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상당히 철학적이고 나른하며 지루하다면 지루한 작품이다. 작가가 의학을 전공해서인지 주인공 남자의 심리상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극작을 한 경험자답게 작가는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끊어서 씬 별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책을 읽을 때의 행간의 의미랄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보약이 되는 쓴 약을 삼키듯, 한 줄 한 줄이 고행이었던 이 책은, 그다지 재미는 없었지만 교과서를 읽은 후의 느낌처럼 머릿속에, 가슴 속에 그야말로 마음의 양식이 되는 작품이었다.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영화 <멋진 하루>를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조지’라는 남자주인공의 하루를 세밀하게 들여다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조지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남자의 너무도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정말 자세히 그리고 있어 그 신기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책의 글귀에 따르면 조지는 아침마다 이름없는 육신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다. 이름없는 육신이 되어 깨어난다니... 이 얼마나 철학적인 표현인가. 조지가 이처럼 이름없는 육신이 된 까닭은 동성 애인이었던 짐을 교통사고로 하루 아침에 잃게 됐기 때문이다. 조지는 짐과 함께 마시곤 했던 커피를 혼자 마실 때마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상실감에 몸을 떨곤 한다. 이 부분은 외화 <이프 온리>를 떠올리게 한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상황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사귀게 된 한 커플을 본 적이 있다. 두 남녀는 2년이란 너무도 좋은 시절을 보냈는데, 남자의 마음이 식기 시작했고, 남자는 여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여자는 이별의 준비가 아직 안된 상태였다. 이별의 슬픔을 견디지 못한 여자는 급기야 약을 먹었다. 죽을 결심을 한 것이다. 여자의 집 식구들이 다행히 쓰러져있는 여자를 빨리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 여자의 목숨은 살렸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여자는 남자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집에만 틀어박힌 채 마음 고생을 해야했다.

아무리 헤어져도 얼굴은 볼 수 있는 이별만으로도 이런 슬픔에 견디지 못할 정도인데, 앞으로 다신 얼굴도, 체취도, 숨결조차 느끼지 못하는, 한쪽 연인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준비 못한 한쪽 연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 가슴 먹먹함을 이 책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 와중에도 조지는 오랜친구인 샬럿은 자기연민과 조지에 대한 이성애적인 관심으로 조지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조지가 가르치는 대학의 학생들은 환하게 빛나는 젊음으로, 연인을 잃고 빛을 잃어버린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정신병을 앓는 느낌이었다. 한도 없이 우울하고 침잠하는 기분이었다가 한없이 아무렇지 않아 심심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신기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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