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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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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독자: 파괴적이고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17세기 예술가의 삶 이야기가 궁금한 분

💬 불친절한 책이다. 초반부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나오지 않고 파편화된 장면만 묘사된다.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사람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될 쯤 그들은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한다.

탄생과 죽음을 재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긴 하나, 100페이지 가까이 뭐가 뭔지 모른 채로 책을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특히 나는 등장인물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편인데다 프랑스식 남자/여자 이름을 구별하지 못해서 무척 힘들었다.) 책을 더 쉽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아래에 인물 가이드를 적어둔다. 물론 책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가며 읽고 싶다면 사전 정보 없이 읽기를 추천한다.

세상을 등지는, 금욕적인, 권력과 불화하며 예술을 끝없이 이어나가는
- 조프루아 몸므 ♂: 판화가, 질투로 인해 얼굴에 질산 테러를 당함
- 랑베르 하튼 ♂: 필경사, 작곡가, 튈린의 연인, 류트 연주자, 불신론자
- 생트 콜롱브 ♂: 작곡가
- 지빌라 공녀 ♀: 야콥 프루베르거의 제자

육체성을 사랑하고 세상을 감각하기를 즐기는
- 튈린 ♀: 생트 콜롱브의 제자, 하튼의 연인, 비올라 연주자, 아버지가 선장
- 마리 에델 ♀: 몸므의 아내, 하녀일 때 폭행 사건으로 트라우마
- 야콥 프루베르거 ♂: 작곡가, 지휘자

개인적으로 ‘예술가의 삶’이라는 주제보다는 사랑에 대한 묘사들이 인상깊은 책이었다.

▪️ 사랑만큼 기이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있을까? 숨을 거둘 때 단 하나뿐인 얼굴, 마음을 뒤흔드는 하나뿐인 얼굴, 불운한 영혼을 마지막 행복으로 채워 주는 하나뿐인 얼굴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운명이 있을까?

▪️ 손은 영혼을 표현할 때면 마치 그걸 발명해 내려는 듯이 내달린다.

▪️ 사랑하는 두 연인은 정말이지 자기들 둘뿐이다. 그들의 눈길에서 세상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들이 상대 몸의 살갖을 본 순간에, 그들이 상대의 목이나 어깨에 얼굴을 얹고 파묻고 냄새를 느낀 순간에, 도시, 스승, 친구, 시대, 아버지, 어머니, 왕, 여왕, 시종, 영웅, 신이 모두 그들 주위에서 멀어지고 부스러지고 소멸한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다른 모든 여자와 남자에게서 멀어진다. 그들의 이기심은 경이롭다. 그들이 만들어 낸 영역, 그들의 손들이, 그들의 바리케이드가, 그들 의 내밀함이, 그들의 굳건한 행복이 만들어 낸 영역. 그것들이야말로 그들이 이 세상에서 찾아낸 보물, 세상의 시샘 속에서 간직하는 보물이다. 그들 몸 한가운데에 그들이 보호하는 원천이 있다.

▪️ 그는 자신이 예견할 수는 없지만 모든 걸 발칵 뒤집어 놓고 시간을 사방으로 흩날려 버릴 무언가를, 그를 강박처럼 사로잡던 모든 욕망을 낱낱이 확인해 줄 어떤 사건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인생을 보냈다. 그 욕망들이 일상의 현실에서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게임은 그런 공간을 제공한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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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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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독자: 아름다운 자연 풍경 묘사를 좋아하는 분

💬 정말 이상한 책이다. 해제까지 읽어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읽는 내내 행복하고 황홀했다. 무엇보다 읽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참된 행복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시도니의 삶의 태도에서는 <도어>를 읽고 감히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에메렌츠의 충실함과 경건함과 자긍심이 느껴졌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완벽한 최선의 세상은 아니지만 최선의 세상으로 가꿀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한다“는 <캉디드>의 메시지가 겹쳐 보였다.

위의 책들과 메시지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책에 담긴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다. 내가 왜 이 책을 좋아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저 어렴풋하게 이해한 메시지와 자연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위화감이 들지 않는 천국을 엿본 기분이다.

▪️ 저녁나절까지 우리는 얘기하고 웃었다. 기쁨을 누리려고 머리를 짜낼 일도 없었다. 그냥 거기 그렇게 있음으로 족했다. 행복감은 조약돌로부터도 생겨났고 나무들로부터도 내려왔다. 생각에 골몰하지 않았다. 이 행복도 이 세상 모든 행복처럼 달아나리라는 것조차 겁내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 향기와 꽃, 꽃가루와 곤충들의 공중비행으로 가득찬 가운데, 부르거니 답하거니 소용돌이치며 보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온 세상의 광채에 놀란 아이들은 아직 여린 그네들의 가슴을 공기와 물과 대지와 불의 유혹에 열어 보인다. 그러고선 하루가 저물 무렵 기쁨에 지쳐 쓰러지곤 한다.

▪️ 신부님도 편지에 쓰기를, ”대지에 애정을 가지는 거야말로 인간적인 일이죠. 더구나 겸손하고 소박하게 이 대지에 천국의 이미지를 겸허한 덕목처럼 옮겨 심어가며 살아온 분이니.“

#이아생트의정원 #앙리보스코 #문학과지성사 #문지스펙트럼 #북스타그램 #그리스인조르바 #서보머그더 #캉디드 #볼테르 #이아생트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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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매트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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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독자: 기상천외하고 웃기고 통쾌한 여성 노인 주연의 이야기들을 읽고 싶은 분

📌 특히 좋았던 단편: <죽은 손의 사랑>, <스톤 매트리스>

처음 읽어 보는 마거릿 애트우드. 솔직히 글 자체가 내 취향은 아니라 초반부에는 조금 지루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작가는 천재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포인트들을 소개해본다.

먼저, 스타일이 확실하다. 전통적인 여성혐오적 전개와 묘사를 이용해 일견 뻔해 보이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어느 순간 통쾌하게 한 방 먹이는 것이 이 단편집의 전체적인 특징이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교묘하게 섞이는 구조도 무척 매력적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스타일에 익숙해질수록 이 단편집을 더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두 번째로, 나도 모르게 낄낄 웃으며 읽게 될 정도로 이야기가 창의적이다. 읽는 내내 남자 캐릭터들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골탕먹을지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들은 판타지 소설 속의 통조림에 오래오래 봉인되기도 하고, 동결 건조되기도 하고(오타가 아니다), 심지어는 본인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뻔한 복수 같은 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시 그 자체라 참 잔인하고 웃기다… (만약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이라면 자기에 대한 묘사를 읽고 수치심에 자살할 듯)

마지막으로, 소설 외적인 부분이지만 책의 내지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도비라의 배경이 암석의 단면 사진이라 책 자체가 청록색 조류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스톤 매트리스처럼 느껴진다. 책을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사소한 디테일!

▪️ 누군가를 안쓰럽게 여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대방의 고통은 그가 내게 의도적으로 가하는 악의적인 행위로 느껴지는 법이다.

▪️ 자기만의 방이 그것도 꼭대기 층에 있었던 덕에 잭은 사랑스럽고, 피로에 찌들고, 염세적이고, 세련되고, 검은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린 여자들을 신문이 너저분히 깔린 침실로 꾀어낸 다음 글쓰기 기술, 창작의 고통과 고뇌, 진실성이라는 자질의 필요성, 글을 팔아 버리고 싶은 유혹, 그런 유혹을 거부하는 고귀함 따위에 대한 예술적인 대화를 약속하며 인도풍 침대보가 깔린 침대에서 일시적인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었다. 자기를 오만하고 우쭐거리고 자의식이 충만한 남자로 보는 여자들에게는 일부러 자조적인 태도도 내비쳤다. 사실 잭은 그 여자들이 생각한 그런 사람이었다.

▪️ 요즘 같으면 밥은 어떤 거짓말을 늘어놓든 감옥에 갈 것이다. 버나가 미성년자였으니까.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행위를 지칭할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강간은 어떤 미치광이가 수풀에 숨어 있다가 덮쳤을 때 벌어지는 일이지, 무도회 공식 파트너가 벌목이 두 번 이루어져 황량한 숲이 펼쳐진 어느 초라한 광산 도시 인근의 결길로 데려가서는 얌전히 주는 대로 받아 마시라고 겁박하다가 버나를 한 겹 한 겹 찢어발겼을 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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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 -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박참새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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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독자: 요즘 젊은 시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어떻게 시를 쓰고 있나 궁금한 분

인터뷰어부터 핫하다. 김수영문학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박참새 시인이 ‘다음이 궁금해지는’ 시인 7인을 인터뷰했다.

사심 가득 담긴 라인업인 만큼,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인터뷰가 무척 매끄럽다. 게다가 시인들의 말투나 인터뷰의 분위기를 글로 잘 옮겨서, 다 읽고 나니 시인들의 이름과 캐릭터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인터뷰이들의 개성이 무척 뚜렷한데, 박참새 시인의 몇몇 공통된 질문(시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일까요? 시인은 왜 시인일까요?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나요?)에 대해서는 다들 어느 정도 비슷한 대답을 한다는 점이 특히 재미있었다.

덕분에 좋은 시인도, 좋은 사람도 많이 발견한 느낌이다. 언급된 시집을 적어도 한 권씩은 모두 읽어봐야겠다.

▪️ 정재율: 물론 다 다르게 느끼시겠지만, 시라는 것은 비교적 짧은 순간에 그 사람의 세계나 메시지를 아주 단박에 알아봐야 하는데, 그 자체가 어려우면서도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시를 읽다가, 그 시를 쓴 시인의 세계가 전면에 드러나는 걸 느끼는 순간 너무 재밌고, 시인에게 되묻게 되는 순간도 있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맞을까? 내가 잘 읽은 게 맞을까?

▪️ 김선오: 아까 이승훈 시인을 예로 든 것처럼, 시인은 쓰는 것과 사는 것이 어느 순간 같은 게 되어버리면서 시인지 뭔지도 모를 글쓰기를 계속해나갔잖아요. 그런 것처럼 생의 마지막에 이것을 시라고 부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쓰고 있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그게 반드시 시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게 되었어요.

▪️ 김연덕: 생활인으로서의 자아가 시를 쓸 때도 도움이 많이 돼요. 아무리 허구의 무언가를 쓴다고 해도, 현실의 자아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실감이라고 해야 더 맞을까요? 미세한 결이 가지고 있는 힘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만약 어느 마음이 아주 넉넉하고 선하신 분이 제게 다달이 돈을 줄 테니 시만 쓰라는 선택지를 주고 제가 그 삶을 선택한다 한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닐 것 같아요. 현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징그러울 정도로 다채로운 감정들이 글을 쓸 때 정말 좋은 토대가 되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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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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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독자: 같은 책을 여러 번 다시 읽는 걸 좋아하는 분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사나운 애착> - 비비언 고닉

💬 스무 살에 읽었던 책을 여든이 되어 다시 읽으면 어떨까? 아니, 여든까지 가지 않고 마흔에만 읽어도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다면 비비언 고닉을 통해 대리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여든넷의 나이에 발표한 <끝나지 않은 일>에서 비비언 고닉은 절대 한 번으로 읽기를 끝내지 말 것, ‘다시 읽기’를 통해 자기발견과 자기확장을 경험할 것을 권한다.

비비언 고닉은 ‘책을 다시 읽고 싶어서 더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준비와 함께 다시 읽을 수 있는 책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

▪️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 ‘다시 읽기‘를 시작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후론 내밀한 벗이 된 책들로 계속 돌아가고 또 돌아가곤 했다. 나를 저 멀리 다른 세계로 훌쩍 데리고 가주는 이야기의 쾌감만으로도 마냥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헤쳐나가고 있는 이 삶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끌어내야 할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나는 여전히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여전히 제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기운들에 얽매이고 휘둘리는 주인공을 보려고 읽는다.

#끝나지않는일 #비비언고딕 #글항아리 #티저북 #북스타그램 #다시읽기 #재독 #도서제공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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