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 / 구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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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회상록은 황제가 세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회상의 형식을 빌어 속삭이듯 써 내려간 소설이다. 역사를 소설로서 만드는 작업은 연대기적으로 서술해 써 내려가는 것이 가장 쉬울 듯싶고 회상의 형식을 빌어 쓰는 것은 주인공의 감성을 담아 서술을 하려니 더 어려운 작업일 듯싶다.
    
그러나 서간체로 만약 역사를 기술하려 한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가 더해지는 것이 우선 역사를 바로 꿰차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회상록의 형식을 빈다면 이에 감성을 덧붙이는 작업이면 될 텐데 서간체 형식을 빌면 그 위에 수많은 사람들의 조합과 전체적 역사적 서술과를 조화시켜야 함으로 더 어려운 작업이 되어 버린다.
    
아우구스투스는 서간체 소설이다. 소설 전체에는 편지와 회고 및 일기 등이 섞여 있다. 저자 존 윌리엄스는 그의 서문에서 등장인물 대부분은 사실이고 간혹 소설의 완성을 위해 허구 인물도 집어넣었다 한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작가의 치밀한 구상이 없이 제대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이 비록 소설일지라도 큰 골격의 주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편지에는 그들의 정치적, 개인적 관계 등을 소상히 알지 않고는 역사물이 아닌 한낮 괴상한 픽션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 등장인물 개개인의 감성과 당시 사회적 감성조차 빠뜨리지 않은 작품이 바로 아우구스투스라 여겨진다.
    
아우구스투스는 알다시피 로마 제정 초대 황제이다. 그는 카이사르의 양자이며 카이사르가 BC44에 암살당할 당시 20세가 되기 직전이었다. 카이사르의 암살 직후 로마가 큰 혼란에 빠졌던 것은 쿠데타를 일으킨 암살 장본인들은 그들이 원하던 공화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모두 뿔뿔이 도망쳐 버렸고 일의 수습이 어찌 이루어져야 하는지조차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카이사르의 부관이었던 안토니우스가 권력의 승기를 잡는 듯했기 때문에 후계자로서의 옥타비우스와의 긴장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결국 몇년에 걸친 내전에 돌입하게 되는데... 
   

 

소설은 프롤로그, BOOK I, II, III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는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기 일 년 전 조카인 아티아에게 그녀의 아들 옥타비우스를 양자로 삼는다는 편지이다. Book I은 옥타비우스와 안토니우스의 불안한 동조 아래 쿠데타 세력의 척결과 그 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스의 내전을 그리고 있다. book II의 주인공은 율리야이다. 그녀는 아우구스투스의 무남독녀 외동딸로서 결국 그의 아버지에 의해 유폐 당하기에 이른다. book II의 분량이 I과 맘먹는데 그 이유가 있다.
    
이 책은 1과 2편이 대부분으로 1편은 내전 종식까지, 즉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등극되는 제정 직전까지를 다룬다. 그 이후 그의 치세가 매우 많은데 작가는 2편을 율리야와 관련된 일로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 이유로 작가는 아우구스투스의 입장에서 황제로 등극한 이후의 치적보다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줄거리를 잡은 듯 하다. 특히나 율리아에 관한 당시의 일은 매우 중대한 일로서 그의 가족에 대한 애착과 애증이 담겨있는 것으로 황제이기 전에 개인을 표현하고자 넣은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딸 율리야에 관한 추문과 그녀를 내쳐야 했던 아버지로서의 가족과 공적으로 황제라는 자리에서의 갈등에서 황제 자신의 입장에 크게 대변하려 구성을 한 것이다. 황제 자신의 편지는 book 1에서 안토니우스에 보내는 몇 개의 짧은 편지가 있으나 그가 죽기 1년 전에 세상을 회고하며 쓴 장문의 편지가 마지막 book 3을 장식하고 있다. 그의 회한이 묻어나며 평생 병약하다고 알려졌던 그가 주위 사람들이 지켜보았던 것이라면 실제의 그의 강한 내면이 드러나기도 하고 딸 율리야에 대한 회한이 깊은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다. 그의 마음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앞의 그의 지인이 편지로 회고로 풀어내는 아우구스투스와 대비된다. 에필로그는 서기 14년 그의 사후에 그를 회고하는 짧은 편지로 대미를 장식한다.
    
물론 딸 율리야의 마지막 남편은 후에 2대 황제가 되는데 그가 티베리우스이다. 등장인물 중에 가공의 인물이 있다는데 아마도 중간에 나오는 노예 출신의 회고록이 아닐까 한다. 물론 더 있을 듯싶다. 서간체이므로 오히려 사람들의 감성이 잘 드러나며 그 가운데 역사적 사실들이 묻어나므로 아우구스투스 치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이 소설은 아우구스투스개인에 관한 전기적 소설인 만큼 제국의 황제로서가 아니라 인간 한 개인으로서 초점을 맞추고 있고 당시의 로마사를 알면 매우 재미있게 읽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당시의 로마사를 알고자 하면 난처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자세한 당시 로마사 이야기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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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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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와인버그는 1967년 오늘날 유일하게 맞고 있는 이론적 모형인 표준모형의 근간을 처음으로 제시한 뛰어난 물리학자로서 1979년 그 공로로 노벨상을 수여받았다. 수학의 군론(group theory)의 그룹에서 가장 간단한 그룹 1차원에서의 유니타리(unitary) 그룹(U(1)), 이차원에서의 특수한 유니타리 그룹(SU(2))의 두 개로서 그는 전자기력과 약력의 통합을 시도했고 후에 강력을 설명하는 한 단계 더 복잡한 그룹인 3차원 특수 유니타리 그룹(SU(3))더해져 오늘날의 표준모형이 되었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른 수많은 모형이 비교적 쉽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더 복잡한 그룹을 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폐기된 모형은 매우 많으며 아직 살아남은 모형들은 자연의 사태와 일치한 증거가 하나도 없다. 하나도 안 맞는 것이다.
    
와인버그는 이미 80세를 넘긴 분으로 교양 물리 서적도 많이 출간했는데 작년에 출간된 이 책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To explain the World)'으로 보아 그 연세에도 꾸준히 무엇인가 지적인 활동을 하는 데에 존경이 간다. 이 책의 내용은 고대 물리로부터 근대물리 및 현대 입자 물리를 아울러 인류의 과학적 접근 방법이 어떻게 발전해 왔나를 매우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필자가 지적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중세 근대 및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내놓는 지식의 크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에 준해 직접 본인이 계산도 한 흔적이 보일 만큼 몰두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해박한 지식은 수많은 참고 문헌을 읽었다는 것이거니와 현대 물리에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긴 그의 과학을 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비판도 서슴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논리에 아주 벗어난 비판은 없다. 물론 비판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그 후의 중세 시대에 벌어지는 신학과의 긴장 상태, 신학과의 화해가 되었을지라도 여전히 원인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에서 결국 뉴턴의 근대 물리를 그는 혁명으로 간주하며 오늘날 물리학은 뉴턴의 사고 체계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단언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갈릴레이 즈음에 실험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자연스레 유럽 사회는 기발한 인공적인 환경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실험적 정신이 근대 물리의 기초가 되었고 자연은 그 환경에서 만이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불규칙한 적으로 간주되기 시작되었다. 즉 관찰이나 실험적 방법이 없이 오로지 이성을 동원하여 무엇인가를 밝혀내고자 한 근대 물리 전의 사유가 잘못되었음을 인류는 인지한 것이다
   
진정으로 근대 물리 이후로 과학의 진보는 관찰과 실험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화된 원칙이 제안되고 원칙으로부터의 유도를 새로운 관찰과 실험으로 검증되어 왔다.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과학의 진실을 찾는다는 데카르트의 방법(?)은 거의 모두 틀렸으며 설령 과학의 방법론을 주장한 베이컨이 있었을지라도 이 두 사람이 근대 물리로 이끌만한 동력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와인버그는 주장한다.
    
과학 이론이 오로지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는 중세 사상은 중력의 작용에 대한 단순한 가정의 뉴턴을 공격했다. 당시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로부터 심각한 비판에 직면한 뉴턴의 중력 법칙은 수많은 영역의 다른 현상들을 정확히 설명하는 간단한 수학적 원리를 발견한 것으로 후에 인정되었다. 물론 근대 물리로부터 사유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의 입지가 공고히 해졌고 그로 인하여 현대 과학은 비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개입이나 행동주의 과학의 바깥에 있는 인간의 가치를 고려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유야 어떻든 과학은 실험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고 현상들을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 있음이 분명해졌고 오늘날 세상은 뉴턴 시대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통일적인 자연법칙들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 입자 물리의 표준모형은 수학만으로 유도되지 않을뿐더러 철학적인 예측의 논증으로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학적인 기준으로 방향을 틀고 많은 예측들이 성공하면서 검증된 추론의 결과로서 자연을 잘 설명하는 것으로 아직 남아있다.
    
와인버그는 환원주의가 맞는가 하는 문제에 정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같은 물리학의 분야에서도 고체물리학자들의 창발성에 관한 연구로서 열, 상변이 현상 같은 거시적 현상이 기본 입자들의 상호작용과는 무관한 것이 밝혀졌음을 예로 든다. 더 나아가 그의 관점에서 생명에 대한 이해는 물리와는 달리 목적론적 원리에 의해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고 그럴지도 모른다.
    
책 전체는 고대로부터 물리를 시대 순으로 정리하되 군데군데 예로서 현대 입자 물리의 얘기도 집어넣고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 아랍의 과학에 대해 매우 자세히 써진 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비난 같은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약간 의아스러운 것이 그 옛날 자연의 현상을 통합적으로 체계적으로 이해하려 한 그의 천재적 노력이 비록 오늘날 많은 부분이 틀렸다고 논하는 것은 그때 생존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를 약간 비하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론 와인버그도 그가 천재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여하튼 그의 영향력의 쇠퇴야말로 근대 물리를 이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물론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업적이 과장되었다고 절하 시키는 데는 동의한다
    
매우 훌륭한 책, 이미 고령의 나이에 접어든 와인버그의 장수를 빌어 마지않고 끊임없이 지적 활동을 하는 그 표본은 책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다.
    
물리학에 관해 전 시대를 아우른 매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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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예술 - 철학적 미학 입문
브리기테 셰어 지음, 박정훈 옮김 / 미술문화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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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에서는 이성과 감성의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우선 지성 편향의 문화가 주되었던 것은 이성이 다루기 편해서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객관적 보편성의 속성을 보인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감성적인 측면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인간 본연의 두 본성 때문이기도 하고 설령 주관적 특수성을 담보로 하더라도 이에 대한 준거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이성뿐만이 아니라 감성적 능력을 포괄하는 인간의 전인성이 고려될 때 인식론의 철학적 담론은 비로소 닫혀 질 수 있다.
    
감성적 인식의 학문, , 감각적 인식에 대한 학문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미학이다. 이는 미와 예술에 대한 이론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것으로 근거 부여를 인식론의 입장에서 다뤄야 하며 무엇을 평한다는 개념 대신에 왜 그러한 판단이 일어나고 이를 어떻게 인식론적으로 체계화 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행위는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비록 직관을 통해 어떤 것을 논증한다손 치더라도 주관성이 너무 개입되면 논증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거나 이런 접근을 아예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가 있다.
    
상대적으로 철저한 객관성이 개연적이든 참적이든 보장되는 이성 분야에서의 인식론은 객관성을 담보로 강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고 논증이 많이 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논리적-지성적 표상과 감각적 표상을 유비 관계에 놓을 수 있어 미적 진리 개념을 논할 수 있다면 미학이 철학의 한 세부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비록 미학이라는 분야가 부분적으로 고대로부터 존재해 왔으나 이성과 감성을 유비 관계로 놓을 수 있음을 논증함으로서 본격적으로 미학을 정초한 이가 비움가르텐이라 한다. 그는 감성에 대한 논증을 최초로 시도한 인물로서 철학에서 이성에 대비해 상대적으로 홀대받았고 소외된 감성을 넘어 비로소 이성과 감성의 긴장을 고조시킨 장본인이다. 칸트도 이에 영향을 받았고 그의 미학을 인식론적으로 정초하는데  연계가 있다.

 

미학은 예술 전반과 더 나아가 인간의 취미 활동으로서 그림이나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성적 행위들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미학론은 순수이성의 대상 인식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 대상 인식을 주관과 떨어져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고 직관되는 객체의 주관성의 인식 조건을 따른다는 그의 순수 이성의 관점은 미학에서도 미의 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게 하는 대신 객체의 미적 판단의 보편성을 논증함으로서 이루려 하고 있어 같은 관념의 연장선 상에 있다. 미적 감각이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판단을 어떻게 할지, 더 나아가 이를 학문의 장으로 끌어올리려면 이성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매우 중요하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의 많은 부분이 이에 할애되었고 어찌 보면 그 후의 철학자들은 그것의 확장적 개념의 표상이 아닐까 한다.

이 책 '미와 예술'은 고대 중세에서의 미의 개념을 포함하여 무언가 미학으로서의 독자성이 시작될 지점의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를 다루고 사실 상 미학을 철학의 한 분야로 정초한 비움가르텐을 소개한다. 그 직후 칸트에 의해 미학이 논증적으로 집대성되는데 그의 순수이성에서의 인식을 감성에 까지 일반화하여 미적 판단론이 완성되었다. 헤겔과 쇼펜하우어, 하이데거를 다루며 아도르노에서 끝을 맺는다.
    
두고두고 읽어 볼 매우 훌륭한 책. 아름다움이 뭔지를 철학적으로 정초한 인류의 지성적 산물이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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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원리 - 개정판 대우고전총서 6
르네 데카르트 지음, 원석영 옮김 / 아카넷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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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는 근대 물리 탄생에 기여했기도 하고 오히려 그의 저작은 방해물이 되기도 했다. 이런 아이러니는 진리가 제대로 인정받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그간 내려온 지식을 바탕으로 확장시킨 그의 지식 세계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는 근대 물리 이전의 물리를 포괄적으로 주장한 마지막 사람이 아니었나 한다.
    
그의 ‘철학의 원리’는 앞부분의 신에 대한 기초적 담론(?)을 빼고 모두 물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운동이 무엇이며 천체의 운행, 지상의 현상들과 빛에 대한 분석, 심지어는 자석의 끌어당김과 밀치는 현상들에 대한 해석을 방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순전히 머리  속에서 행한 상상력의 결과로서 이미 실험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밝혀보려 한 갈릴레이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 방법이다. 그는 이원론을 주장하면서 정신을 앞세워 감각이 아닌 이성을 통해 바라보면 진리에 이른다고 확신한 듯 보인다.
    
전체적인 개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학에 기반을 두고 이를 확장하여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한편으로 뉴턴의 1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대한 거의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는 갈릴레이보다 더 세련된 것임에도 과연 데카르트가 가속도의 개념을 그의 내부에서 정립되었는가는 의문이다. 관성을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과 작용인에 근거하여 운동을 이해하려 하는데 그 정점은 별들의 운행이다. 그는 별들이 운행하는 것은 우주를 꽉 채우고 있는 어떤 물질(에테르)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그 소용돌이가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별들이 각각 운행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다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학을 전수한 것이며 그 근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진공이 없다는 것에 핵심 이유가 있다.  

 

만약 독자가 – 당시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핵심적이었음 – 그의 철학의 원리를 읽는다면 동조할 확률이 매우 큰 것이 그는 원인을 분석하려 들었기 때문인데 이러이러하다는 상상력에 기반을 둔 원인 분석은 실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근대 이후의 물리에 비해 미우 빈약하다. 더 나아가 상상력은 끝닿을 데 없으나 그것이 자연의 실제 현상과 맞아떨어지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은 오늘날 현대 물리의 여러 정황을 통해 확실해 보이기 때문에 그의 정신에 기초한 상상력은 다분히 틀릴 확률이 매우 높다. 실제로 대부분 틀린 관점의 주장을 그는 한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원리는 한때를 풍미했을 뿐만이 아니라 뉴턴 당시에 교재로 쓰일 만큼 널리 읽혔고 뉴턴 자신도 데카르트의 저작을 근간으로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냈다고 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더 나아가 뉴턴역학이 나온 이래 수십 년간 철학의 원리는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만큼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 이유는 새로운 진리가 나오고 이것이 포괄적 진리로 인정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만큼 걸리기 때문이다.  
    
비록 근대 물리 직전에 출간되었을지라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읽힐 수 있을만한 데카르트의 저작 '철학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방대하게 붙든 최후의 작품이다. 물론 이 에테르 문제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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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그의 저술과 사상에 관한 총설
W. D. 로스 지음, 김진성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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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논법을 역사상 처음으로 제시하여 논리학의 기초를 닦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의 사상의 연역 체계를 확립시켰다. 자연철학을 통해서 지상의 운동과 천체의 운동을 기술하고 기상학조차 제시하였다. 생물학과 심리학으로 방대한 동물 분류, 생식 등 체계적인 수많은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논증을 위한 으뜸 원리를 제시하여 형이상학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 인물이다. 윤리학, 정치학 및 연설/창작술 등 가히 수많은 저작을 통하여 후대의 학문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의 저술은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데 그 모든 것이 오늘날의 학문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는 것이 그의 저작은 매우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비록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꽤 있을지라도 그의 체계성과 논증을 통한 적확성으로 말미암아 후대에 그의 사상을 거치지 않은 학자들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가히 그의 모든 저작은 2400년 전에 나온 것치고는 그 양과 그 세밀함에 놀라며 체계적인 논증의 구조로 말미암아 정독하지 않고는 그 의미하는 바를 놓치기 쉽다.
 
이 책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술을 바탕으로 그의 사상에 관한 총설이라 할만하다. 우선 그의 저작으로 알려진 모든 것들을 꺼내 놓고 과연 그의 저작인가를 설파하며 지금까지 알려진 거의 대부분이 그의 저작임을 논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론 그의 저작들 중에는 당시에 내려오는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그의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그의 사상은 획기적이다. 유기체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한 그의 관점은 모든 분야에서 일관성이 있으며 그러므로 첫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뒤를 놓치기 쉽다. 더군다나 움직인다는 것 자체를 모두 운동으로 간주한 그의 관점은 필연적으로 궁극적 원인을 으뜸으로 삼게 했고 목적인이 궁극적 원인이나 작용인이 원인일 경우도 있다는 등 매우 논리적으로 세밀하게 모든 움직이는 현상을 네 가지 원인, 질료인/형상인/작용인/목적인, 으로 모두 설명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운동이 단순히 물리의 영역임에 비해 그에게는 물체 운동, 생식, 자연의 변화 등 모두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려 한 독창성이 대단히 독보적이다.
 
그의 형이상학은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는데 우선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구가 본성인데 그 가장 낮은 단계가 ‘감각적’, 그 위 단계가 기억의 사용 단계, 다음 단계가 ‘경험’으로 이 단계부터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해 준다. 그 윗 단계가 ‘기술’인데 실천적인 목적과 관련되어 있고 가장 으뜸인 단계는 ‘앎 자체를 위해 아는 것’으로 이것이 문명의 최후이자 최고의 산물이라고 피력한다. 이 부분이 감동스러운 것은 가장 으뜸의 단계로서 매우 기초적인 진리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를 가장 중요시 여김으로 그는 최고의 단일 학문이 존재하는가를 반문한다. 이때의 단일 학문이란 세부적 의존성이 없는 특성 존재의 본성 탐구가 아니고 존재 자체의 본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학문은 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사실 형이상학에서 그의 사상의 결정체를 볼 수 있어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의 사상은 매우 체계적이고 잘 정돈되어 있고 원리를 바탕으로 기술하는 그의 방법에서 적합한 논리를 엿볼 수 있기에 오늘날도 그의 사상 체계는 내려온다. 다만 그의 틀 안에서 변화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망라하여 전체를 조망하여 해석을 가하고 사상의 구체적 뜻을 밝히고자 한 총설로서 그의 사상 전체를 조망하는데 매우 가치가 높다. 다만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문가로서 그의 일생에 걸친 결과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입문서처럼 읽어 내리기가 쉽지 않다. 입문서를 읽고 접하면 매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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