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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원리 - 개정판 ㅣ 대우고전총서 6
르네 데카르트 지음, 원석영 옮김 / 아카넷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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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르네 데카르트는 근대 물리 탄생에 기여했기도 하고 오히려 그의 저작은 방해물이 되기도 했다. 이런 아이러니는 진리가 제대로 인정받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그간 내려온 지식을 바탕으로 확장시킨 그의 지식 세계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는 근대 물리 이전의 물리를 포괄적으로 주장한 마지막 사람이 아니었나 한다.
그의 ‘철학의 원리’는 앞부분의 신에 대한 기초적 담론(?)을 빼고 모두 물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운동이 무엇이며 천체의 운행, 지상의 현상들과 빛에 대한 분석, 심지어는 자석의 끌어당김과 밀치는 현상들에 대한 해석을 방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순전히 머리 속에서 행한 상상력의 결과로서 이미 실험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밝혀보려 한 갈릴레이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 방법이다. 그는 이원론을 주장하면서 정신을 앞세워 감각이 아닌 이성을 통해 바라보면 진리에 이른다고 확신한 듯 보인다.
전체적인 개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학에 기반을 두고 이를 확장하여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한편으로 뉴턴의 1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대한 거의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는 갈릴레이보다 더 세련된 것임에도 과연 데카르트가 가속도의 개념을 그의 내부에서 정립되었는가는 의문이다. 관성을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과 작용인에 근거하여 운동을 이해하려 하는데 그 정점은 별들의 운행이다. 그는 별들이 운행하는 것은 우주를 꽉 채우고 있는 어떤 물질(에테르)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그 소용돌이가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별들이 각각 운행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다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학을 전수한 것이며 그 근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처럼 진공이 없다는 것에 핵심 이유가 있다.
만약 독자가 – 당시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핵심적이었음 – 그의 철학의 원리를 읽는다면 동조할 확률이 매우 큰 것이 그는 원인을 분석하려 들었기 때문인데 이러이러하다는 상상력에 기반을 둔 원인 분석은 실험을 통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근대 이후의 물리에 비해 미우 빈약하다. 더 나아가 상상력은 끝닿을 데 없으나 그것이 자연의 실제 현상과 맞아떨어지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은 오늘날 현대 물리의 여러 정황을 통해 확실해 보이기 때문에 그의 정신에 기초한 상상력은 다분히 틀릴 확률이 매우 높다. 실제로 대부분 틀린 관점의 주장을 그는 한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원리는 한때를 풍미했을 뿐만이 아니라 뉴턴 당시에 교재로 쓰일 만큼 널리 읽혔고 뉴턴 자신도 데카르트의 저작을 근간으로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냈다고 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더 나아가 뉴턴역학이 나온 이래 수십 년간 철학의 원리는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만큼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 이유는 새로운 진리가 나오고 이것이 포괄적 진리로 인정받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만큼 걸리기 때문이다.
비록 근대 물리 직전에 출간되었을지라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읽힐 수 있을만한 데카르트의 저작 '철학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방대하게 붙든 최후의 작품이다. 물론 이 에테르 문제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