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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함께 읽기
강대진 지음 / 북길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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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판본들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판본이 없었다. 가장 나은 판본은 너무 오래되었고 최근 출판된 책들은 그림이 빠지거나 번역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북펀드를 통해 받게 된 이 책은 비록 번역본은 아니지만 훌륭한 안내서이며 부록(도록)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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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법칙 -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
피에르 가니에르.카트린 플로이크 지음, 이종록 옮김, 서승호 감수 / 한길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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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명 셰프와의 대담집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놓는 것에서도 징후와 시대적 맥락이 있다.

 

왜 지금, 요리사 책일까.

 

출판사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요리도 잘 모르고, 더구나 고급 레스토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책.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의도를 알려면 읽어야 되지 않겠나.

막연하게 요리 사진과 공감가지 않는 값비싼 식재료, 요리 이야기들이 잔뜩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장고에 묵혀놓은 와인처럼 서가 밑에 누워있던 책을 꺼내 첫 장을 넘겨보았다.

 

"저는 이 책이 유명 인사의 자서전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해요. 독자들에게 정말로 쓸모있는 책, 그저 닮고 싶은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에게 어떤 증거를 보여주는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나이쯤 되면 인생과 사상을 책을 담는 작업이란 마치 인생의 마지막 막을 내리는 느낌이에요. 이제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것들을 마무리해야죠."

 

나는 그가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대담을 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막연히 가졌던 선입견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하고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는 살면서 세 번의 결혼과 파산, 그리고 성공을 경험했다.

 

 

그는 유쾌한 사람도 아니고 삶에 활기를 주는 인물도 아니다.

무척 고독하고 어두운 사람이었다.


"제 인생에서 의미있는 단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우울일거예요. 우울은 일상에서 느끼는 허무함과 불안정감 그리고 사물이나 존재 가치에 대한 일종의 자각적인 의식이었어요."

 

그는 우울이라는 감정을 이렇게 풀어놓는다.

 

감정의 마이너스는 구덩이에 빠져 한참을 기어올라와야 할 나락이 아니라

 

한번 튕겨 올라오기 위한, 스프링의 응축이었다.
그에게 우울은 질곡이기도 했고 상처이기도 했지만
삶의 주름이기도 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의 과정이었다.


그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과거는 공허하고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다.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장인이며 무던히 나아가는 무소였다.

그는 무언가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사람이었으며 뭔가를 만들려는 욕구가 강했다.

 

 때로는 사용하지도 않을 재료들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일도 있었으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과의 충돌을 겪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충동적 욕망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 유별난 행동이 예술적인 방향으로 기울 때까지 허공에서 외줄을 타며 앞으로 가야 한다."

 

그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일을 배웠을 뿐이었다.

그러다

열여섯살.
친구들과 놀다가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집어서 만들어준 요리에
친구들이 뜻밖의 칭찬을 하면서 그는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여기서 감정의 흔적들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몇가지 원칙들이 있다.

생각이 많아지면 요리가 위태로워진다고 말한다.
그는 재료의 본질을 지키면서 기준점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 자체, 식재료의 개성을 존중한다.

 

 그는 순수함과 단순함을 강조한다.

 

그의 메뉴는 현학적이거나 문학적이기보다는 적나라하다.

 

게르니카 고추를 넣고 끓인 대구 쿠부이용 수프

시금치로 감싼 게살

허브 버터에 서서히 익힌 두툼한 광어

그의 철학이 묻어나는 메뉴이름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직관에 의한" 요리를 하는데, 

 

그는 조리 중에 맛을 보지 않는다.

베토벤이 청각을 잃고도 교향곡을 썼듯이

 

그는 사고하면서 음식을 음미한다.  


그의 요리는 유기적 구조물이다.

 

요리들이 논리적이고 감성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해진 레시피가 없고 그때 그때의 영감으로 접시 위에 감정을 담는다.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듯, 그의 창조성과 상상력은 다른 영역들과의 소통에서 탄생한다.

 

그는 영역을 가리지 않는 독서가이며, 미술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
또, 콜레주 드 프랑스의 화학 교수 에르베 디스와도 관계를 가지며
그와 함께 요리와 화학을 교접하는 대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하나같이 모르는 식재료들,
어떤 맛일지 감도 오지 않는 처음 보는 음식들,
몇 점 간신히 올려진 접시들을 보며 군침이 돌 일은 없었다.
감정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마음으로 그 맛을 음미해볼 수 있는 레시피에 책 읽는 내내 즐거웠다.
거장의 식탁은 역시나 진수성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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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길 - 우리 함께 걸어요
안희정 지음 / 한길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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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도지사가 그간 SNS에 올렸던 글들을 중심으로
대선출마선언문, 각종 공식선상에서 했던 연설문 등을 엮은 책이다.

SNS에 올렸던 글들이다보니 운문처럼 짧막한 문장마다 줄을 바꾸고 문단을 나눠놓았다.
사실 글이라기보다는 말을 글로 옮겨적은 것들이다.
정치철학보다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글이 많고 일상언어가 많다. 
기도하는 심경으로 그날그날 적은 저의 자성록”이라고 밝혔다.
비문들도 간혹 눈에 띄는데, 일상언어라서 비문이 충분히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하필 대선출마선언문에서 발견된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사태는~때문입니다'로 주어-술어가 호응하지 않는다.
'사태는 ~때문에 발생했습니다.'라는 식으로 써야 했다.
대선출마선언문을 꼼꼼히 검토해주는 참모가 없는 듯하다. 

이 책은 안희정의 본질을 보여주기보다는 안희정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느낌이고
인터넷만 뒤지면 찾아볼 수 있는 글들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만약 나라면 돈받고 판매하기에 손이 부끄러울 것 같다.

감상을 적을까 말까 여러번 고민했다.
이 책은 정치인의 언어로 쓰여졌다.
직역보다는 의역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언어란 늘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말실수를 해도 빠져나갈 변명거리가 있으며
좋은 말을 해도 오해가 생기곤 한다.
내가 이 책에서 안희정의 언어를 100%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나 역시 한 명의 유권자로서
그의 말을 내 선에서 이해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글을 남긴다.


목차를 보면 5개 장으로 분장되어 있다.
제목만 보면 1. 우리 함께 바꿉시다. 에서는 '교체'를 말하고
나머지 2장부터 5장까지는 모두 '통합'이 주제이다.
그가 말하는 큰 메시지는 교체와 통합이다.
교체는 모든 후보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키워드이다.
결국 이 책에서 그의 메세지는 통합에 방점이 찍힌다.
통합을 중심으로 이 책을 분석해보겠다.
 
그의 논리구조는 이렇다.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통합이 필요하다.
통합을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
올바른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화하면, '선의 → 대화 → 통합 → 민주주의' 이다.
     

1. 선의
 
최근 논란이 된 선의.
그가 말하는 '선의'는 2015년 3월에 쓴 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 
적어도 그가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즉흥적으로 만든 말은 아니다.

그는 다른 글에서  경쟁의 원칙을 10개 나열하는데,
그 중 두 번째가 "모든 비판과 주장을 선의로 받아들인다."이다.
많은 분들이 비판하지만, 나는 그의 선의 발언이 전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선의'는 토론의 기본 전제조건이다.
잘못된 토론자세 중 하나는 상대방의 발언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방을 정신분석하는 자세이다.
가령, 18세 선거연령조정을 할 때, 그것의 논리를 따지지 않고,
'니네한테 유리하니까 주장하는 거 아냐?'
이런 식으로 의도부터 불순하게 여기고 토론을 하는 태도이다.
모든 일에 이렇게 상대방의 의도부터 의심하고 시작하면
토론이나 대화가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겠다.
법정에서 말하는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일면 상통한다.

다만 합리적 의심일 때는 문제가 다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치겠다고 조선에게 길을 내어달라고 하는데
이걸 선의로 받아들여서 "OK!" 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이미 삼국지연의를 읽었을 것이고,
주유가 제갈량한테 했던 그 계책과 주유의 죽음까지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눈에 보이는 뻔한 계책임을 알고 있을 것이며,
이것은 거부하라고 던진 침략빌미일 뿐이었다.
이런 경우까지 선의의 원칙을 고수하기 힘들다.
선의는 원론적인 태도이지 모든 상황에 적절한 것은 아니다.
박대통령에 대한 여러 가지 혐의들, 구체적 정황, 증인, 증거가 속출하는데
선의로 했을 거라는 추정은 실수다.
'통, 협치, 연정 등 통합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그저 이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합리적 의심'까지 배제해버린 것이다.     
     

2. 대화
 
장인어른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안지사 장인어른은 오래전부터 여당을 지지하시는 분이다.
사위가 참여정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을 때도 그와 상반된 정치색을 유지하셨다.
그런데 안지사의 논리가 참 해괴하다. 
장인어른은 625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면서,
그를 위로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는 정치색이 다른 사람을 이성과 논리를 갖춘 인격체로 놓고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이런 아픔을 겪어서 감정적으로 엉킨 사람들이니 우리가 위로해주자는 발상이다.
 이게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식 대화이다.

결국 그의 민주주의는 이런 식으로
융합이 아니라 통합, 통합이 아니라 봉합으로 격하된다.
JTBC 뉴스룸에서 "제 말이 어렵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안지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안어른을 대하듯 국민들의 이해력을 낮춰보는 시각.
대화? 이게 대화인가.
 
다른 글에서,
"대화는 선과 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 다른 진실을 보고 인정할 때 시작"한다고 말했다.
,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선의 경쟁이라는 지극히 건전한 민주주의적 시각을 보였다.
그런데 곧이어 나오는 문장은 모순덩어리다.
"정의의 승리는 실력으로 제압하는 일이 아니다."
앞 문장에서는 '선과 선의 경쟁'을 말해놓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정의와 불의의 대결'로 풀이해버렸다.
무엇이 본심인가.

     
3. 통합
        
그는 비교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비교는 사람을 죽인다"며 "우리의 인식은 차별과 비교 속에서 대부분 형성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격에 대한 비교와 정책에 대한 비교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교자체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람을 비교대상으로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통합' 외에 모든 가치를 이렇게 반쪽짜리로 만든다.

다른 글에서,
"다름보다는 같음을 이야기"해야 한다며, "배척하기보다는 서로를 가슴에 품어 안읍시다."라고 말한다.
그는 '다름을 이야기 하는 것'을 '배척하는 것'으로 비약한다.
다름을 말하는 게 왜 배척인가? 
민주주의는 같음의 철학이 아니라 다름의 철학이다.
그는 이렇게 또 통합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든다.
하지만 그는 통합을 '동질성'으로 오해하고 있다.
통합을 동질성으로 이해하면 사회의 균질화로 나아간다.
그의 관점에서 작은 개울 하나만 넘으면 전체주의의 영역이다.
 
그가 말했던 '대연정' 역시 통합의 이미지와 겹친다.  
그는 대연정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협치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 해명했다.
그런데 협치와 대연정은 다른 문제이다.
상대방과 대화하겠다는 의지의 영역과 연합하겠다는 실천의 영역을 혼동한다.
협치가 왜 대연정이라는 정치적 기술로 나타나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단순히 정당정치의 협치를 강조한 말이었다면,
그가 말한 저 대연정은 '협치하겠다는 비유'이지 실제로 대연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연정이라는 말을 쓰면 안되었다.
    
그는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개항기 때의 분열을 말한다.
조선 몰락의 원인을 지배층의 분열로 규정한다. 이른비 식민사관에서 보이는 당파성론이다.
식민사관과 비슷하다고 해서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몰락으로 규정한 시각이 문제이다. 
분열은 결코 문제가 아니다.
어느 국가, 어느 사회든 분열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지금 오로지 한 마음 한 뜻인 나라가 있나.
분열되지 않은 나라가 있으며 사회가 있나.
일당독재가 아니면 분열은 무조건 가시적으로 확인되며,
지어 중국이나 북한같은 일당독재 국가에서도 분열이 존재한다.
분열이 망국의 계기라면 1년에도 두 세번씩 지구상 모든 나라들은 붕괴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는 체제'라서 갈등과 분열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또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겹칠 수 밖에 없다. 
분열과 갈등은 무조건 발생한다.
결국 문제는 분열과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융합하는 민주주의적 시스템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안지사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대화를 끌어들는데,
그에게 갈등은 치유의 대상일 뿐이다.
갈등과 분열은 자연발생적인 물줄기처럼 억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이 자유로이 움트게 하여 다스리는 게 효과적이다.
이미 우왕의 치수에서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는 분열과 갈등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발전을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분열과 갈등 덕분에 이만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 책에서 보이는 안지사의 통합은 앞뒤를 보지 않는 근본주의이다.    
     

    

4. 민주주의
 
그가 헌법 개정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여당을 지배하지 않을 것이며
의회의 입법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개헌에서는 국가에서 시민주도로
중앙주도에서 지방분권으로
기업주도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라는 기본 구도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길지 않는 책에 왜 이리 앞뒤에 모순이 많은지.
그는,
"민주주의는 법치입니다.
민주주의는 대화입니다.
민주주의는 협치입니다."
라고 규정한다.
민주주의를 줄기차게, 수없이 말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인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법치가 아니다.
법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유주의가 법치를 통해 민주주의에 족쇄를 채운 것 역시 사실이다.

또, 그는 '직접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이에 대치되는 주장을 아무런 장치도 없이 서슴없이 쏟아낸다.
그는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받는다는 점을 들어 선거를 "신탁"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선거는 위대한 신탁"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발전할 것이다고 말한다.
아예 잘못된 생각이다.
직접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선거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위임이 아니라 대리이다.
국민들은 정치인에게 권한을 일체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대리하게끔 임명하는 것이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한다는 생각은,
곧바로 그가 앞서 말한 '직접민주주의'와 상충한다. 
그가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는 이렇게 이미지, 허상일 뿐이다.  
    
그는 세월호를 슬쩍 들여와
"가만히 있으라"를 인용하며 중앙집권시대의 지침이라고 규탄한다.
그런데 그는 다른 글들에서,
자신은 "직업 정치인으로 일관되게 살았고 훈련받았다"고 말하며
"당이 감옥에 가라면 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뜯어보자.
당이 감옥에 가라고 해서 갔다는 말은,
자신은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될만한 입장이었고
따라서 감옥 갈 이유가 없었지만
당이 (부당하게) 가라고 했고, 나는 그에 따랐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당을 사랑하고 정당정치를 신봉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중앙집권시대의 지침을 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사드에 반대하지만 이미 결정된 것은 무를 수 없다.'는 입장도
'당이 가라면 감옥에 간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쓴 글을 보면,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을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소출물을 국가에 바치며" 라고 표현한다.
이 부분은 솔직히 소름이 끼쳤다.
자기 자식을 '소출물'로 표현한 것도 충격적이었고,
'국가에 바친다'는 표현에서는 일제 군국주의가 떠올랐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기독교적 경건함까지 보인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국가가 시키면 우리는 뭐든 해야한다.
하기 싫어도, 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우리는 국가가 하라면 해야 한다.

    
5. 기타
 
(1) 그는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안희정의 정부는 규제와 감독만을 담당할 예정이다. 
    
(2)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망을 갖고 산다고 말하는데,
그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은 "첫째가 사랑, 둘째가 감사"라는
선문답을 적어 놓았다.
정치인의 글인가 목회자의 설교인가?
 
(3) 인공지능의 시대를 언급하며 점점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결코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근거로, 노동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시대는 단지 산업구조와 일자리 방식의 변화가 발생할 뿐이다.
이 말도 근거가 취약하다.
노동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면 안된다'는 당위를 주장할 수는 있어도,
그런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그가 어떤 예측을 하든 자유이나,
정치인이 커다란 시대적 패러다임을 그저 덮어놓고 안이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4) 인권에 대한 논리도 사상누각이다.
그는 아주 잠깐 인권을, 그것도 '천부인권'을 언급한다.
천부인권은 하늘이 인간에게 인권을 부여했다는 사상인데
그 하늘이란 것이 무엇인가.
만약 하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인권의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요즘 하늘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정치인이라면 인권의 논리가 명확해야 한다.
큰 고민없이 생각하는 것 같다.
 
(5) 그가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부분이 있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데 그 새로운 정치란 "불신받지 않는 정치"라고 말한다.
불신받는 이유는 "국민이 처한 힘든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싸움판 정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서 또 한번 그가 앞서 말한 '직접민주주의'와 대치된다.
보라, 그가 말하는 새로운 정치는 결국 국민에게 '보여지는 정치'이다.
낡은 정치는 싸우는 정치, 새정치는 안싸우는 정치일 뿐이다.
낡았든 새것이든, 결국 정치에서 국민은 여전히 구경꾼에 불과하다.
국민은 국정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이다.
고작 그게 새정치인가?
그가 직접민주주의를 언급했으면
그의 새정치는 구경꾼 정치가 아니라 참여 정치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앞 뒤 말들이 논리적으로 모두 엉킨다.
       
(6) 민주주의 선거와 다수결 제도가 대한민국의 작동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선거와 다수결 제도가 폭력질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하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가 효율적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자"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인식과 "~하자"는 주장은 아무나 한다.
    
(7)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견해의 평화적 경쟁체제라고 규정하는 부분이 있다.
이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가 앞서 말했던 것들과 대치된다.
이쯤되면, 그는 민주주의를 온갖 그럴듯한 말로 상황에 따라 갖다 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6. 결론

이 책은 (통합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책이지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국민에게 정치철학을 검증받으려 만든 책이 아니다.
길지도 않는 글, 글보다 여백이 더 많은 책에서 논리의 일관성을 갖추지 못했다. 
이렇게 독자들에게 오해를 줄 거라면 이런 식으로 책을 엮지 말아야 했고,
제대로 본인의 정치철학을 밝히려거든 꼼꼼하게 책을 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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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 세계 인류학의 패러다임 호모사피엔스
앨런 바너드 지음, 김우영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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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교적 최근에 나온(2000) 인류학 개론서이다. 이번에 한길사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다: 호모사피엔스라는 기획으로 번역 출간(복간)한 네 권(인류학의 거장들, 금기의 수수께끼,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인류학과 인류학자들) 중 하나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인류학의 거장들을 미리 읽었는데 독서 순서는 나쁘지 않았다. 인류학의 거장들과 비교하자면, 인류학의 거장들은 저자가 각 시대나 계보를 대표하는 인류학자 21명을 테마로 묶어 인류학의 흐름을 개괄하고 있다면 이 책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인류학의 거장들을 훌륭하게 보완하며 보다 폭넓고 다양한 인류학사를 설명해준다. 이 책은 말미에 인류학의 거장들을 단순한 위인이론으로 인류학을 설명한 책으로 언급하는데, 여기서 위인이론은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읽는 편이 나아 보인다. 인류학의 거장들은 인류학을 개괄하기 위해 특정 학자들을 거점으로 마련한 뒤 서술한다. 이 작업의 장점은 거점이 명확하여 구조를 단순화시켜 논의의 흐름을 큰 줄기로 유지시켜준다는 점이다. 다만 단점도 명확한데, 21명 학자가 각자 1개 장으로 정리되기 때문에 형식적인 면에서 모두 동등한 위상을 가진 것처럼 독자들로 하여금 인식되게 한다. 역사학에서 위인이론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인류학에서도 이런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겠지만, 개론서로서 서술과 이해의 용이함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면 인류학 개론서에서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안에는 인류학의 거장들에서 다룬 21명이 모두 등장한다. 이 책이 인류학의 거장들을 보완하는 첫 번째 장점은 학자들의 위상을 재정립시켜준다는 점이다. 가령, 프란츠 보아스나 에밀 뒤르켐, 레비-스트로스 등 굵직한 학자들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높은 위상과 지면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제임스 페르난데스는 포스트모던 인류학자의 일부로 서술된다. 두 번째 장점은 인류학의 거장들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지나친 수많은 학자들과 그들의 연구도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학의 거장들의 거점과 거점 사이를 메워준다. 그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인류학을 충분히 개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저자의 문체는 단호하고 명료하며 군더더기 없이 서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소 저자의 축약된 설명법이 난해하게 느껴질 소지가 있다. 두 책은 모두 같은 역자(김우영)가 작업했는데, 이 책은 역자가 중간중간 끼어들어 저자가 설명해주지 않는 개념들을 설명해준다. 때문에 또 다른 책을 뒤져가며 이해되지 않는 용어들을 찾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크게 보면, 인류학적 흐름은 두 책 모두 다르지 않다. 초기 인류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진화론과 상대주의가 등장하고 기능주의,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여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진다. 다만 이 책은 인류학자가 인류학적으로 서술한 인류학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 저자는 최대한 중간자적 입장에서 편중됨없이 서술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는 중간중간 논평을 추가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래서 저저는 나는 나 자신이 읽는 방식대로 역사를 구성했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다르게 읽고, 해석하고, 구성하고, 해체할 것이다.”라고 이 책을 끝맺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개론서이지만, 입론서의 성격도 충실하다. 각 장마다 말미에 더 읽을거리를 추가하고 있다. , 부록으로 주요용어도 정리하고 있다. 인류학을 그저 상식거리로 알아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인류학에 좀 더 빠져보라고 유혹한다. 이 책은 본격적으로 인류학에 관심을 막 갖게 된 학부생이나 일반독자들에게 유용할 듯 하다. 이 책은 충분히 훌륭하지만, 입문을 유도하는 번역서인만큼 독자로서 한 가지 건의하고 싶은 점이 있다. 더 읽을거리에 추가된 책들은 국내에 번역된 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책도 있다. 출판사에서 이 점을 고려하여 번역된 책이라면 국내에 언제,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있는지 병기해주고 번역되지 못한 책도 그 여부를 표시해줬으면 더 좋을 듯하다. 이 책이 입론서이고 저자가 그런 의도로 서술했으니 마땅히 그 의도를 반영하여 소개하는 것이 충실한 번역출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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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거장들 - 인물로 읽는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호모사피엔스
제리 무어 지음, 김우영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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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에서 인류학 관련 도서를 4권 출간했다.  인류학의 거장들, 금기의 수수께끼,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인류학과 인류학자들』. 이 중 인류학의 거장들,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를 읽게 되었는데 먼저 인류학의 거장들』를 정리했다.


이 책은 인류학의 주요이론과 주요 학자들을 시대별, 계파별로 나누어 설명하며 인류학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초기 인류학부터 최근의 포스트모던 인류학까지 폭넓게 개괄하면서 시대별로 논점이 꺾이는 순간들(변곡점)을 파악하기 쉽게 알려주고 사상적 계승도 밝혀준다. 옮긴이가 말한 바, 학부 수업용으로 좋을 듯한데 일반인들이 인류학을 처음 접할 때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만 번역은 대부분 직역에 가깝다. 평소 직역위주의 사회과학 번역서들을 섭렵하신 분들은 잘 읽힐 것이다.
 
1부는 인류학의 초기 학자 네 명을 나열한다. 주요한 두 흐름이 보인다.
에드워드 타일러, 루이스 모건, 에밀 뒤르켐 등 세 명은 과학에 가까운 인류학을,
프란츠 보아스는 인문주의 인류학을 주창한다.

먼저, 1. 타일러는 인종주의를 타파한 공로가 있다. 인종 간 우월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밝혔다. 그는 균일론과 잔재라는 두 개념을 통해 인류문화가 단선적으로 진화함을 주장했다. 2. 루이스 모건 역시 진화론적 관점에서 친족체계를 분류했는데 그는 비서구적 사회에 대한 서구사회의 우월성을 드러냈다. 3. 뒤르켐은 보다 과학에 가까운 인류학적 관점을 보였다. 사실 뒤르켐은 사회학자로 더 유명했는데 사회를 객관적 실체로 놓기 때문에 보편적인 법칙성을 찾으려 했다. 특히 그는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인류학을 주창했다. 뒤르켐의 관점은 모스, 래리클리프-브라운, 에번스-프리처드, 메리 더글라스 등 3부에 등장하는 학자들이 계승했다.

한편, 4. 프란츠 보아스는 이들과 달리 역사적 특수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타일러류의 학자들이 주장했던 단선적이고 보편적인 진화관을 거부했다. 문화적 행위를 일반적인 진화단계와의 관련 속에서 설명할 것이 아니라 특수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말하며, 문화적 특징은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 의해 우선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아스는 인류학을 보편법칙을 찾는 과학이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는 역사학과 같은 인문주의 학문으로 규정했다.
 
보아스의 인문주의 인류학은 초기 인류학 이후 학계의 주류가 된다.
2부는 보아스의 영향을 받은 인류학자들이 등장한다.
5. 앨프레드 크로버는 문화를 독자적인 실체로 만든다. 그는 뒤르켐이 언급한 유기체적세계관을 문화로 가져왔는데 그의 비유를 뛰어넘어 문화는 유기체 중에서도 유기체 즉, ‘초유기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문화결정론인데, 문화가 그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그 문화에 종속된다. 심지어 위인들도 어떤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문화를 대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6. 『국화와 칼로 유명한 루스 베니딕트는 생물학과 대조되는 문화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그녀는 문화는 그것을 이루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했다. 그녀는 각 문화별 맥락을 중시했고 그녀의 연구결과는 문화상대주의에 가까웠다.
7. ‘사피어-워프 가설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피어는 인류학에 언어학을 접목한다. 그는 언어가 문화의 다른 차원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언어는 인간에 의해 지각되는 세계를 반영하고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언어 습득 과정에서 경험의 지각을 조직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언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환경의 측면을 반영한다. 다른 문화의 언어를 연구하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조사하는 것 이상이라고 말하며 언어연구에 천착했다.
8. 마거릿 미드는 인류학에 육아를 들여온다. 육아 관습이 인성을 형성하며 이것이 특수한 사회에 본질적 성격을 부여한다고 말함으로써 문화에 인성을 결합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였다.
 
보아스 류의 인류학이 시대를 지배하자 점차 이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생겨났다. 3부에서는 뒤르켐의 뒤를 잇는 학자들을 배열한다. 인문주의 인류학(2)에서 다시 과학적 인류학 흐름을 서술한다.
9. 마르셀 모스는 뒤르켐과 마찬가지로 특정 사회가 가진 분류체계가 사회생활의 범주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했다. 분류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기초를 둔다. 객관화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이다. 그의 사상은 메리 더글러스(5)와 레비-스트로스(5)에 영향을 준다. 다만 그는 비서구사회가 고대사회 유형의 원시적 잔재를 표현한다는 가정을 엄밀히 검토해보지 않았다.
10.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는 문화기능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문화에 일정한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기능을 연구하려 했다. 그에 따르면 문화는 개인의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 기능주의는 사회인류학에 영향을 준다.
11. 래드클리프-브라운는 사회인류학을 주창했다. 그는 과학적 인류학을 사회인류학으로 규정하고 보아스류의 인문주의 인류학을 민족학으로 떼어냈다. 그는 사회인류학이란 용어는 인류사회의 발달에서 발견될 수 있는 규칙성(원시인 조사에 의해 예시되거나 증명될 수 있다면)을 연구하는 것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사회의 과학적 법칙, 구조와 기능 사이의 통문화적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는 인류학을 꿈꿨다. 다만 그는 말리노프스키와 달리 문화적 제도의 기능은 개인적 욕구의 충족(말리노프스키)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차지하는 역할이라고 결론지었다.
12.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는 독특한 학자이다. 초기엔 래드클리프-브라운과 마찬가지로 사회관계의 구조와 기능을 강조했다. 하지만 후기엔 정반대로 돌아선다. 그는 사회인류학은 사회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계주의적인 사회이론을 부정하고 인류학의 과학적인 방식에 반대했다. 그는 역사가 없는 사회연구를 비판했다. 역사적 차원을 배제한다는 것은 정치조직을 이해하기 위해 확인 가능하고 필요한 지식들을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라 여겼다. 심지어 래드클리프-브라운의 구조 기능주의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인류학이 과학보다 사회사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문주의적 인류학을 추구함을 명확히 밝혔다.
 
마르크스주의가 인간 지성사에 영향을 미치면서 인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4부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인류학과 접목한 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보아스 계열 때문에 철저하게 잊혀졌던 타일러와 모건(1)를 부활시킨다.
13. 레슬리 화이트는 보아스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문화가 초생물학적 성격을 갖는다고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문화의 목적과 기능은 인간이라는 종을 위해 삶을 안정되고 영구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화의 진화는 에너지를 확보하고 전환시킬 수 있는 상대적 능력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역사진화론을 인류학에 들여와 문화진화론을 주창했다. 그는 문화는 네 가지 범주가 있는데 그것은 각각 기술적, 사회적, 관념적, 감정적(이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 범주이다. 그런데 이 중 기술적 범주는 사회적, 관념적 체계가 일어나는 기반이 된다. 기술체계는 기본적이며 근원적이며 따라서 기술적 요인은 총체적인 문화체계의 결정인자이다. 유물론적 시각이 엿보인다.
14. 줄리언 스튜어드는 보아스의 특수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전혀 다른 사회에서 비슷한 문화현상이 나타나는 점을 들었다. 다른 문화들 사이의 명백한 유사성은 유사한 자연환경에 대한 평행적인 적응으로 설명했다. 다만 그는 단선적인 진화모델은 거부했고 각기 다른 형태의 진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생태학을 주창하며, 문화생태학은 사회가 그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에 대한 연구를 하며, 주요 문제는 이 적응이 진화적 변화라는 내적 사회변형을 일으키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아스류의 특수주의에서 환경은 문화적 차이를 설명할 때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는데, 환경과 문화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면 어떻게 환경을 무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스튜어드 역시 유물론적 관점을 보였고 인류학에서 인과적 설명이 역사적 재구성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5. 마빈 해리스는 보다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해 문화유물론을 주창했다. 그는 문화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나누고 하부구조의 설명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하부구조에서의 혁신이 다른 영역의 변화를 초래할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 즉 그 개연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부구조의 우위를 인식한다고 해서 의식적인 인간행위의 중요성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문화유물론은 인간의 문화를 의식주와 번식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발생한다.
16. 엘리너 버크 리콕은 인류학에 페미니즘을 결합한다. 그녀는 여성의 종속이 보편적 조건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특이하게도 문화적 유형의 역사적 맥락을 수립하는 보아스류와 현실참여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 마르크스주의와 유물론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진행된다.
17. 클로드 래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인류학은 사회생활의 무의식적 기반을 검토해야 하는데 그가 생각하는 사회생활의 기본구조를 찾는 작업은 분류체계, 친족이론, 신화의 논리라는 세 가지 분야였다. 그는 사피어와 달리 언어가 문화적 지각행위를 그렇게 직접적으로 형성하는 것(사피어)은 아니고 그보다는 언어와 친족, 교환, 신화같은 문화의 특정한 측면들 사이에 상사점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의사소통의 형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고의 무의식적 활동은 본질적으로 내용에 형태를 부여하는 데 있으며 언어에 표현된 상징적 기능의 연구가 뚜렷하게 보여주듯 이러한 형태들이 기본적으로 모든 사고(원시인부터 문대인의 사고까지)에 동일하다면 각각의 제도와 관습의 근저에 있는 무의식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 지상 과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18. 빅터 터너는 상징과 사회적 드라마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상징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과정에 개입하므로 의례적 상징들은 다른 사건들과의 관련하에 연구해야만 제대로 분석이 된다. 상징의 구조와 특징은 최소한 적절한 행위의 맥락에서는 역동적인 존재의 구조와 특징이 된다. 그의 주장에 따라 상징이 역동성을 갖게되면, 문화적 유형이 사회적 안정을 성취하게 도와준다는 래드클리프-브라운이나 파악될 수 있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말한 말리노프스키의 주장은 힘을 잃는다.
19. 클리퍼드 거츠는 인류학에 기호학을 끌어들인다. 문화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기호학적인 것이며 인간은 그 자신이 짜낸 의미의 그물에 걸려있는 존재이고 문화는 그러한 그물이다. 따라서 문화의 분석은 법칙을 추구하는 실험적 과학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해석적인 과학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저마다 다를 가능성이 큰데 어느 해석이 우위인지 밝히기가 애매해진다. 결국 해석의 풍부함만을 얻을 수 있을 뿐 결론내기 어려워지며 인류학은 과학에서 멀어진다.
20. 이 책에서 메리 더글러스가 가장 재미있었다. 그녀는 오물에 대한 연구를 한다. 그녀는 오물이 있는 곳에는 체계가 있고, 오물은 사물의 체계적 정리와 분류의 부산물이라고 여겼다, 또 그녀는 집단성행동준칙이라는 두 변인을 기준으로, 사회는 네 가지 경우의 수로 나누고는 각각을 설명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21. 마지막으로 인류학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끌어들인 제임스 페르난데스는 다른 문화들을 기능주의, 문화유물론, 구조주의같은 거대이론의 전형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관찰자적이며 새로운 형식의 실험을 통해 다른 문화를 기록하는 경험의 민족지가 인류학적 조사의 목적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류학을 본질적으로 이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여겼다.
 
이 책은 맺음말 부분에서 인류학이 겪어온 논쟁들을 다시한번 언급하고, 그럼에도 인류학에서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점들을 몇 가지 밝히며 서술을 마친다.
1. 인종은 인간 행위의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2. 다른 문화는 인류 진화의 초기단계를 대표하는 화석이 아니다.
3. 개인과 문화는 변증법적 관계. 개인은 체험하는 문화에 의해 형성, 동시에 문화를 형성.
4. 문화는 잡동사니도 아니고 통합된 기계도 아니다. 문화 요소는 인간 실존의 적응적 요구를 충족하고 상징을 사용하는 인간 행위의 창조성을 표현하고 전승된 인류의 경험을 반영한다.
5. 다른 집단에 대한 우리 지식은 우리 자신의 문화적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 책에 이어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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