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때 읽었던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이 있는데요. 시간이 날 때마다 몇 페이지씩 읽고, 한 권을 다 읽으면 그 다음 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거든요.
태백산맥과 아리랑이라는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가 너무 커서 그 의미를 한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랬기에 여러 번 읽으며 다독하게 되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정말 의미있게 읽어서인지 신작으로 서리꽃이라는 책이 나왔다고 하니 되게 반가웠어요.
그래서 바로 읽어보기로 했는데요.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서리꽃을 읽어보고 나서 생각해 본 서리꽃이라는 책은 유행도 감정도 빠르게 바뀌는 요즘, 제대로 된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솔직히 여태까지 책 속의 사랑과 현실의 사랑은 그 색깔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책 속의 사랑은 낭만적으로 반짝반짝 빛난다면 현실의 사랑은 현실이 섞이다보니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으니까요.
하지만 서리꽃은 재이와 소인이의 사랑을 막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다루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제가 말한 낭만적이라는 건 힘든 과정 없이 일이 쭉쭉쭉 진행되는 거예요. 하지만 서리꽃의 재이와 소인이는 힘든 일들이 생겨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참 예쁘더라고요.
"고맙다, 소인아. 내 마음을 그렇게 곱게 받아들여주니 고맙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인생길을 같이 가자."
남녀간의 사랑에서 사람보다는 조건이 중요해진 요즘이어서 그런지 이런 마음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는지도 몰라요. 지금도 분명 마음만으로 사랑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요.
서리꽃을 다 읽어보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서리꽃 속에서 소인이가 아팠을 때는 저도 모르게 걱정했다가 완치되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쾌재를 불렀다가 나중에는 눈물이 펑펑 다시 슬퍼졌다가 책 속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맞춰서 제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경험을 해본 것 같아요.
서리꽃 속 이런 관점이 참 재미있었는데요.
"담배꽁초를 버린 게 아니라 존경하는 시인 보들레르 선생께 담배 한 대를 권한 거잖아. 보들레르가 애연가였으니까. 담배가 타들어가다가 꺼졌으니까 꽁초가 된 거고."
"네에. 그 존경심이 참 아름다워요.
이 종이쪽들과 조약돌들은 뭐지요?"
"이 종이쪽들은 추모의 글들이고, 조약돌들은 종이가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게 눌러놓은 거잖아."
"아, 그렇네요. 저승으로 보내는 팬레터잖아요. 이건 더 아름다워요. 조약돌로 눌러놓은 마음이 더욱."
"흠, 저승으로 보내는 팬레터. 그 말 참 좋네.
이런 교감은 처음 보는 거야.
보들레르는 이백여 년 전 사람인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니,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인 거야."
"이 시인은 죽었지만 죽은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교감하고 있으니."
만약 재이나 소인이가 서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봤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기에, 이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수용해 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왜 책의 제목이 서리꽃일까 생각해보았는데요. 서리라고 하면 차가운 이미지여서 고난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니까요.
소인이가 재이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중에
"오빠, 우리의 사랑은 밤 추위에 피어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서리꽃처럼 짧았습니다. 그러나 짧은 만큼 진하고 뜨거웠습니다. 반 고흐의 그림들처럼. 아쉽고 안타깝지만 행복하고 또 행복했습니다."
저는 진짜 너무너무 안타까웠어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왜 오랜시간 함께할 수 없는 걸까요? 너무 사랑하면 오래 함께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적당히 사랑하며 오래 함께하는 게 더 좋은 걸까요??
"달 속으로 계속 날아가고 있는 두 마리 학은 아득하게 멀어지며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다. 점으로 변하고, 그 점마저 까마득하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서야 만난 재이와 소인이는 어떤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을까요?
재이와 소인이를 응원했기에 두 사람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리꽃을 다 읽고 덮으니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운다는 것이다.
시를 사랑하는 철학도와 화가가 되려는 미술학도의 시처럼 순수하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쓰여 있는데요. 서리꽃 속 재이와 소인이의 이야기를 만나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인디언 속담 중에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는데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리꽃을 읽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는데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든,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들 행복하게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