울어지는 가정 형편에 책임과 좌절을 겪던 어느 날, 목수였던 아버지가 큰 자루에 연장과 자재를 담아 등짐 지고 휘청휘청 걸어가던 장면에 내 알량한 효심은 자극당하여 밤새 울며 뒤척이다 평생을 부모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절절한 고백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냈다 아버지는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 부모를 향한 효도로 네 인생을 바치겠다는 너의 편지를 읽고 이 아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은 거꾸로 흐를 수 없고 자연의 모든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한 세대를 바치는 법 하물며 인간이 거슬러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말해주고 싶구나. 내가 너희에게 준 사랑이 열이라면 너는 자식에게 열둘을 주어야 한다. 열둘을 받은 네 자식은 또한 그의 자식에게 열넷을 주고이렇듯 사랑은 아래로 흘러야 한다.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가 태어나고 스스로 먹이를 구랗 수 있을 때까지는 어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주지만 혼자 힘으로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되면 가차 없이 어미의 세계에서 쫒아낸단다. 곧 너희 힘으로 살아갈 날이 오게 되면 부디 다음 세대를 위한 생을 살아가기를 이 아비는 바란다.” 아버지, 당신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안겠습니다._아버지의 편지_P98

 

() 깊은 겨울잠을 즐겼던/바위들의 토정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_겨울, 작별의 때_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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