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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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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_최은영
기회가 생겨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만났다. 연재소설을 장편소설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술술 넘어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작가에 내면의 소리가 중간 중간 들어내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리고 가족사가 복잡하기에 대충 읽었다간 앞 뒤 맥락이 없는 스토리에 당황할 듯싶었다. 4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질곡의 순간들. 어디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 가족, 내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가 겪었을 역사고 내 옆에서 일어난 일들이기에 함께 슬퍼하고 공감하고 코끝이 찡했다. 결코 녹록한 소설은 아니다. 줄거리도 복잡하고 중간 중간 스토리가 이어졌다가 다시 연결되길 반복하고 있다.
굵직굵직한 역사적인 일들과 연계되어 가족의 흥망성쇠가 따라 좌우된다. 나라를 잃고 전쟁을 겪고 그 속에서 상식은 무너졌다. 그리고 가족도 무너진다. 개인도 무너진다. 그런 아픔이 우리 안에 디앤에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대를 이어 영향을 준다. 그저 시절이 어려워서 겪은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살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 이유다. 단순히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직도 진행형이다. 소설과 함께한 몇 일간 슬프고 아프고 아렸다. 박은영 작가가 3년간 써내려간 글이다. 그러니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내용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늦은 밤 소설을 다 읽고 덮는데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두 눈을 감고 진정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많은 물음표와 함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주어진 일들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변 분들에게 특히 여성분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밝은 밤의 스토리를 통해 각자의 밝음 밤을 활짝 열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던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P82
○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 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잘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실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P130
○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P199
○ 나도 그에게 죽어버리라고 말했다. 전에는 입에 담지 못했던 온갖 폭력적인 말을 하면서 나는 그 말에 내가 얻어맞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내 말에 상처받거나 가책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내가 뱉은 말은 아무것도 받아드리지 않는 그의 매끈한 표면에서 튕겨나와 나를 쳤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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