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개정증보판) - 서양의 대표 철학자 40인과 시작하는 철학의 첫걸음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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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우리나라에 철학 선생님은 없다고 생각했다.  1996년에 중동고등학교에 철학 선생님으로 임용된 후 지금까지 4명의 선생님과 함께 학교에서 철학 수업을 하고 있는 안광복 선생님.  철학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중동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철학 수업내용을 찾아 보았다.  내 주변의 생각할 거리들을 수업내용으로 가져와 수업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수업 방식에 감동받았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안광복 선생님은 철학이란 '관점을 하나 더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네가 바라보는 그 지점만 보지 말고, 옆도 한 번 보라'는 뜻이라고.  이분법적인 진영논리에 갇혀 연일 좌파니 우파니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관점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지금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를 읽는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특별히 철학사를 먼저 알아 둘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철학 역시 그 시대의 생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철학사를 반드시 한 번쯤은 읽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는 출간 10주년을 맞이해 도판 자료와 철학자들을 추가하여 개정증보판으로 나온 책이다.  개정증보판이라 출판사에서 꽤 신경을 쓴 듯  새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없고 종이를 넘기는 맛이 나는 책이다.  웹 북두 많고 전자책도 좋지만 종이책을 선택하는 여러 이유 중에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종이의 질감인데 종이가 아주 매끈하고 부드럽다.  그리고 추가되었다던 도판은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명암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총 3부로 나누어진 책에서 40명의 철학자들의 일생과 사상을 살펴보았다.  철학자로서는 드물게 여성 철학자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철학자는 어릴 때 백과사전에서 짧은 만화 컷으로 보았던 시계처럼 정확한 칸트였다.  책의 맨 앞 장 개정판 서문에 '인간은 뒤틀린 목재와 같다'라는 칸트의 말에서부터 나는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  오랫동안 닉네임으로 사용하던 '꿈꾸는 네모'는 모난 모습을 둥글게 깎고 다듬어 '동그라미를 꿈꾸는 네모'라는 숨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려고 마음먹기 전에도 이미 철학은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은 뒤틀린 목재와 같다."


쾨니히스베르크 밖으로 나가 보지 않았어도 엄청난 독서와 상상력만으로 누구보다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칸트.  그가 나타나는 시간을 보고 사람들이 시간을 맞췄다는 일화는 그 앞에 놓인 '천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이제는 덤덤하게 들리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앎에 대한 욕구와 체계적인 삶에 대한 동경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의 교육철학은 단 한 번도 선두에 서보지 못한, 늘 중간 짜리 인생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린 사람들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앎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충고로 들렸다.

나는 중간 수준의 학생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바보는 도와줄 길이 없고, 천재는 자기힘으로 해 나가기 때문이다. p.236

내 아이의 손톱의 가시는 마음 아프지만 다른 아이의 가시는 그렇지 않다면 그 문제가 온전히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의 철학자들이 걸어온 삶과 고민들이 내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철학은 나에게 의미 있는 무엇이 된다'라는 저자의 서문은 앞으로 철학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큰 가르침을 주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주는 즐거움을 넘어 나만의 무늬와 향기를 만드는데 철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일생을 알기 쉽게 이야기처럼 엮어 써서 기억하기도 쉽고 그들이 펼친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려운 말을 넣지 않고 이해하기 쉽도록 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고 했는데 철학을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꼭 맞는 철학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서로는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보는 방법>을 본 것이 전부인데 괴테가 그에게 남긴 말이 내게도 유의미해 남겨 본다.

만약 그대가 자신의 가치를 즐기고자 한다면, 그대가 먼저 세계가 가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p.262

나는 어떤 무늬를 그리며 어떤 결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철학 실험실'에서 나의 생각을 연습하듯 그저 삶에서 만나는 순간마다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철학자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며 그 철학이 내 삶에 어떤 파장을 만드는지 살펴보고, 가다듬고, 정돈해야 할 것이다.  앞 세대의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철학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을 찾는 것은 온전히 자기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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