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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 범인이었던 조승희씨를 보면서 같은 한국인이란 것에 또 한번 경악하고, 그 충격이 어느정도 잠잠해질 무렵에는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었길래, 가슴속에 쌓였던 한이 얼마나 크길래 그 분풀이로 그 많은 사람들을 부상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이 책은 아마 그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나 싶다. 조디 피콜트란 작가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작가였는데, 이 민감한 소재를, 두꺼운 분량의 양으로, 그것도 두 권씩이나 되는 방대한 양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흥미가 일어서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됐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먹먹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우리나라 김려령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난 뒤의 그 맛과 비슷했는데, 그보단 훨씬 부드럽고 서정적인 문체라 할 수 있었다. 즉, 학창시절에 집단따돌림을 받은 한 아이의 상처와 그 분노가 어느날 폭발한다는 대략적인 내용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인데, <19분>이란 작품에선 그 아이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묘사하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을 순차적인 구성이 아닌, 앞으로 뒤로, 자유롭게 시공간을 오가며 구성했다는 점이 독특하고, 이 책을 읽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느 평범한 날의 아침, 한 자그마한 마을의 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의 시간은 단 19분. 그 짧은 시간에 10명이 죽고, 19명이 큰 부상을 당했으며, 그 나머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 또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사건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사건의 범인은 그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피터 호턴. 하얀얼굴, 주근깨, 안경, 다른 아이들보다 작은 체구의 이 아이는 누가봐도 사건의 범인이라기 보다는 사건의 피해자로 적합할 것 같은 생김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총을 쏘는 모습을 본 목격자만 해도 수백명, 학교 안에 여기저기 설치된 CCTV 증거 등 모든 정황이 그 아이, 피터 호턴이 범인이란 것을 지목하고, 현장에서 그 아이는 곧바로 붙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법제도 특성상 그러하듯이, 이 죽을 죄를 진 피터 호턴에게도 변호사가 붙게 되어 재판이 열리고, 변호사는 이 아이가 그런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터 호턴의 상처투성이 뿐인 유치원과 학교생활이 드러난다. 자신이 왜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집단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피터 호턴은 자연스레 분노가 쌓여갔다.
이 작품의 색다른 점은 이 아이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상황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하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터 호턴의 친구였지만 자신 역시 집단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괴롭히는 집단에 속하기를 선택한 조지, 나름대로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식을 양육한다고 양육했던 피터 호턴의 부모 루이스와 레이시, 조지의 엄마 알렉스 등을 보여주면서 그들 또한 피터호턴을 그 상황에 몰고 간 장본인들은 아니라는 점, 특별히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땐 그렇게 가슴아프고 힘들었던 사건사고들도 콧웃음 칠 정도로 별 것 아닌 것들이지만, 그걸 직접 현실로 당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겐 심각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 주변의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는 없는지를 살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물었을 때 적어도 "나요."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