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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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혜 작가의 소설 밤새들의 도시는 러시아 발레의 정통 무대를 무대로, 예술가의 빛과 그림자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발레리나의 삶을 한 편의 고전 발레처럼 1, 2, 3, 코다, 커튼콜로 나누어 서술하는 독특한 형식은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고전 발레의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구성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내내 무대 위의 박동과 긴장감이 생생히 전해진다.


주인공 나탈리아 레오노바는 어린 시절 가난한 미혼모 밑에서 자랐다. 우연히 이웃집 아이의 춤을 따라 하다 발레의 재능을 인정받아, 러시아 최고 등용문인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늘 과소평가를 받으며 실력을 증명해야 했던 나탈리아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고백하며 치열한 경쟁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한다.


훈련과 무대에서 만난 친구 니나 베레지나, 훗날 파트너가 되는 알렉산드르 니쿨린,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디렉터 드미트리 오스트립스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삶을 지탱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고독을 완전히 덜어주지는 못한다. 이 고독이야말로 나탈리아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이다.


2막에서는 세계적인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해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길이 그려진다. 국제 콩쿠르 1, 압도적인 실력, 그리고 무대 위의 찬란한 박수갈채. 그러나 절정에서 나탈리아가 느낀 것은 예상치 못한 공허함이다. 이를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온몸을 다 바쳐 목표를 이루어낼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그토록 원하던 걸 손에 넣자마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186)


이는 꿈을 이룬 후 찾아오는 허무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 시기 그녀를 둘러싼 갈등도 치열하다. 동료이자 정치적 야심가 드미트리는 그녀의 성공을 견제하며, 예술과 권력의 미묘한 긴장을 보여준다. 나탈리아는 결국 더 큰 무대를 향해 파리로 향하지만, 불안과 압박은 더욱 깊어진다.


3막의 무대는 파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우아함, 모스크바의 감동과 달리 파리는 유혹하는 도시로 묘사된다. 최고의 무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녀는 스스로를 위협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발에 피로 골절이 생기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녀의 경력은 한순간에 끊어진다.


나탈리아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바닥은 그보다 훨씬 더 깊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참석할 수 없었던 그녀는 밑바닥을 이미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지금 떨어진 밑바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고백으로 절망의 심연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일으킨 것도 결국 발레였다. 무대는 그녀에게 가장 큰 고통이자, 동시에 살아갈 이유이기도 하다.


제목 속 밤새(Night Bird)’는 단순한 조류가 아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지만, 무대 밖에서는 외로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상징한다. 실제로 극 중 드미트리가 도시를 떠나며 '밤새와 몽상가의 도시'에게 인사하는 장면은, 이 단어가 지닌 상징성을 더욱 깊게 만든다. 화려한 조명 아래 춤추는 나탈리아야말로 가장 찬란한 밤새.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만큼 다양한 러시아식 이름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감사의 말에서 이름의 구조와 호칭을 친절하게 설명해 독자의 혼란을 덜어준다. 무대와 연습실, 공연장의 공기, 땀 냄새와 음악까지 세밀히 묘사해, 독자는 마치 객석에서 그녀의 춤을 바라보는 듯한 생생함을 느낀다.


작가는 밤새들의 도시의 마지막에 나탈리아가 자신의 날개로 날아오르다(Alis volat propriis)”라는 문구와 함께 새롭게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화려함과 추락, 절망과 부활을 모두 겪은 뒤 비로소 얻는 자유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날갯짓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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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정원 - 2000년 지성사가 한눈에 보이는 철학서 산책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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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멀게만 느낀다. 나 역시 그렇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들의 책을 직접 읽어보려 하면 금세 포기하곤 했다. 논어나 도덕경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읽다 보면 문장이 널을 뛰고 결국은 책장을 덮으며 철학의 어려움을 다시금 느끼곤 한다. 이런 나와 같은 증상이 있다면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철학의 정원』이 철학의 문턱을 조금 낮춰줄 것 같다.


이 책은 철학을 거대한 숲이나 산이 아니라, 산책할 수 있는 정원으로 안내한다. 100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주요 저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삶과 인간, 세계와 종교 같은 주제로 나누어 배열했다. 덕분에 읽는 사람은 마치 정원 길을 따라 걷듯, 다양한 사상과 철학자들을 차분히 만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정말 정원을 산책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난이도 설정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수학 원리를 최고 난이도 10으로 정하고, 다른 철학서들을 그 기준에 맞춰 소개한다. 예를 들어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난이도 9, 노자의 도덕경은 난이도 2로 매겨져 있다. 개인적으로 도덕경이 결코 쉬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다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드러난다. 저자는 난이도를 정답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도록 자극한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는 철학책을 단순한 난해한 텍스트가 아니라 스스로 탐험할 수 있는 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동양 철학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다. 노자, 공자, 장자 외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일본 학자인 구키 슈조 정도가 예외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는 저자의 한계라기보다 철학사 자체가 서양 중심으로 정리되어 온 현실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스피노자나 데카르트는 익숙하지만, 조선의 성리학자나 실학자는 이름만 겨우 들어본 정도였다. 이 책을 통해 그런 공백을 새삼 느끼게 된 것도 하나의 의미였다.


철학의 정원은 단순한 철학 입문서가 아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철학이나 사상에 흥미를 지닌 사람을 위한 안내서이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름만 들어본 철학자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안내자가 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철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철학은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학문이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소개한다. 죽음 앞에서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이 질문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자일 수 있다. 철학의 정원은 그런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작은 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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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빛
강화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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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치유의 빛은 힐러 직업을 가진 성직자가 신성력을 소모하는 일종의 마법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이것이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을 읽게 된 동기다. 사실 강화길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라 살짝 페이지를 훑었는데 검은 바탕의 한 문장만이 써진 페이지가 눈에 띄었다. 소설 속의 한 대목이긴 하나 그 페이지를 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박지수는 어릴 적부터 존재감이 거의 없었지만, 열다섯 살 가을 급격히 체격이 커지면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옭죄는 굴레가 된다, 지수는 타인의 시선과 따가운 말들에 큰 상처를 입으며 스스로를 점점 더 가두게 만든다. 그렇게 소외되고 위축되었던 시절, 지수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동경하던 친구 해리아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준 것이다. 그렇게 그룹의 원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수영장에서 해리야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것이 지수에게 더 큰 트라우마로 남아, 고향 안진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성인이 된 지수는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으며 병적으로 몸무게와 식사에 집착한 삶을 살아간다. 176cm, 50kg을 유지하기 위해 식욕억제제까지 복용하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지수는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숨이 턱 막히는 날개뼈 아래의 통증인 원인불명의 신경성 근육통 반복되고 주변의 권유도 잦아져, 결국 고향인 안진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안진에서 지수는 과거 학창 시절의 친구 해리아, 그리고 해리아와 가까웠던 이신아의 소식을 듣는다.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채수회관은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낯선 공간으로, 다양한 통증을 지닌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찾아오는 곳이다. 지수는 해리아와 신아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채수회관에서 수련을 하기로 한다. 그곳에서 지수는 오래도록 억눌린 고통과 기억을 마주하며, 자신의 과거를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지수는 재생 수련이라는 명목 아래, 각자가 가진 고통의 '최초의 기억'을 되짚도록 강요받는다. 마치 소설 초반 지수의 동네에서 사기를 쳐 도망을 간 조칠현 목사와 같은 사이비의 느낌도 나지만 지수는 이 과정에서 관리자들과 부딪히며 마지막까지 분투한다. 이윽고 지수는 자신의 오랜 트라우마의 실체를 직면하고 치유의 빛을 체험하게 된다.


주인공 지수의 몸은 여성이 몸이 사회적으로 감옥이 되는 현실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 인물들에게도 이러한 잣대가 적용이 된다. 따라서 이들 인물 간의 관계는 동경, 질투, 애증, 소유욕 같은 감정이 여성들 사이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유발한다. 게다가 인물들은 가족, 학교, 지방 소도시, 종교 단체 같은 폐쇄적 공동체 속에서 억압받는 존재로 묘사되어 한국형 여성고딕소설이 되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지만 심리적 갈등과 상징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등장인물의 개별적 배경보다는 그들의 관계성과 상징적 역할이 더 강조되어 등장인물을 파악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또한 언급한 주요 등장인물 외 소설 초반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해리아의 라이벌인 안지연과 체육교사 김이영이 후반으로 갈수록 뚜렷한 서사적 비중을 잃고 사라져 아쉽기도 했다. 또한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힐라리아와 안티오페의 설화의 상징성이 나에겐 난해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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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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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해하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배울 때 가장 고생했던 개념 중 하나는 물리학의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서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자연계의 모든 변화는 무질서(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흔히 열역학 제2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현실적인 생활에서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립계의 무질서인 엔트로피는 그 값이 커지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값이 클수록 무질서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든 상태이다. 여기에 억지를 조금 보태 엔트로피를 생명체에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아마도 죽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인 것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도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으러 준비 중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쓴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을 먼저 읽은 우연이기도 하다. 다양한 직업군 가운데 죽음을 가장 많이 본 직업을 가진 법의학자이기에 저자가 본 죽음은 막연히 느끼고 있던 죽음과는 조금 달랐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은 법의학자가 부검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억울한 죽음을 대신 변론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산 자에게 행동과 책임을 일깨우는 1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와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삶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제2삶은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그리고 개인과 사회, 공동체 차원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사랑과 연대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품은 제3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언급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약 20여 만 명이다. 그중 사망원인의 1위는 암이고 2위인 약 28천명은 사인 불명이라고 한다.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검시 절차를 진행해야 함에도 아무도 원인을 밝히려 하지 않고 밝힐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해 검시 없이 사망 등록이 되고 있는 이들의 숫자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중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인 불명으로 처리가 되는 이들도 있지만 억울하게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음을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저자와 같은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도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들어가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법의학자로서의 세월은 죽음보다 주검을 마주해온 시간이었다. 주검을 마주하기 전 고인의 삶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먼저 검토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느낀 단상들을 글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애써 기억해야만 하는 죽음, 반드시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간 죽음,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죽음, 남은 사람들의 자책감을 덜어주어야 하는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9쪽)


이어 다양한 죽음과 그에 따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아직까지 충격으로 남아 있는 다양한 대형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비극으로 남은 대형 참사를 빠짐없이 경험한 그이기에 이런 당부가 더 다가왔다.


안타깝게 사고의 희생자가 된 분들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사고의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죽음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142쪽)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 때문인지 회귀와 관련된 웹소설과 웹툰이 많이 등장하고 소비된다. 회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대로 말 그대로 리셋에 가깝다. 이를 차용한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대게 능력과 환경은 초기화가 되지만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와 달리 현실의 삶은 회귀와는 크게 다르다. 리셋보다는 덮어씌움에 가깝다. 오늘의 실수를 사과와 후속조치로 메꿔가는 것이 현실의 삶과 가까운 셈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좋아한다. 내비게이션은 한 번도 잘못 들어섰습니다. 다시 돌아가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겠습니다.” (214쪽)


어쩌면 새로운 경로도 잘못된 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잘못 들어선 길을 자양분 삼아 다시 새로운 경로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 삶이고 인생임을 다양한 죽음을 접한 저자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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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도약 - 평범함을 뛰어넘는 초효율 사고법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전경아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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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한다. 이는 라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 또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면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지구상에서 생각한다고 하면 인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무릇 무기라면 갈고 닦아 언제든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생각의 도약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었다.


생각의 도약은 일본에서 '()의 거인'이라 불리는 도야마 시게히코 교수가 1983년에 집필한 책이다.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이어령 교수와 비슷한 역할을 한 저자인 것 같았다.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이었으나 철학이나 문학이 아닌 생각과 관련된 40여 년 전의 자기계발 서적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진하게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며 제힘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도 읽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자는 인재를 그저 활강만 가능한 글라이더 형 인재와 스스로의 동력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비행기형 인재를 구분하면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꽃을 보지만 잎은 보지 않는다. 잎을 보더라도 줄기는 보지 않는다. 하물며 뿌리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꽃이라는 결과에만 눈의 멀어 근간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19쪽)


어쩌면 40년 전 보다 더 복잡하고 팍팍한 현실에서 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꽃을 볼 여유조차 잃어버리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많으니까. 그럼에도 꽃뿐 아니라 잎, 줄기, 뿌리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식물이라는 전체를 봐야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두 번 강조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생각의 도약에서는 크게 3가지를 강조한다. 이는 정보의 선별과 숙성, 지식과 사고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생각, 체계적인 사고이다.


먼저 정보의 선별과 숙성이다. 이는 다양한 노트와 메모법에서도 소개되는 방법이다. 메모광들은 그들의 메모를 정리하기 전에 다양한 메모들을 선별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생각으로 조금 바꾸면 정보 과부하 시대에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고, 선택된 정보를 깊이 사고하며 내재화하는 과정이 창의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발효숙성에 비유하며, 자연스러운 망각을 활용해 사고를 정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생각을 해야 하기에 생각을 하는 방법으로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지식의 힘과 사고의 힘을 두루 가진 하이브리드 인재에 대해 언급한다. 40년 전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저자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단순한 지식 저장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언급하며 이제는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해짐에 따라 지식의 힘과 사고의 힘을 융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적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요한 지식은 갖추되, 그것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뿐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 최근 AI까지 흘러가는 발전사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언급한 사항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체계적 사고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도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추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철학이 된다고 언급한 저자는 입체적인 사고를 정리를 강조한다.


사고를 정리하려면 평면적이고 양적인 정리가 아니라 입체적이고 질적인 통합을 해야 한다. (88쪽)


이런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정리를 위해 저자는 메타노트로 이르는 3단계 노트법을 제안한다. 이는 정보를 선별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아이디어나 정보를 흘려듣고 적어두는 1차노트, 이를 걸러내고 의미 있는 요소를 추출하는 2차노트에 이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조작하는 3차 노트인 메타노트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단순 수집된 정보를 자신만의 사고 구조로 전환하고, 창조적 사고의 기반을 형성된다고 말한다.


책의 첫머리인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헤아린다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 어떤 절차를 밟아서 생각하는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이런 걸 새삼스레 반성하는 사람은 예외적인 사람이다. (5쪽)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쏟아지는 영상과 나보다 똑똑한 AI의 등장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어려운 때가 된 것 같다. 어쩌면 넘치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온 역량이 동원하다보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메타노트에 비슷한 것을 써보며 생각하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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