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민주주의
그가 헌법 개정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여당을 지배하지 않을 것이며
의회의 입법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개헌에서는 국가에서 시민주도로
중앙주도에서 지방분권으로
기업주도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라는 기본 구도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길지 않는 책에 왜 이리 앞뒤에 모순이 많은지.
그는,
"민주주의는 법치입니다.
민주주의는 대화입니다.
민주주의는 협치입니다."
라고 규정한다.
민주주의를 줄기차게, 수없이 말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인지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법치가 아니다.
법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유주의가 법치를 통해 민주주의에 족쇄를 채운 것 역시 사실이다.
또, 그는 '직접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이에 대치되는 주장을 아무런 장치도 없이 서슴없이 쏟아낸다.
그는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받는다는 점을 들어 선거를 "신탁"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선거는 위대한 신탁"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발전할 것이다고 말한다.
아예 잘못된 생각이다.
직접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선거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위임이 아니라 대리이다.
국민들은 정치인에게 권한을 일체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대리하게끔 임명하는 것이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한다는 생각은,
곧바로 그가 앞서 말한 '직접민주주의'와 상충한다.
그가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는 이렇게 이미지, 허상일 뿐이다.
그는 세월호를 슬쩍 들여와
"가만히 있으라"를 인용하며 중앙집권시대의 지침이라고 규탄한다.
그런데 그는 다른 글들에서,
자신은 "직업 정치인으로 일관되게 살았고 훈련받았다"고 말하며
"당이 감옥에 가라면 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뜯어보자.
당이 감옥에 가라고 해서 갔다는 말은,
자신은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될만한 입장이었고
따라서 감옥 갈 이유가 없었지만
당이 (부당하게) 가라고 했고, 나는 그에 따랐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당을 사랑하고 정당정치를 신봉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중앙집권시대의 지침을 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사드에 반대하지만 이미 결정된 것은 무를 수 없다.'는 입장도
'당이 가라면 감옥에 간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쓴 글을 보면,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을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소출물을 국가에 바치며" 라고 표현한다.
이 부분은 솔직히 소름이 끼쳤다.
자기 자식을 '소출물'로 표현한 것도 충격적이었고,
'국가에 바친다'는 표현에서는 일제 군국주의가 떠올랐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기독교적 경건함까지 보인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국가가 시키면 우리는 뭐든 해야한다.
하기 싫어도, 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우리는 국가가 하라면 해야 한다.
5. 기타
(1) 그는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안희정의 정부는 규제와 감독만을 담당할 예정이다.
(2)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망을 갖고 산다고 말하는데,
그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은 "첫째가 사랑, 둘째가 감사"라는
선문답을 적어 놓았다.
정치인의 글인가 목회자의 설교인가?
(3) 인공지능의 시대를 언급하며 점점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결코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근거로, 노동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시대는 단지 산업구조와 일자리 방식의 변화가 발생할 뿐이다.
이 말도 근거가 취약하다.
노동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면 안된다'는 당위를 주장할 수는 있어도,
그런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그가 어떤 예측을 하든 자유이나,
정치인이 커다란 시대적 패러다임을 그저 덮어놓고 안이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4) 인권에 대한 논리도 사상누각이다.
그는 아주 잠깐 인권을, 그것도 '천부인권'을 언급한다.
천부인권은 하늘이 인간에게 인권을 부여했다는 사상인데
그 하늘이란 것이 무엇인가.
만약 하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인권의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요즘 하늘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정치인이라면 인권의 논리가 명확해야 한다.
큰 고민없이 생각하는 것 같다.
(5) 그가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부분이 있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데 그 새로운 정치란 "불신받지 않는 정치"라고 말한다.
불신받는 이유는 "국민이 처한 힘든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싸움판 정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서 또 한번 그가 앞서 말한 '직접민주주의'와 대치된다.
보라, 그가 말하는 새로운 정치는 결국 국민에게 '보여지는 정치'이다.
낡은 정치는 싸우는 정치, 새정치는 안싸우는 정치일 뿐이다.
낡았든 새것이든, 결국 정치에서 국민은 여전히 구경꾼에 불과하다.
국민은 국정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이다.
고작 그게 새정치인가?
그가 직접민주주의를 언급했으면
그의 새정치는 구경꾼 정치가 아니라 참여 정치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앞 뒤 말들이 논리적으로 모두 엉킨다.
(6) 민주주의 선거와 다수결 제도가 대한민국의 작동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선거와 다수결 제도가 폭력질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하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가 효율적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자"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인식과 "~하자"는 주장은 아무나 한다.
(7)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견해의 평화적 경쟁체제라고 규정하는 부분이 있다.
이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가 앞서 말했던 것들과 대치된다.
이쯤되면, 그는 민주주의를 온갖 그럴듯한 말로 상황에 따라 갖다 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6. 결론
이 책은 (통합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책이지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국민에게 정치철학을 검증받으려 만든 책이 아니다.
길지도 않는 글, 글보다 여백이 더 많은 책에서 논리의 일관성을 갖추지 못했다.
이렇게 독자들에게 오해를 줄 거라면 이런 식으로 책을 엮지 말아야 했고,
제대로 본인의 정치철학을 밝히려거든 꼼꼼하게 책을 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