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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진다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서정적인 제목만 보면 그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취향을 가진 터라, 이 책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파랑이 진다>, 이 얼마나 아련하고도 달달한 느낌의 어감인가. 책표지처럼 푸르디 푸른 이야기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고, 바다에서 이는 파랑이 진다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이 매력적인 제목의 책에, 나는 풍덩 빠져들고 말았다.
이 책을 읽다보니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요노스케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한 청년이 겪는 캠퍼스 일대기라는 점에서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요시다 슈이치의 팬이라 <요노스케 이야기>의 요노스케가 더 끌리긴 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에는 료헤이가 등장한다. 비오는 날, 대학교에 등록금을 납부하러 간 료헤이는, 원하던 대학도 아니었고, 거기다 신생대학인 그 학교에 다닐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하고 있다가, 에나멜 소재의 빨간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그녀, 나쓰코에게 첫눈에 반해 등록금을 납부하고 만다.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들 중 그 학교에 가고 싶어서 입학하게 되는 경우는,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성적에 맞추다보니 대학도 정해지고, 재수를 안 하려면 그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방법 밖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그렇게 대학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들어가고 나면, 어김없이 사랑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청춘’이니까. 이 책에선 그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이를 로맨틱하게 그려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에선 대학에서 한번쯤은 만나게 될 여러 가지 상황과 친구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대학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동아리’. 료헤이 역시 어느 동아리에 들 것인지, 집안 사정도 안 좋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벌려면 아무 동아리도 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거구의 친구 가네코가 나쓰코와의 인연을 만들어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테니스부에 들게 된다. 그리고 한때는 날리는 테니스 선수였지만 개인적인 집안 사정으로 인한 정신병으로 테니스를 못하게 된 안자이,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서서히 정이 들어가는 친구 구다니, 료헤이를 좋아하는 유코까지. 거기다 료헤이의 짝사랑 그녀, 나쓰코의 소위 있는 집 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설정과 료헤이 주변의 친구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풋풋한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보여주는 요소들이다.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거나, 그게 아니라면 한번쯤 상상을 해본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독자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이라서, 또는 우리들에겐 이미 지나간 일, 즉 추억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닮아있어 아름답고 아련하게 다가온다. 정작 그런 일들을 당하고 있었던, 청춘, 그때는 료헤이와 그 친구들만큼이나 그토록 힘겹고 무거운 짐들이었던 잊고서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청춘’이 지는 과정, 험난했던 파랑이 지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수채화같은 느낌으로 채색하고 있다. 요노스케와 같이 만나게 해주고 싶은 료헤이를, 여러분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