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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4년 전, 감우성·손예진 주연의 <연애시대>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본방,재방에 요즘에도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해주는 방송분까지 거의 6번은 본 듯하다. 원작이 있다는 소리에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구입했고, 그래서 알게 된 작가가 ‘노자와 히사시’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감성적인 문체로 당연히 여자작가라고 생각했던 그가 남자라는 점, 2004년에 44살이란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여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작가가 일찍 사라져버렸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연애시대> 외에 그의 다른 작품이 빨리 출간되기를 바랐었는데, <심홍>이란 작품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두 말할 것 없이 선택하여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연애시대>와 함께 <연인이여>란 작품까지, 주로 남녀간의 연애 이야기만 다루는 작품을 쓰는 작가라 생각했었는데,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도 유명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가 쓰는 미스테리 스릴러 소설을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내렸다.
이야기는 가나코라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애가 수학여행을 즐기고 있다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고는 챙겨서 택시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가족들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구나.. 어린 아이였던 가나코도 느낌으로 눈치를 챈다. 교통사고라도 일어난 것일까? 원래 잘 안 나가는 우리 가족이었는데... 동생 두 명과 함께 엄마 아빠가 외식이라도 하고 오는 길이었나?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추리를 해보지만, 가나코가 직면해야할 사실은 너무나 참혹하고 충격적이다. 어떤 남자에게서 원한을 산 가나코의 아빠. 그 남자는 가나코의 아빠를 살해하기 위해 가나코의 집으로 쳐들어갔고, 우발적으로 가나코의 아빠는 물론 엄마, 동생 둘까지 죽였고, 죽이고 나서도 그들의 얼굴을 향해 해머로 내리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뭉개놓았다. 가나코 역시 죽을 수 있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학여행 중이어서 혼자 살아남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가나코는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정신병까지 앓으며 스무살, 대학생이 된다. 스무살이 된 가나코는 그때까지도 자신을 벌한다는 의미로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강간당한다는 심정으로 섹스를 나누며 지낸다.
매스컴을 통해 알게 되는, 가족들을 죽인 남자에 대한 소식, 사형이 내려졌다는 소리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이 드는 가나코는 그 즈음 그 살인자에게도 자기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인자의 딸로 낙인 찍혀 살아갈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벌을 주고 괴롭혀주고 싶은 마음이 든 가나코는, 그녀, 미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미호의 친구가 된 가나코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관찰하며 그녀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데, 복수해주리라 마음먹었던 가나코는 미호 역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인자이자 사형수인 자기 아빠의 벌을 대신 받는다는 생각으로 폭력을 쓰는 남자와 동거하며 맞고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 연민의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임신한 자신의 배를 두들겨 패 유산을 시킨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그 남자를 살인하기로 했다고, 가나코에게 도움은 요청한다. 가나코는 미호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친구로서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미호의 살인 계획에 동조하기로 하는데...피해자의 딸과 가해자의 딸이라는 서로 상반된 입장의 두 여성의 복잡미묘한 심경을 긴장감있게 묘사하여 풀어내는 노자와 히사시의 필력은 아주 탁월했다. 감성적인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