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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라니... 도대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턱도 없는 논리의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책 표지 때문이었을까, 동화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은 이 책에 반했다. 그리고 2009년, 올 해 크리스마스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따뜻하게 덮고서, 단숨에 읽어내린 이 책은, 정말이지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 생인 쇼타와 케이였는데, 워낙에 어른스러운 아이들이라 그런지 나이 차이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런 어린 청소년들의 감수성이기에 잘 녹아난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더 깊게 가슴에 와닿았다. 이 책에는 쇼타와 케이뿐만 아니라 그 윗세대, 즉 두 아이의 부모세대인 사스케, 구미, 요쿄, 도시히코를 비롯해 또 그 윗세대인 아다치, 커피전문점의 선대 마스터에 이르기까지... 그 외에도 마리, 단팥죽집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이 모든 인물들 각각의 인생이 하나같이 구체적이고 납득이 갈만한, 우리 주변에 꼭 있을 듯한 사연들을 지니고 있어 마치 영화 ‘러브액츄얼리’를 연상케 했다.
이 많은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는, 책 속의 기본적인 배경은 사랑의 나무에 서린 정령에 관한 전설로, 이 이야기가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다.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연인들의 마음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토끼가 한 마리 있는데, 이 토끼에게 부탁하여 밤하늘의 별들 중 하나를 선택해 별닦이를 시키면, 토끼가 그 별을 반짝반짝 닦아주는데 그 별이 반짝이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 마음을 알아주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별닦이 토끼, 상상만으로도 정말 로맨틱한 전설이 아닌가.
쇼타는 이 전설을 아다치 교수로부터 전해들었는데, 교수의 집으로 쇼타는 잔심부름을 해주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기 시작하면서 교수와 알게 된다. 그리고 교수가 사랑의 나무 전령사 역할을 대신하며 편지를 써주는 일을 하는데, 그 일을 도와주던 쇼타는 교수와 편지를 주고 받는 소녀가, 자신의 학교에서 자기를 좋지 않게 보는 소녀, 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란다. 케이는 쇼타가 일하는 심부름 센터의 주인 딸이다. 이 케이라는 독특한 소녀와 평범한 쇼타가 마리라는 외국인 친구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애쓰면서 점점 친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리의 친할아버지가 아다치 교수이고, 아다치의 아들이지만 집을 나간지 오래인 도시히코, 치과의사 요코, 케이의 아버지 사스케, 어머니 구미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케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친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시작하면서 케이는 쇼타와 우정과, 우정을 넘은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싹틔워가고, 부모세대의 얽히고 설킨 사랑의 실타래에 관한 진실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크리스마스 시즌 무렵에야 모든 이야기가 매듭이 풀리고 결말이 지어지는 구성이라 이 책은 정말로 지금 이때와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 책의 매력은 젊은 세대와 그보다 더 나이 든 세대의 소통과 그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랑은 별닦이 토끼와 항상 이어져 있다.
오늘 이 크리스마스날,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봐야겠다. 혹시 내 사랑을 이루게 해 줄 나만의 별닦이 토끼가 보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