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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뇌 - 모방 욕망에 숨겨진 관계 심리학
장 미셸 우구를리앙 지음, 임명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0년 11월
평점 :
1. 인간의 뇌는 개 이다 : 한 개 아닌가?
인간의 뇌는 하나지만 영역별로 고유한 기능이 있다. 첫 번째 뇌는 사고하는 뇌, 대뇌피질이다. 대뇌피질은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합리성과 정당성을 제공한다. 두 번째 뇌는 원시적 뇌인 대뇌변연계, 감정의 뇌다. 대뇌변연계는 감정, 정서, 기분을 관장한다. 저자 장 미셸 우구를리앙은 "나는 오랜 성찰과 정신 치료 경험을 통해, 정신병이 발생하고 진전하는 과정에서 모방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건대 자아 간 관계는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세 번째 뇌'라는 명칭으로 따로 떼어 살펴봐야 한다."P.28라고 말하며 세 번째 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세 번째 뇌는 '모방하는 뇌'다. 이 책은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을 바탕으로 신경증에서 정신병에 이르는 여러 병리학적 증상을 현상학적으로 구축하는데 의의가 있다.
2. 욕구(needs) vs 욕망(desire): 삶의 풍요 속 정신의 빈곤
추운 날씨에 두꺼운 옷을 입는 것이 욕구라면, 유명한 디자이너 옷을 시즌별로 구매하는 것은 욕망이다. 기본 욕구를 해소한 인간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을 욕망에 점점 더 투영하게 되었다. 저자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서 인간은 타인을 욕망하는 거울 신경이 있으며, 거울신경은 실험자의 단순한 행동이나 움직임이 아니라 움직임에 숨겨진 의도를 통해 활성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모방의 뇌'는 사회성을 가르쳐주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게 해주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지만, 모방 욕망은 '경쟁'이라는 형태를 통해 임상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관찰했다. 욕망이 없으면 우울증이 걸린 것처럼 심리적으로 무기력하다. 지나친 욕망은 집착, 경쟁, 중독, 단절, 빙의 등의 신경증을 유발한다. 현대 사회의 폭력과 불안정성도 대립적이고 폭력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3. '왜' 가 아니라 '어떻게': 희생양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집단 지성으로 나아가는 모방 플랫폼
함께 모여 책 모임을 할 때 한 사람보다 여러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때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다채롭다. 인간이 거울신경으로 타인을 욕망하게 된다면 더 많은 모델은 한 가지 모델에 중독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둘 이상의 여러 사람을 가깝게 연결시킨 자아 간 관계는 '자아'라고 지칭될 만한 것을 각자에게 심어준다. 이렇게 새로 등장한 '자아'는 평소의 '자아'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창의력과 새로운 지능을 가진다. 그리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 통합된 욕망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자아들'은 '기적처럼' 집단 지성을 탄생시킨다." p.92 그렇지만 집단 지성의 전제는 각자의 지성이 온전하게 살아있을 때 가능하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알아챌 만한 자아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이 일어난 이유보다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4. 모방은 정신에 어떻게 작용할까: 세 번째 뇌를 통해 보는 질병 분류 체계의 이해
2장 '모방은 정신에 어떻게 작용할까'라는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 뇌가 타인이 모델이었을 때, 경쟁자였을 때, 장애물이었을 때를 사례별로 분류해 정신병이나 신경증의 원인이 세 가지 뇌의 상호 작용에 의해 발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 번째 뇌에서 일어나는 정신 병리적 현상의 보편적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이야기한다. 책의 서문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때 그들의 사회인류학적 관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라는 주장을 실제 사례로 확장한 장이라 볼 수 있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문화적 변수들을 고려한 보편적 정신병리학 체계 수립에 대한 저자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5. 3-3-3: 욕망의 삼각형(주체-대상-모방) - 삼단논법 - 세 번째 뇌
삼단 논법은 전제에 따라 결과가 참이 아닐 수도 있으나 문제를 다시 원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 뇌인 감정의 뇌에서 답을 찾았던 기존의 논리에서 벗어나 세 번째 뇌에서 문제가 시작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문제의 모델이 경쟁자인지, 장애물인지 평가해 새로운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얼핏 보면 처방전이 하나 더 늘어난 듯 보이지만 문제가 시작되고 발현되는 지점에 따라 다양한 처방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뇌는 사춘기 아이의 거식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델이 경쟁자가 되어 경쟁 자체에 몰입한 신체 상황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니 기준 없이 불안정한 욕구에 휘둘리는 아이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타인을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아이들의 불안감과 우울감은 쉽게 게임중독이나 섭식 장애와 같은 가벼운 신경증으로 나타난다. 작년 후반부터 살을 빼기 시작한 아이가 거식증 단계에 이르는 모습을 힘들게 지켜봤다. 인터넷의 발달로 AI 알고리즘은 욕망이 원하는 지식을 끊임없이 쏟아냈고, 아이는 여과 없이 그것을 따랐던 것 같다. 아이는 음식을 보면 칼로리부터 계산했고 살을 빼는 것 외에 다른 기본 욕구(먹는 욕구, 자는 욕구, 배설 욕구)는 사라졌다. 코로나로 단절된 인간관계는 더욱 한 가지 생각을 부채질했던 것 같다. 정상적으로 먹는 욕구를 되찾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낸 후, 인간의 불안감과 초조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점점 막막해졌다. <세 번째 뇌>는 인간의 욕망이 타자에 있다는 전제로 쓸데없는 희생양을 만들지 않도록 해 주었고, 욕망의 대상이 무엇이며 과정에 따라 경쟁자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이해는 감정의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해 진정한 공감의 문을 열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