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우물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196쪽)

 

정대건 작가의 급류를 가장 잘 표현한 한 문장인 것 같다급류는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입은 주인공들이 그 상처를 보듬으며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가 생각이 났다. 소나기와는 달리 급류에서는 주인공 도담이 E 성향을 가지고 해솔은 I 성향을 가진 캐릭터였지만 말이다.


물이 맑고 폭이 넓은 유명한 진평강이 흐르는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진평은 여름 피서철이 되면 관광객들이 넘치고 또 그 만큼 죽음도 흔한 곳이다. 이런 곳으로 2006년 엄마를 따라 서울에서 해솔이 전학을 온다. 어느 날 물에 빠진 해솔을 우연히 아빠와 함께 구해줌으로써 가까워진 도담은 UDT 출신의 소방구조대인 아빠와는 달리 소년미가 넘치는 해솔을 마음에 두게 된다. 여름철의 잔병치레로 병원에 입원을 하는 엄마를 제외하고 종종 해솔이네와 강가에서 더위를 피한 도담은 가족 같다는 관광객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서로를 의지하며 마음을 키우던 도담과 해솔은 1년 뒤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가 같이 강에서 익사를 한 채 발견되면서 관계가 깨진다. 그 사고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한 도담과 해솔이지만 그 사실은 그 둘 밖에 모르고 사고가 일어난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확실하지 않은 말들이 돌았다. 마을의 모두가 수사관이 됐고 모두가 작가가 됐다. 오락거리가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안줏거리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10쪽)


졸지에 고아가 된 해솔을 서울로 떠나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고 진평의 좁은 동네에 남게 된 도담은 그런 동네 사람들의 눈초리를 홀로 감내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진편을 떠난다. 그로부터 몇 년뒤 대학생이 된 도담과 해솔을 어느 술집에서 만난다. 사고 이후 이성이 아닌 감정을 따르는 것을 스스로 엄격히 금한 해솔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술집에서 도담을 만난 것이다. 진평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새출발을 한 도담은 대학에서 술에 취한 날이 많았다. 아빠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복수를 하려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 도담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그린다.


상처 입은 사람의 냄새는 애써 덮고 감추어도 눈빛에서, 걸음걸이에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100쪽)


다시 만나 같이 지내게 된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상처를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관계이기에 서로 의지를 하며 지내지만 자신이 아무리 모질게 대해도 사과를 하는 해솔에게 점차 지쳐간다. 해솔이 엄마의 기일에 수목장을 한 나무를 혼자 다녀온 날 아직도 아빠를 용서하지 못한 도담은 그와 다시 다툰다. 때마침 도담을 찾아온 도담의 엄마는 해솔을 보고 다시 화를 낸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녀는 진평에 있을 때에도 도담을 찾아온 해솔에게 모진 말을 해 내 쫓은 바가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도담과의 헤어짐을 종용한다. 그렇게 도담은 해솔에게 시간을 갖자며 두 번째 이별을 하게 된다.


8년 뒤 전공을 살려 물리치료사가 된 도담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해솔이 입원을 하게 되며 그들은 다시 만난다. 약사를 꿈꾸며 약대로 진학을 했던 그동안 해솔은 소방관이 되어 있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구조로 주위에서는 수퍼맨으로 불리고 있는 해솔은 또 다시 구조활동을 하다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자신을 벌하려고 자해를 하며 술에 의존하며 지냈던 도담은 그러한 해솔의 행동이 자신을 벌하는 것임을 유일하게 알아챈다. 해솔은 사명감이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상처를 잘 아는 그들은 다시 만나 그동안 해솔이 도담에게 숨겨왔던 이야기를 하며 아픈 상처를 씻어 낸다. 오랜 시간 도담의 가장 큰 상처가 되어 용서를 하지 못했던 아빠를 드디어 용서하게 된 도담은 해솔과 함께 해양장을 한 아빠를 만나러 오른 추모선에서 물에 빠진 한 소녀를 구하며 급류는 마무리 된다.

 

소설의 초반 더위를 피해 해솔과 도담, 도담의 친구 희진은 계곡으로 간다. 그곳에서 도담은 해솔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32쪽)

 

그리고는 도담과 해솔에게 큰 소용돌이가 닥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빠져나오기 위해 오랜 시간 밑바닥까지 잠수를 한다. 숨을 참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동안 할퀴고 찔린 상처들을 애써 참아가면서... 그리고 급류는 이렇게 끝난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296쪽)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 밑바닥까지 잠수를 하는 동안 도담과 해솔은 수영을 배운 것 같다. 이렇게 크던 작던 닥쳐오는 소용돌이와 파도가 각자에게 깊은 우물을 만들곤 하지만 그럼에도 헤쳐 나가는 것이 삶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의 도입부인 프롤로그에는 본격적으로 일어날 사건과는 연관이 있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이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사건의 중반이나 종반가까이 가서야 프롤로그에 언급된 것들이 이해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잉 아이(Dying Eye)는 프롤로그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있어 보였다. 그 프롤로그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미나에의 눈은 똑바로 앞을 향했다. 거기에는 그녀의 몸을 깔아뭉갠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용서 못해. 내 육체는 없어져도, 이 원한을 끝까지.

증오의 마지막 불길을 태우며 미나에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 죽고 싶지 않아. 레이지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 (14)


자신의 가게를 갖는 것이 꿈이며 그 꿈이 손만 뻗으면 잡힐만한 곳까지 온 아메무라 신스케는 술집 양화(생강과 풀의 일종)’에서 바텐더로 일을 한다. 어느 날 홀로 영업 마무리를 하는 도중 한 남자 손님을 맞는다. 빨리 마감을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손님을 맞이하고 그와 몇 마디를 나눈다. 신스케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남자는 잊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잊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는 이상한 말을 한다. 그리고는 퇴근을 하는 신스케는 돌연 머리에 충격을 느끼며 의식을 잃는다. 며칠 뒤 신스케는 병원에서 깨어나 동거녀 나루미에게 그간의 일에 대해 듣고는 찾아온 형사에게 상황 설명과 함께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1년 반 전 교통사고 가해자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는 그에 대한 기억이 싹뚝 사라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것으로 확신하던 그날 밤의 마지막 남자 손님인 기시나카 레이지가 음독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형사에게 듣는다. 그리고 그는 신이키가 일으킨 교통사고 피해자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이 찾기 위해 사고가 난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 전에 일을 하던 술집의 사장 에지마에게도 물어 보지만 그의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해주는 이는 없다. 그리고 기억도 드문드문 돌아올 뿐이어서 신스케의 답답함이 더 해갈 때 즘 가게에 이상한 묘령의 여인이 찾아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신스케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나중 루미코라는 이름을 밝히는 그녀와는 별개로 신스케는 자신의 일으킨 교통사고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그 사고에 자신이 타고 있던 차 뿐 아니라 다른 차도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다른 차에 타고 있던 또 다른 교통사고 가해자를 만나 그 사고에 대해 돌이켜 보느냐에 대한 질문에 기우치 하루이코는 이렇게 답한다.


그야 있죠. 죄의식은 별로 없지만,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239쪽)”


프롤로그의 상황과 사고에 관련 된 두 대의 차, 그리고 기우치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다잉 아이가 그리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얼추 그려볼 수 있다. 무릎을 칠 만한 반전이 뒤에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사건은 마지막 남은 범인이 자신의 눈을 짓이겨 버리면서 끝이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모조리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다잉 아이는 그동안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가장 그 답지 않은 소설인 것 같다. 일단 미스터리의 트릭보다 호러와 공포 쪽으로 증점을 두고 있고 선정적인 묘사도 많이 있었다. 녹나무의 파수꾼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시작한 독자라면 그가 쓴 소설이라 믿지 못할 정도로 다른 소설과 달라 보였다. 다양한 소설을 시도하는 것은 작가로서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다잉 아이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에게는 좀 낯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인터넷 서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비정근에 관한 광고를 보았다. 늘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주기로 소설이 발표되기에 으레 또 새로운 소설을 발표했나보다고 넘어갔었는데 생각보다 제목이 익숙했다. 알고 보니 2013년도에 국내에서 출판된 소설의 개정판이다. 연휴 전 들린 도서관에서 구판이 있어 개정판이 아닌 구판으로 읽게 되었다. 인문학이나 과학관련 책이 아닌 소설이 개정판으로 다시 출판되는 것이 낯설긴 했지만 크게 내용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기에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6장과 또 다른 두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비정근에서 1장의 ‘6X3’의 도입부의 한 대목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천성이 일하기를 싫어한다. 돈은 없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고 싶다. 말이 나온 김에 털어놓자면 교사라는 직업도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 3학년 때 취업활동에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방향전환을 했던 것 뿐이다. 기간제 교사. 참 폼 안 나는 단어다. 오래할 일은 아니지. (9)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엿볼 수 있다. 교사라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 더군다나 아이들도 싫어하는 쪽에 가까운 나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소설의 특성상 나는 기존 교사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들어간 초등학교에 마치 꿀벌을 이끄는 여왕벌처럼 사건을 몰고 다닌다. 재미있게도 나는 숫자 1부터 6까지 들어간 초등학교에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로 한 두 달을 근무하게 된다.


사건은 동료교사의 살해당한 살인사건부터 학급의 지갑이 사라지는 도난 사건, 신입 교사의 추락사, 학급속에서 일어나는 따돌림까지 다양하게 일어난다. 이쯤 되면 사건을 몰고 다니는 만화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같은 생각도 든다. 작가가 1997년부터 발표한 소설을 모은 소설이기에 지금의 상황과 다른 점도 있어 오래된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도 들지만 무엇보다 사건의 단서가 일본어 표기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있어 번역서로 읽어가기에 공감이 덜 되는 부분이 있어 아쉽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학생들에게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 중 제4우라콘에서 나오는 말이 좋았다.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라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152)


소설 속 주인공이 학교를 옮겨 다니며 일어나는 사건을 해결하기에 사건이 각기 독립적인 단편소설 모음집에 가까우나 동일한 주인공의 등장이 장편소설처럼 보이기도 했다. 짧은 호흡으로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미스터리 소설을 찾는 이가 있다면 권해주고 싶은 비정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이 건네는 호의, Favor - 불안을 통해 운의 흐름을 타는 방법
이서윤.홍주연 지음 / 화이트오션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몇의 사람들이 의문의 초대장을 받고 어느 모임에 참석한다. ‘오징어게임과 같은 Netflix 영화 같은 시작이다. 하지만 그 초대장은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말도 성공을 보장한다는 말이 아닌 숨 쉬는 동안 희망이 있다(While I breathe, I hope.)는 뜻의 라틴어 ‘Dum spiro spero’가 적혀 있었다. 이렇게 서윤의 초대를 받아 모인 이들은 작가와 함께 운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행운이 자신을 비껴간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운명은 호의(好意)를 건네고 있다. (51쪽)

 

운명의 호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작가는 이어 불안을 운의 시그널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원인으로 늘 시달려 부정적으로만 생각을 한 불안에 대해 운의 시그널로 인식하라는 발상이 참신해 보였다. 이어 불안에 대응하는 전략에 따라 A, B 유형으로 나눠 설명을 한다.

 

먼저 ‘Action’을 뜻하는 A는 불안을 연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주요하다. 하지만 이런 A 유형은 시아가 좁아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으며 자신을 소모하지 않도록 스스로 잘 관리하고, 불안을 연료로 삼아 행동하는 과정에서 고질적이거나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을 뜻하는 일종의 만병통치약을 말하는 은총알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며 주의사항도 덧붙이다.


반면 ‘Balance’B 유형은 불안이 찾아올 때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시 B 유형에도 평소보다 과하게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고 손쉬운 쾌락에 빠지는 것을 주의하며, 불안한 시기에 자신의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그리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비관적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결국 자신이 A 유형 인지 B 유형 인지를 잘 살펴 불안을 잘 다스린다면 나선형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작가의 결론이다. 그리고 작가는 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운이란 것은 하나의 가능태(可能態)예요. 그 가능태를 우리가 붙잡으면 그것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죠. 중요한 것은 그 가능태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우리와 환경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보다 주체적으로 행동할 때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겠죠. (269쪽)


흔히 성공한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인 운이 좋았다란 말에는 운도 노력을 해온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이 내포되 어 있다. 그렇기에 운이 하나의 가능태로 보는 시선이 좋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운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목은 나만의 시간표라 말하며 건네는 조언이었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다 보면 세상이 정해 놓은 시간표를 따라가지 못할 때 불안해지기 쉬워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운의 시간표와 나의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만의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해요.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표가 있는 법이에요.“ (313쪽)


어쩌다 보니 전작인 더 해빙보다 운명이 건네는 호의, Favor를 먼저 읽은 셈이 되었다. 이것도 저자가 말한 마나의 시간표에 따른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 이즈미 마사토의 부자의 그릇이나 다우치 마나부의 부자의 마지막 가르침등 소설의 형식으로 말하는 책은 대게 부자나 돈에 관련된 것이 많이 있었는데 운과 불안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흔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쓴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데는 운이 7할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운의 영향이 크다는 말인데 운이라는 것이 우리가 노력이나 기술보다 통제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에 운을 다루는 법보다 노력에 대해서는 더 신경을 쓰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시간표를 믿고 살아간다면 운이 칠 할이 아니라 삼 할이 되어도 하는 일이 성공을 거두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운과 불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될 계기가 되는 운명이 건네는 호의, Favor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 - 남몰래 난치병 10년 차, ‘빵먹다살찐떡’이 온몸으로 아프고 온몸으로 사랑한 날들
양유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

 

제목만 보고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유쾌한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같은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은 에세이다. 그것도 표지에는 남몰래 난치병 10년 차, ‘빵먹다살찐떡이 온몸으로 아프고 온몸으로 사랑한 날들이라는 설명도 있다. 제목만보고 오해한 것이 미안해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중학교 때 발병한 루푸스란 난치병과 10년째 싸우며 살아오고 있는 씩씩한 젊은이다. 저자에 따르면 루푸스는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아무 문제없는 건강한 지산의 몸을 스스로 공격하는 난치성 자가면역질환으로 난치성이라는 무서운 병명과 달리 생존율이 90퍼센트나 되는 생각보다 온순한 병이라고 한다. 물론 생존해나가는 과정이 매우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루푸스 때문에 황달로 온 몸이 노랗게 변해 바나나라는 별명이 생긴 중학생 때에도, 복강 출혈로 인해 입원을 했을 때에도, 약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부어 원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한 결 같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대책 없이 밝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어차피 큰일 난 거 일단 점심 먹고 해결해보자.” (22쪽)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금 비틀어 나쁘지 않은 구석을 찾아내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 그러한 모습이 방에서 찍은 영상으로 시작하여 100만이 넘는 구독자를 모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있었던 이야기, 되어가는 이야기, 지금 이야기, 가족 이야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는데 책 제목의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는 말기 암 환우분들과 함께 방은 쓰며 입원했던 이야기를 풀어 놓는 한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요실금도 있지만 한사코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며 힘든 걸음을 옮기는 병동의 한 할머니를 보고서는 저자가 나름 붙인 별명이 갱스터 할머니는 가족이 있음에도 퇴원을 하는 날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 어떤 원망도 후회도 미련도 없어 보이는 모습과 자신이 베푼 사랑의 대가보다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할머니를 보며 참 강한 분이라고 느꼈다. (56쪽)


이어 연기를 전공하고 영상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겪은 일들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누구보다 좀 더 많이 탑재한 저자이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도 짙기에 그간 남몰래 흘린 눈물과 고민도 함께 털어놓는다. 그래서인지 중간 중간 꿈을 향한 모습을 응원하거나 잠시 쉬어도 된다는 위로가 크게 다가왔다. 25살의 청년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은 이의 응원이나 위로라고 해도 될만큼 말이다.


현실에 만족하며 지금에 집중하기란 이렇게나 쉽지 않다.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제일 빛나는 순간 속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시간이 지난 뒤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걸 알고 있는가? 지금에 충실할수록 그리는 미래가 더 가까워진다는 걸 알고 있는가? (67쪽)


우리는 모두 충분한 사람들이니 잠시 멈춰도 되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천천히 가도 괜찮을 것 같다. (130쪽)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목은 에필로그인 나가며에 있었다. 매번 영상을 찍다 처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정답을 찾아가며 좌충우돌하는 듯합니다. 정해진 정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과 불편하게 적응해나가곤 하지만 결국 그 과정 끝에 정해진 정답은 없고 나만의 답을 찾을 뿐이죠. …… 나만 아는 고즈넉한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면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251-252쪽)


맞는 말이다. 우리 삶은 정해진 정답이 없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이들의 방식을 배우고 참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정답이나 해답이 되진 않는다. 나에게 닥침 삶의 질문은 나만의 맞춤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정답을 나만 아는 고즈넉한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잘 찾을 수 있도록 오늘하루도 힘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