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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작가가 되었습니다 ㅣ 시시콜콜 지식여행 2
아넷 하위징 지음, 전은경 옮김 / 탐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너는 작가잖아. 그러니 등장인물에게 생명을 부여해서 깨워야지."
진짜 행복한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읽었던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사도 해보았고,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책도 많이 보았고, 글쓰기 특강도 많이 다녔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면 늘 쓰던 패턴으로 글을 쓰는 자신을 본다. 그래서 좀 더 색다른 글쓰기 책이 있나 서점을 기웃거린다. 뭔가 내게 특별한 비법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아서. 이 책 <어느날 작가가 되었습니다>는 3살 때 엄마를 잃은 13살 카팅카가 작가인 옆집 린다 아줌마를 통해 글을 쓰는 법을 배워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015년 네델란드 주요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은 손가락 상'을 수상했다고는 하지만 한 번 쯤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상도 아니고, 유명한 출판사 책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얇은 책 두께를 보며 내용도 그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책이다. 하지만 읽을수록 책의 진가는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쓸 때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 내가 나의 패턴에 빠지려고 할 때 상기시켜야 하는 점은 무엇인지, 간결하게 요약된 카팅카의 밑줄 그은 문장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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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유지하며 감정이입을 할 것 - 진심으로 느끼고 쓰는 것>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린다 아줌마의 조언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된 지금도 편집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여전히 작가라는이름이 주는 전지 전능한 능력자라는 환상에 갇힌 내게 작가도 여전히 교정받고, 고민하며 사는 평범한 존재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만들어준다. 평범한 사람이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추진력'과 '용기'다.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만들어주는!
"킬 유어 달링스(Kill Your Darling). 이따금 아름다운 장면을 며칠씩이나 고민하거나 한 문단을 몇 시간 동안 다듬을 때가 있단다. 그런데도 그 단락은 전체적인 이야기와 제대로 맞지 않아. 하지만 작가는 그게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하니까 삭제하고 싶지는 않지. 훌륭한 편집자는 그래도 많은 부분을 빼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 처음에 나는 언젠가는 사용하겠지 하는 마음에 내 달링을 노트 하나에 모았어. 하지만 노트가 거의 다 찼을 때 난로에 던져버렸단다." p135
맥락없는 이야기가 환영받지 못한 것처럼 맥락없는 인생은 재미가 없다. 전체적인 내 삶의 이야기에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하게 빼는 용기, 그와 반대로 전체적인 맥락에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그 속에 나를 던지는 용기. 한 번도 꺼내 보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꺼내는 카팅카의 용기는 마음 속 엄마와의 조우를 선물한다. 엄마가 되고나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던 생각. 내가 없으면 이 녀석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 속에 담겨진 엄마와 자신의 모습을 보는 카팅카. 카팅카는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엄마의 모습을 본다. 그 부분을 보면서 나는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카팅카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기만 할 뿐이었지만 카팅카가 어떤 시선으로 엄마를 보고 있을지 그 마음이 어떠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매 순간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었으니까. 작가는 책을 쓰는 방법을 말이 아닌 몸으로 채득하게 만든다. 그대로 내것이 되도록. 카팅카와 함께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는 나를 만나는 연습을 했다. 감동이라는 선물까지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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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팅카의 작가 수첩>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오래된 내 것이 튀어나오려고 할 것이다. 그 때마다 찾아서 보고 싶은 카팅카의 수첩. 일단 많이 쓰는 연습을 하자.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삶의 세세한 부분부터 여러가지 감각을 이용해서. 아무것도 갖지 못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가지가 없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일 뿐. 카팅카의 엄마가 이미 카팅카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카팅카가 느끼지 못했듯이.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당신의<어느 날>! <어느 날 작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