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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 패션 제국 - 라이프스타일 창조자
레나타 몰로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옷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알마니'라고 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라고 생각된다. 1920년대 사넬, 1930년대 디오르, 1960년대 퀀트, 1980년대 아르마니라 할 정도로 80년대의 대표적인 브랜드이며 그 명맥이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34년 7월 11일 7시 20분에 피아첸차의 암늑대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콜롬보 거리에서 태어났다. 이 때의 이탈리아는 나치편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어 그는 전쟁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전쟁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그것 또한 그가 디자이너적 재능을 키워주는데 한 몫을 하게 된다.
그는 처음부터 패션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한 것은 아니다. 밀라노 국립대학 의학부를 다니다 의학이 맞지 않는다 생각하여 3학년때 도중 의학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패션을 접하게 된 계기는 군 복부 중 짧은 휴가 기간동안 일을 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던 도중 1957년 리나셴테 백화점에 입사해 1963년까지 일하게 된다. 그리고 독학으로 패션공부를 하면서 1970년까지 7년간 체루티의 회사 '히트맨(Hitman)'에서 머잖아 창조해낼 혁신적인 스타일을 연마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쌓게 된다.
채루티와 함께 지낸 7년간 조르지오가 성장하는데 중요했지만 직업, 개인적으로 그의 삶의 중요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었는데 바로 '세르지오 갈레오티(Sergio Galeotti)'를 만난 것이다.
결국 1975년 7월 24일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조르지오 아르마니 S.P.A'회사를 창립하게 된다. 사업은 모험이었고 아주 작은 사무실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아르마니의 초기 컬렉션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총 매출액이 급격히 증가했다. 1975년 1,000만 리라의 자본금으로 시작했던 회사가 첫 남성컬렉션으로 800만리라, 여성복으로 300만리라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1년뒤에 총 매출액은 5억 6,900만리라로 증가했다.(10년후인 1985년에는 2,910억리라에 달하게 된다.) 회사가 점점 커감에 따라 그는 직물창고를 매입하게 되고 '메이드인이탈리아(Made in Italy)'가 생겨나게 된다. 미국과의 중요한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데 'USA조르지오 아르마니 남성복회사(1979)'를 통해서이다. GFT와 공동협조했고 가브리엘라 포르테(Gabriella Forte)'가 부사장으로 들어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게 된다. 거기다 그 해 미국에서 니먼 마커스상(Neiman Marcus Award)을 받게 되기도 한다.
회사는 점점 번창해갔지만 그에게 어두운 순간이 다가오게 된다. 친구이자 동업자인 세르지오 갈레오티가 1985년 8월에 에이즈로 마흔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후 회사는 분열의 조짐을 보이게 되었지만 조르지오는 1년동안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연구하고 직접 진두지휘하여 다시 회사는 제자리를 잡게 된다. 80년대는 비극적인 일뿐만 아니라 커다란 기쁨을 준 일들도 많았던 강렬한 10년이었다.
이 후 아르마니 그룹은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이미지를 굳히는 전략을 편다. 여러 컬렉션을 거쳐오고 90년대 말은 많은 정기 간행물과 국제일간지들의 광고면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로 광고에 치중하게 된다.(1994년에는 약 1초 3,000억리라중 600억리라가 광고에 투자되었다)그리고 아르마니 회사는 아시아를 포함 전세계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아르마니 제국은 2000년대에 엠포리오 아르마니 매장을 전세계 129군데, 조르지오 아르마니부티크를 53군데로 확장했다. 프라다, 구찌, 루이뷔통 같은 많은 유명 브랜드들의 경우 구두, 가방 같은 주력제품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아르마니의 경우 향수, 안경, 넥타이, 시계, 신발과 같은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조르지오는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다. 2005년 미국에서 럭셔리 인스티튜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르지오는 아직도 가장 선망 받고 있는 스태터스 심볼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의류. 남성,여성복 모두에 혁명을 일으켰다 할 수 있다. 명품이 오로지 광고, 브랜드로만 만들어지는 사치라 생각했었던 본인에게 열정적인 디자이너가 명품을 만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