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고르의 중매쟁이
줄리아 스튜어트 지음, 안진이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중매. 어렸을 때 중매는 나이 많이 먹은 노총각, 노처녀들이 더 이상 오갈 데가 없어진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 어른들이 억지로 맺어주는 인연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어느새 중매를 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매라기보다는 소개팅에 가까운, 어른들의 소개도 있지만 아는 선배, 언니, 오빠들이 시켜주는 친구 사귀기의 장과 같은 만남이지만, 엄연히 따지면 이것도 중매라면 중매가 아닌가. 그걸 내가 보고 다닌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대학교에만 가면, 취직만 하면 자연스레 남자친구도 생기고, 애인도 생기고, 결혼도 하게 되는 줄 알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말이다. 하지만 웬걸, 연애 한번 하기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건줄은 몰랐다. 나와 맞는 사람, 나의 반쪽을 찾는 일이 이토록 어려울 줄은.

자기 인연 찾기도 이리 힘든 판에, 남의 인연을 맺어주기란 어떨까. 그 어려운 일을 겁도 없이 하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바로 ‘페리고르의 중매쟁이’ 속 주인공 기욤 라두세트다. 이 작품은 유럽 특유의 느긋함과 유머가 가득하다. 개인적으로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인지 별로 와닿지도 않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부분이었는데 기호에 따라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 좋아했다.

이 기욤 라두세트는 프랑스 남서부 페리고르 지방의, 33명 밖에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19년간 이발사로 일 해오다가, 언젠가부터 유행에 따라 이발소를 옮겨 점점 줄어드는 손님들에 회의감이 들어 직업을 바꾸기로 한다. 그리고 그 바꾼 직업이 바로 ‘중매쟁이’.

<마음의 욕망>이란 이름으로 중매사무실까지 차리고서 말이다. 그렇게 기욤은 마을 사람들을 엮어주는데 실패하기도, 성공하기도 한다.

여기서 웃기는 것은 정작 기욤 자신이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싱글이라는 사실인데, 어느날 기욤이 26년간 짝사랑 해온 에밀리에 프레세가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단 말이 바로 이 기욤을 보면 백분 이해가 갈 정도로 남의 사랑 앞에 왈가왈부하던 그가 자신의 사랑 앞에선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난다.

내 주위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정작 자기 자신은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봤으면서 자기 주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격과 취향들을 파악해 짝꿍을 찾아준다. 그 사람 덕분에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꽤 된다. 그 사람에게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신은 사랑 안 하고 싶냐고, 당신에게 맞는 짝은 왜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냐고. 그러자 인연은 멀리서 봤을 때 더 잘 보이는 것 같다고, 자기 인연도 분명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찾게 될거라고 믿는다 했다. 이 동화같은 말을, 이 작품 ‘페리고르의 중매쟁이’의 주인공 기욤이 실천하고 있다. 환상적인 이 동화를 직접 읽고, 그 따뜻한 기운을 얻어가길 권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수맨이 나타났다 - 제1회 대한민국 문학&영화 콘텐츠 대전 수상작
김민서 지음, 김주리 그림 / 살림Friends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회 대한민국 문학& 영화 콘텐츠 대전 청소년소설 부문 수상작’이란 소개 문구에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을 전공하고 시나리오를 공부하며 영화와 드라마작가를 꿈꾸고 있는 나인지라, 이 공모전에 눈독을 들이고 준비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별달리 떠오르는 소재도 없고 시간이 촉박해서 공모전에 응모를 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내년 공모전을 기대하며 잊고 살았었는데 그 수상작이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부러움 반, 질투심 반으로 수상자의 프로필부터 확인을 했는데, 나보다 한 살이 적은 스물 여섯의 젊은 여성작가로 이미 2권의 책을 출간한 적 있는 신예였다. 그렇게 얼마나 잘 썼나 확인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청소년 소설답게 이 책의 주인공은 중학생들이다. 희주, 유채, 지은이란 이름의 중학교 여학생들이 위험에 빠진 이들을 구해주어 동네에 전설처럼 떠도는 영웅, ‘철수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희주가 어느날 철수맨의 가방에서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교재가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를 토대로 철수맨은 분명 우리 학교 학생들 중 한 명일 거라고 유채와 지은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고, 학교 학생 중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철수맨 후보를 지목하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철수맨의 첫 번째 후보는 주현우. 학교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킹카로 통하는 강준석을 보필하는 비운의 2인자, 주현우가 2인자로서의 생활에 억눌려 있다가 밤에 철수맨으로 변신을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 현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유채가 일부러 현우를 철수맨으로 지목하기도 했지만 그의 행동들이 미심쩍어 보이며 혹시 철수맨이 맞나도 싶지만 이는 오해로 판명이 난다.

두 번째 철수맨 후보는 박민혁. 비실비실해서 세상의 온갖 질병이란 질병은 다 걸린 것 같다해서 붙여진 별명, 예수 박민혁이다. 자신이 철수맨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 일부러 약한 척 하고, 헐렁한 옷을 입어 연약하게 보이지만 알고보면 누구보다 강한 체력의 철수맨일 거라는 예상에서다. 하지만 이 역시 박민혁만의 사정에 의해 그렇게 보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마지막 세 번째 철수맨 후보는 여자, 백윤주다. 투포환 선수이기도 하고 언젠가 학교에서 자살을 하려는 학생을 구해낸 적이 있는 백윤주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다니며 철수맨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해에 불과했다.

철수맨의 정체를 밝혀가면서 희주, 유채, 지은 세 명이 친구 사이가 된 계기도 소개되고, 그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던 강준석, 주현우, 박민혁, 백윤주가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친구가 되는 과정들이, 재미난 명랑로맨스만화를 보는 것처럼 사랑스럽고 유쾌하다. 단순한 플롯으로 자칫 지루해질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이를 지루하지 않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작가의 필체 또한 뛰어났고, 영웅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가면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읽을만한 적절한 소재, 희망을 줄 수 있는 주제, 청소년들이 동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 공모전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이 되었던 것 같다. 특별히 특이하거나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원하는 딱 그 정도의 이야기 말이다. 다음 공모전을 준비하기 전에 중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찾아봐야겠다. 그 시절,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떠올려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로리다 귀부인 살인 사건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2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읽어본 적이 있고 좋아하는 추리소설 중 하나지만, ‘미스 마플’은 뭔지 잘 모르겠다. 미스 마플이 뭔지도 모르는데 미스 마플의 오마주라는 이 책의 소개문구에 동의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겐 어려운 일이다. 다만 내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첫째, 책제목이 흥미를 끌어서이다. 플로리다 귀부인 살인사건이라니... 구미가 당겼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다른 추리소설처럼 음침하고 잔인하며 밤에는 못 읽을 정도로 무시무시하지 않고 유쾌하고 신난다는 책소개 글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서였다. 단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 책을 골랐는데, 알고보니 이 책은 시리즈물이었다.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의 2탄 격이, 바로 이 책이었던 것이다. 1탄인 ‘맛있는 살인사건’ 역시 재밌는 제목과 함께 어딘지 유쾌할 것 같은 느낌이 풍겼다. 하지만 어차피 먼저 내 손에 쥐어진 건 2탄인 이 책이니 먼저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본격적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을 말하자면... 그다지 흡입력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방송 극작가인 작가성향 때문인지 글은 비교적 장면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 선했고, 인물들의 대사 역시 재치가 넘쳤다.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글이 재치있으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는 건 느껴지지만 실질적으로 재미가 있다거나 웃음이 나는 경우는 없었다. 추리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긴장감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분류해야 할 것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느낌 역시 스릴러 장르의 영화라기 보다는 ‘마파도’같은 분위기의 영화를 본 것만 같다. 어쩌면 책 소개에서부터 이 책은 유쾌하고 신나는 탐정극이라 못 박아 두었으니, 우리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이 책은 충분히, 나름대로 노년의 유쾌하고 낭만적이며 신나는 로맨스를 그려낸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으레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사랑도 끝났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할머니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쓸데없이 그런 걸 왜 해? 누구한테 보여줄 일 있다고?’ 하며 되묻는 손주들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노인들은, 인생을 다 산, 앞으로의 인생은 없는 존재로만 보는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이성에 가슴이 뛰며, 일을 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젊은 우리들에겐 노인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고, 나이가 있으신 분들에겐 충분히 공감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추리적인 요소와 결부시킨 데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추리소설은 일단 긴장감이 생명이고, 음침하고 잔인함은 필요조건이었다는 사실을 한번 더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우선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랑이 진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서정적인 제목만 보면 그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취향을 가진 터라, 이 책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파랑이 진다>, 이 얼마나 아련하고도 달달한 느낌의 어감인가. 책표지처럼 푸르디 푸른 이야기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고, 바다에서 이는 파랑이 진다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이 매력적인 제목의 책에, 나는 풍덩 빠져들고 말았다.

이 책을 읽다보니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요노스케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한 청년이 겪는 캠퍼스 일대기라는 점에서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요시다 슈이치의 팬이라 <요노스케 이야기>의 요노스케가 더 끌리긴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는 료헤이가 등장한다. 비오는 날, 대학교에 등록금을 납부하러 간 료헤이는, 원하던 대학도 아니었고, 거기다 신생대학인 그 학교에 다닐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하고 있다가, 에나멜 소재의 빨간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그녀, 나쓰코에게 첫눈에 반해 등록금을 납부하고 만다.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들 중 그 학교에 가고 싶어서 입학하게 되는 경우는,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성적에 맞추다보니 대학도 정해지고, 재수를 안 하려면 그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방법 밖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그렇게 대학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들어가고 나면, 어김없이 사랑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청춘’이니까. 이 책에선 그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이를 로맨틱하게 그려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에선 대학에서 한번쯤은 만나게 될 여러 가지 상황과 친구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대학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동아리’. 료헤이 역시 어느 동아리에 들 것인지, 집안 사정도 안 좋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벌려면 아무 동아리도 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거구의 친구 가네코가 나쓰코와의 인연을 만들어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테니스부에 들게 된다. 그리고 한때는 날리는 테니스 선수였지만 개인적인 집안 사정으로 인한 정신병으로 테니스를 못하게 된 안자이,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서서히 정이 들어가는 친구 구다니, 료헤이를 좋아하는 유코까지. 거기다 료헤이의 짝사랑 그녀, 나쓰코의 소위 있는 집 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설정과 료헤이 주변의 친구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풋풋한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보여주는 요소들이다.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거나, 그게 아니라면 한번쯤 상상을 해본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독자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이라서, 또는 우리들에겐 이미 지나간 일, 즉 추억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닮아있어 아름답고 아련하게 다가온다. 정작 그런 일들을 당하고 있었던, 청춘, 그때는 료헤이와 그 친구들만큼이나 그토록 힘겹고 무거운 짐들이었던 잊고서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청춘’이 지는 과정, 험난했던 파랑이 지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수채화같은 느낌으로 채색하고 있다. 요노스케와 같이 만나게 해주고 싶은 료헤이를, 여러분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 범인이었던 조승희씨를 보면서 같은 한국인이란 것에 또 한번 경악하고, 그 충격이 어느정도 잠잠해질 무렵에는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었길래, 가슴속에 쌓였던 한이 얼마나 크길래 그 분풀이로  그 많은 사람들을 부상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이 책은 아마 그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나 싶다. 조디 피콜트란 작가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작가였는데, 이 민감한 소재를, 두꺼운 분량의 양으로, 그것도 두 권씩이나 되는 방대한 양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흥미가 일어서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됐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먹먹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우리나라 김려령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난 뒤의 그 맛과 비슷했는데, 그보단 훨씬 부드럽고 서정적인 문체라 할 수 있었다. 즉, 학창시절에 집단따돌림을 받은 한 아이의 상처와 그 분노가 어느날 폭발한다는 대략적인 내용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인데, <19분>이란 작품에선 그 아이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묘사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을 순차적인 구성이 아닌, 앞으로 뒤로, 자유롭게 시공간을 오가며 구성했다는 점이 독특하고, 이 책을 읽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느 평범한 날의 아침, 한 자그마한 마을의 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의 시간은 단 19분. 그 짧은 시간에  10명이 죽고, 19명이 큰 부상을 당했으며, 그 나머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 또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사건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사건의 범인은 그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피터 호턴. 하얀얼굴, 주근깨, 안경, 다른 아이들보다 작은 체구의 이 아이는 누가봐도 사건의 범인이라기 보다는 사건의 피해자로 적합할 것 같은 생김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총을 쏘는 모습을 본 목격자만 해도 수백명, 학교 안에 여기저기 설치된 CCTV 증거 등 모든 정황이 그 아이, 피터 호턴이 범인이란 것을 지목하고, 현장에서 그 아이는 곧바로 붙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법제도 특성상 그러하듯이, 이 죽을 죄를 진 피터 호턴에게도 변호사가 붙게 되어 재판이 열리고, 변호사는 이 아이가 그런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터 호턴의 상처투성이 뿐인 유치원과 학교생활이 드러난다. 자신이 왜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집단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피터 호턴은 자연스레 분노가 쌓여갔다. 

이 작품의 색다른 점은 이 아이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상황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터 호턴의 친구였지만 자신 역시 집단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괴롭히는 집단에 속하기를 선택한 조지, 나름대로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식을 양육한다고 양육했던 피터 호턴의 부모 루이스와 레이시, 조지의 엄마 알렉스 등을 보여주면서 그들 또한 피터호턴을 그 상황에 몰고 간 장본인들은 아니라는 점, 특별히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땐 그렇게 가슴아프고 힘들었던 사건사고들도 콧웃음 칠 정도로 별 것 아닌 것들이지만, 그걸 직접 현실로 당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겐 심각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 주변의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는 없는지를 살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물었을 때 적어도 "나요."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