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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오혜선 지음 / 더미라클 / 2023년 1월
평점 :
TV 예능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종종 시청했던 적이 있다. 가끔 그 예능 프로를 볼 때면 그들이 말하는 북한의 현실이 너무 끔찍하면서도 잘 체감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하는 그들의 탈북 경험을 듣고 있을 때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북한과 하루 빨리 통일이 되기를 소망했었다.
이 책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탈북민 국회의원 태영호의 아내가 쓴 책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유럽에서 외교관으로 해외 생활을 하던 중 오랜 고민 끝에 한국행을 결정하기까지 그동안의 삶을 아주 생생하게 다룬 에세이이다. 처음엔 이 책의 띠지에 나온 질문처럼 "평양의 최고 엘리트로 살아온 그들이, 왜 한국행을 선택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 소위 엘리트라고 말하는 그들도 힘든 시절을 보냈을까?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 현실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런 궁금증으로, 북한의 현 실태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고 싶어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총 6부작으로 나뉘어있다.
1부 행운아
2부 두 아들의 엄마
3부 자유를 알게 되다
4부 버림받은 사람들
5부 기적
6부 진정한 자유인
1부의 제목은 행운아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제목처럼 행운이 가득했다. 그녀는 "빨치산 가문 부모님의 그늘 밑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나의 평생 운명인 줄 알았다. 그리고 김일성 일가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라고 믿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가장 큰 유일한 중앙급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평양외국어학원에 다니면서 그녀는 북한 권력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만은 제발 과오를 범하지 말기를, 삼수갑산으로 쫓겨 가는 일이 우리 가족에게는 벌어지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학원 시절 깨우친 권력의 세계는 훗날 절대로 권력을 쫓아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 말한다.
그렇게 그녀는 평범한 집안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한다. 그녀의 결혼 생활을 한 가지로 예로 들자면, 첫째 아들 주혁이에게 분유를 사먹일 형편이 되지 않아 남편이 유학시절 알고 지내던 중국, 소련에 유학 중인 후배들에게 부탁해 분유를 해결하곤 했다고 한다. 저자는 무역부에서 일을 하고, 남편은 외교부에서 일을 하는 맞벌이인데, 자식 분유를 사 먹일 돈이 부족한 형편이라니, 정말 감히 상상해보기 조차 하기 힘든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저자의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해외 출장을 가게 된다.
남편의 첫 출장지는 덴마크였다. 덴마크의 복지 제도를 경험하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북한의 현실을 경험한다. 몸이 아픈 첫 째 아들 주혁의 병 치료를 위해, 약 값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북한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던 환경과 비교하면서 절망했을 심정이 어떠할지 감히 조금이나마 예측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주혁은 다행히 병을 완치하게 된다.
그녀는 외국에서 보낸 8년 세월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서 보낸 8년 세월은 나의 사고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언제나 우리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은 조국이 아니라 외국의 복지제도였다."
그렇다면, 소위 엘리트 집안의 그녀는 왜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까? 그 부분은 이 대목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주어진 권력이 존재하는 기간에는 김 씨 일가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직급에 걸맞은 일반인들과 차별화된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일단 권력을 내려놓으면 남는 것이 없다."
어쩌면 일반인들보다, 말년에 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그들인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통해 그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교훈 삼아 자식들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녀는 부모의 과거가 나의 미래가 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식들만큼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위해 그렇게 한국행을 결정하게 된다.
그녀는 아직은 한국 사회에 적응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도전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읽으면서도 잘 믿기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한 민족이었는데 어떻게 그 시간 동안 이렇게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어쩌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에 정말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한 켠으로는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예전에는 남북의 평화를 위해 통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북한의 현 실상을 눈으로 마주하고 나니 나 또한 그 긴 세월의 격차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나의 다음 세대들은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솔직한 걱정도 되었다.
이 책은 소위 북한 최고 엘리트라고 말하는 그녀의 북한에서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하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혹은 유럽에서 북한 대사관으로 근무하던 그들이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