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겹의 마음
권덕행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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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겹의 마음_권덕행

 

오랜만에 산문이다. 권덕행 시인의 산문으로 한참을 읽다가 어~ 작가가 남자인 줄(이름에서 풍기는 고정관념~ 그러고 보니 둔감했나?). 그제야 권덕행 시인을 검색해보았다. 산문 곳곳에 시인의 간결한 문체가 묻어있다. 그리고 여성스러움에 세심함이 녹아있다. 산문엔 작가의 삶이 투영된 진솔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래서 참 인간적이다. 소소한 일상에 담긴 시인의 시각으로 파노라마 비디오를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때로는 위안을, 한편으론 집에 계신 아내를 반추하며 놀라기도 하고, 지금도 손을 잡고 산책을 함께하는 아내의 따뜻함이 전해지듯, 인간다움으로 소통하려는 시인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P32. 다시 가을이다. 머리가 말갛게 되도록 찬 바람이 불면 떠밀려서라도 산책을 갈 것이며, 도토리와 밤을 줍듯 쓸 만한 단어들을 만지작거리는 날들이 될 것이다.

 

P37. 손글씨로 시도 많이 적었더랬다. 만나고 있던 사람에게 꾸역꾸역 시를 써서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내가 적은 시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그저 나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중략) 글씨를 쓰면 날것 그대로의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의 몸통 같은 것, 그 시절의 선명한 목소리 같은 것, 되돌릴 수 없는 마음 같은 것, 글씨는 그런 것인데. 어느새 손이 굳어버렸다.

 

P47. 어린 짐승 같은 것들은 딱 한 철 나를 사랑하고는 돌아보지 않는데! 원래 사랑은 점점 야위어 가니까요. 우리는 언제쯤 비슷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P141. 한 걸음 떨어진 채 먼 풍경이 되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날마다 자라는 의심을 걷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P148. 그 외에도 이니셜이 새겨진 목걸이나 옷, 연필이나 수첩 따위를 가져본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허기가 찾아올 때마다 마음이 조금 부풀어 오른다. 새겨진다는 것은 그런 것일 테니까.

 

P171. 내 몸에 대해 알 길은 없지만, 앓지 않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오롯이 자신의 일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앓고 나서야 이 모든 일상에 감사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중략) 이런 나를, 그래서 눈부시지도 특별나지도 않은 나의 이 하루하루를 애틋하게 보듬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P201. 나만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을 조심해야 한다. 입술이 쌓이는 순간, 입 모양이 겹치는 순간들 말이다. 내가 말하는 순간 그것들은 결국 나로 치환되니까.

 

P205. 택배를 기다리는 것은 비우는 것보다 채우는 것에 기울어지는 마음이다. 모자라고 굶주린 표정을 들이키는 일이다. 물건의 궤적을 좇는 마음이다. 나의 욕망과 넘치는 마음을 택배 상자는 반듯하게 포장하여 내민다.

 

P230. ‘그냥이라는 말에 누군가는 무력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도 누군가는 그냥을 정말 그냥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마 그냥있어 본 사람일 것이다. 나처럼 그냥 있기로, 아니 그냥이라고 대답하기로 결정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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