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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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술 문외한이라면 주목하라. 미술 알지 못하는 사람, 일명 미알못을 위해 쉽고 재미있게 쓰인 미술 교양서가 등장했다. 바로 <다락방 미술관>이다. 프리랜서 기자 문하연이 그림의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오마이 뉴스에 연재했던 기사들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4부로 나누어, 27명의 화가들을 다루고 있다. “다락방의 먼지를 털 듯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걸어가다가 뒷골목 시궁창에서 뜻밖의 예술을 건지다!”라는 홍보 문구처럼 본 책은 단순히 그림 혹은 화가만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작품과 작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 화가들의 사랑, 성공, 실패, 좌절, 지질한 면까지 보여준다. 덕분에 엄숙하게 다가왔던 화가들이 보다 친숙하게 다가온다.

 

본 책은 읽기가 쉽다. 한 명의 화가나 한 시대의 미술 사조를 깊게 파고들기 보단, 다양한 화가와 그들의 대표작을 두루두루 소개하고 있다. 고갱, 세잔, 피카소, 마그리트 등 유명한 작가부터 젠틸레스키, 메리 카사트, 베르트 모리조 등 다소 생소한 화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룬다. 책의 문체도 딱딱하지 않다. 마치 인문학 강연을 책으로 읽는 듯 하달까. 그러나 본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여성 화가들을 다루고 있는 점이다. 과거 오랜 기간 미술계에서 여성은 수동적인 존재로, 관찰당하는 존재로, 무언가를 스스로 창조해낼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된 여성 화가들은 남성이 독점했던 그 당시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남다른 관점과 자신감을 무기로, 편견과 차별에 저항했고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강간한 남성을 고발한 젠틸레스키, 여성으로선 유일하게 인상파 전시회에 작품을 출시했던 베르트 모리조, 서양미술사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린 파울로 모더존-베커, 구시대적인 여성차별에 글과 그림으로 끊임없이 저항했던 나혜석에 이르기까지 주목할 만한 여성 화가들이 소개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왜 유명 화가들 중엔 남성들밖에 없을까라고 고민했을 여학생들에게 특히 추천하고프다.

 

필자 역시 미알못이다. 미술을 어렵게만 생각했다. 이 책을 보니 미술을 어렵게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 초심자에게 입문용으로 추천한다. 이 책 한 권이면 비전문가들과 미술에 대한 교양있는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참고로 본 책에는 화가와 함께 그 화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도 소개되고 있다. 미술여행을 떠나고픈 예비 배낭여행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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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셀러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신고자는 그의 절친이자 아동문학가인 '노노구치 오사무'. 현장에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파견되고, 그는 신고자 겸 목격자 노노구치 오사무의 증언을 통해 사건을 조사해나간다.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범인을 잡아내는데 성공하는 가가 형사. 범인 역시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인정한다. 사건 끝. 헌데, 무엇인가 꺼림칙하다. 범인이 결단코 살인 동기를 털어놓지 않는 것이다. 가가는 감춰진 살인 동기에 거대한 비밀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사건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자 추리를 해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 사건을 감싸고 있는 인간 내면의 추악한 악의(惡意)와 마주하게 된다.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소설로, 탐정이 등장하여 범인을 추리하고 트릭을 해체하는 정통 추리소설의 면모와 사회문제를 다룬 사회파 추리소설의 모습을 모두 갖췄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두 가지 매력을 독창적인 구성과 빈틈없는 플롯으로 담아냈다. 때문에 본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내게도 <악의>는 그의 어느 작품보다(<비밀> 제외) 특별하게 다가왔다. <악의>는 여느 추리 소설과는 달리 '누가 그를 죽였는가?'가 아닌 '왜 그를 죽였는가?'를 묻는다. 본 소설에서 범인은 아주 이른 타이밍에 잡힌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히다카를 죽였는가이다. 헌데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녹록지가 않다. 범인이 설계해 놓은 몇 겹의 트릭 때문이다. 마치 까도 까도 그 속을 드러내지 않는, 까면 깔수록 까는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양파처럼 혹은 몇 겹의 외피로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있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사건의 진실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덕분에 이를 추리해가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소설의 극 초반부에 등장한 아주 자그마한 단서마저도 끝끝내 활용하는 작가의 치밀함도 한몫했다. 더불어 본 소설만의 특이한 구성도 매력적이다. 애거서 크리스티풍의 서술 트릭을 활용한 초반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연상케 하는 중반부,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 종반부까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된 본 소설은 한 권의 책으로 세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독특한 매력을 준다. 


 "살인의 동기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 본 소설에 대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명이다. 이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그는 학교폭력, 불륜, 문학계의 고스트 라이터 문제 등 사회적인 문제를 동원하여 탐구한다. 사실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살인 동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내 말을 무시해서', '기분 나쁘게 쳐다봐서' ...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살인 사건들의 실제 동기다.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사람을 해하고자 하는 악의가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이고 안 죽이고의 차이는 그 악의에 굴복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겨내고 누군가는 굴복한다(그리고 슬프게도 지금까지 세상은 악의에 굴복한 사람들이 지배해온 것만 같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깊디깊은 악의가 잠재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악의가 이길 때,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되겠지요." 가가 형사의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던지는 진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낸 깊이 있는 주제의식과 그것을 흥미로운 플롯으로 풀어내는 능력.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둘을 모두 갖췄다. 그 덕에 데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추리소설계의 톱 작가로 군림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계속 읽을 것 같다. 아직 읽어야 할 그의 작품이 한없이 많아서 행복하다.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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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애주가의 고백 -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이덕임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책 <어느 애주가의 고백>은 독일 출신 기자 다니엘 슈라이버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술이 어떻게 우리 삶을 망가뜨리는지, 왜 술을 끊어야 하는지, 어떻게 끊을 수 있는지 등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은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해낸 저자의 실제 경험에 근거한다.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는 애주가였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집에서 홀로 마실 때도, 사회활동을 하며 혹은 사교활동을 하며 마실 때도 있었다. 그는 진탕 술을 마시고 심한 숙취와 함께 깨어난 어느 날 그는 술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저자는 본 책을 통해 술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만, 핵심은 "술이 주는 행복은 거짓된 것이며, 우리는 술에 취하지 않을 때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이다.


술이 주는 해악은, 굳이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모두들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술에 취해 옆 사람에게 해선 안될 행동을 하거나, 숙취로 다음날 일과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거나, 지갑이나 핸드폰 등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술로 인해 건강상에 이상을 겪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술을 끊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그 주된 이유는 사회적인 강요이다. 책에서 나오듯 독일도 술 마시기를 권하는 사회이지만, 그 정도는 우리나라가 더욱 심하리라 생각된다. 술을 마시는 사람보다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눈초리가 사회에 팽배해있다. 술이 사회성과 조직에 대한 헌신의 척도로 판단되며, 인간관계의 윤활유로 여겨진다. 더욱이 한국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극강의 스트레스 유발 요인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 술을 마시게 한다. 금요일 저녁거리 곳곳에 술판이 벌어지고, 구토, 고서 방가 등 온갖 해악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혹자는 "나는 그냥 일주일에 서너 번 친구들하고 간단히 마실 뿐이야. 물론 코가 비뚤어지게 마실 때도 있지만 어쩌다 한 번인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 모든 순간이 중요하며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내 삶이 된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종종 마시는 소량의 술과, 어쩌다 마시는 과량의 술이 결국 미래의 나를(현재의 나도 마찬가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릴지도 모른다. (습관적으로 마시는 술이 우리 몸에 미치는 악영향은 책 후반부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말하는 해법은 단 한가지,


 바로 술을 끊는 것이다. 술 자체가 원인이요 해법이다. 술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대단한 절제력이 있는 듯한 착각을 주어, 더더욱 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술을 끊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물론 끊기 어렵다. 우리나라 직장인이라면 당장 회식자리에서 직장 동료,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선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AA(Alcoholics Anonymous)를 소개한다. AA는 알코올의존증 극복을 위한 자조모임이다. 이 모임의 목적은 알코올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며, 가입 조건은 술을 끊겠다는 열망이다. AA 모임에선  알코올의존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알코올로 인해 망가진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공유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술을 끊을 수 있는 용기를 부여받는다. '술없이 하는 진솔한 대화' 그 어떤 약효나 경고 문구보다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대학생 시절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고자 술을 억지로 마실 때가 있었다. 말수가 매우 적은 나였지만, 술을 마시면 말이 술술 나왔다. 때문에 술자리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어색하게 있는 나 자신이 싫어 과음하기 일쑤였다.  물론 술 덕분에 어렵지 않게 말을 꺼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대화, 관계는 모두 가짜였다. 술자리에서 끝까지 버텨보자는 욕심이 실언과 실수로 이어졌다. 또 술로 만든 친구관계는, 술이 깬 후 다시 어색한 관계로 돌아갔다. 결국 술이 내게 준 것은 숙취와 자괴감 뿐이었다. 이 자괴감에 다시 술을 찾고,,,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진정한 관계는 술이 없을 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퇴근 시간 마포역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삿대질하고, 구토하는 직장인들을 마주한다. 술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성찰이 필요하다. 글을 마친다. 이따 맥주나 한 잔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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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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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 <악어 프로젝트>는 프랑스 작가 토마 마티외의 그래픽 노블이다.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겪는 아니 남성들이 가하는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을 삽화를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설마 저런 일까지 있었어!?'라고 놀랄만한 수준의 강도 높은 성희롱과 괴롭힘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고상하고 낭만적인 프랑스 남자에 대한 이미지를 산산조각 낸다. 그 때문인지 본 작품은 현지에서도 큰 논란을 빚었다. 구체적으로 2014년 11월 25일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에 본 작품이 초청되었는데, 프랑스의 한 정치인이 본 작품의 수위를 문제 삼아 전시가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다른 나라도 아닌 프랑스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 길래!라고 궁금해할 예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본 작품이 논란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작품 속에 나타나는 성희롱 실태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끔찍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여성의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거나, 새벽에 혼자 사는 여성의 집까지 쫓아가 문 앞에서 자위를 하는 악어들의 모습은 선뜻 실화라고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는 모두 실제 경험담이다. 아마 프랑스에 살아가는 여성들(우리나라 여성들도 마찬가지)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겪는 일상이므로. 


 두 번째는 성희롱 가해자(남성)들이 모두 악어로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이 모든 남자들을 악어로 표현한 데에 분노했다. 그러나 이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이는 '남성들이 악어가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책을 읽게 하기 위함이다. 만약 성폭력 가해자가 악어가 아닌 평범한 남자로 그려졌다면, 뭇 남성들은 (그들에게 동일시되어) 가해자들을 변호하려 했을 것이다. 허나 작가는 의도적으로 가해자를 악어로 그림으로써 남성들이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의 악어보단 그래도 사람인 여성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다. 즉 여성의 입장에,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 동일시하여 그 끔찍함에 몸서리치고 악어들의 행동에 거부감을 들게 느끼게 만든 것이다. 작가의 이와 같은 의도는 적어도 나에겐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결국 이 책을 정말로 읽어야 할 사람은 남성들이다. 책 속에 묘사된 악어들의 혐오스러운 모습(행동)을 보며, 내가 그동안 악어로 살아오진 않았는지 성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성희롱을 한 적도 없는데 왜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거야?", "그럼 앞으론 여자에게 말도 걸면 안 되겠네?!"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남자들이 해야 할 생각은 '남자들 모두가 잠재적 성범죄자는 아니다'가 아니라 '여성들 모두가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심지어 남성들도). 그리고 그 피해가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라는 것이다(<맨 박스> 인용).  때문에 억울함을 느낄 에너지로 어떻게 하면 모두가 안심하며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낫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칼럼니스트 가엘르-마리 짐메르만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 애쓰는 것은 그저 뻗은 손이며, 성폭력은 덮치는 손이다." 환심을 사려는 것과 성희롱의 차이는 상대방의 의지를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있다. 아주 간단한 구별법이다. 이것만 알면 앞으로 여자에게 말도 걸면 안되겠네?!라는 바보 같은 질문은 접어두어도 좋다.

책의 말미에 권김현영이 서술한 '목격자와 방관자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아무런 감정적 동일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우리는 보통 '방관자'라고 부른다. 방관자는 문제를 파악할 능력도 개입할 의지도 없다. 그러나 목격자는 다르다. 목격자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때 중단할 수도 있고, 나중에 증인이 되어줄 수도 있다. 이 책은 독자들을 방관자가 아니라 목격자로서 일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누가 지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등등 말이다." 


당신은 방관자가 될 것인가, 혹은 목격자가 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악어가 될 생각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ps. 본 책에는 여성들을 위한 '성희롱, 성폭력 대처법'이 수록되어 있다. 역자에 따르면 실생활에서 아주 유용하다고 하니 궁금한 여성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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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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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은 '폭풍이 불 때, 그 폭풍의 바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곳'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에서 벌어지는 두 주인공 '히스클리프' '캐서린 언쇼' 이루어질 수 없는 뜨거운 사랑과 언쇼와 린튼 가문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광적인 복수를 담은 소설이다.


 본 작품의 작가는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의 언니 에밀리 브론테이다. 1818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본 작품을 집필한 후 1년 뒤인 1848년 30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그녀가 살아있을 적엔(물론 1년밖에 안되었지만) 너무나 극단적이고 음산하고, 음울하며 광기 어린 캐릭터 묘사와 줄거리 때문에 평단에서 외면받았지만, 후세에 본 작품은 영미 3대 문학(<리어 왕>, <백경>과 함께), 세계 10대 소설(서머싯 몸이 선정하였다)로 선정되며 세계문학사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살고 있는 언쇼씨는 시내에 나갔다가 버려진 아이 '히스클리프'를 데리고 온다. 언쇼 씨는 근본도 없고 꾀죄죄한 소년 히스클리프를 극진히 키운다. 한편 언쇼 씨에겐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이 있다. 장남 힌들리는 질투심과 유산에 대한 욕심으로 히스클리프를 못살게 군다. 반면 캐서린은 거친 매력을 지닌 히스클리프에게 강하게 끌린다. 언쇼씨가 노환으로 죽고, 힌들리가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히스클리프의 입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노골적으로 천대한다. 또한 캐서린은 드러시크로스 지역의 에드거 린튼과 교제하며 히스클리프에게 거리를 둔다. 사실 캐서린은 누구보다 히스클리프를 사랑했지만,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과 귀족 에드거의 신사적인 모습에 잠시 흔들리고만 것이다. 캐서린은 갈팡질팡하며 가정부 넬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데, 히스클리프는 그녀의 말을 엿듣고 캐서린이 자신보다 에드거를 더 사랑한다고 오해를 하고 만다. 깊은 배신감과 상처를 안고 폭풍이 몰아치는 새벽,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난다. 히스클리프가 떠난 뒤 캐서린은 에드거와 결혼한다. 그리고 3년 뒤 어느 날 히스클리프가 돌아온다. 자신을 학대한 언쇼가와 자신을 배신한 캐서린에 대한 복수심을 떠안고. 


 <폭풍의 언덕>은 564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로 위의 줄거리는 소설의 3분의 1 정도 되는 내용이다. 이후 3분의 2는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복수와 이에 맞서는 캐서린 린튼의 용기 있는(?) 사랑을 담고 있다. <폭풍의 언덕>이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는 것은 왜일까? 도대체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길래? 나름대로 분석해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인류의 보편적인 관심사인 남녀 간의 금지된 사랑(신분제와 연관된)을 섬세한 감정묘사로 절절하게 담아냈다. 넬리에게 히스클리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다음 장면을 보자. 


"꼭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당신이든 누구든 자기를 넘어선 삶이 있고, 또는 그런 삶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이 지상만의 것이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내게 큰 불행은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었어. 그리고 처음부터 나도 각자의 불행을 보고 느꼈어.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생각한 것은 히스클리프 자신이었단 말이야.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서먹해질 거야. 나는 그 일부분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거야.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 다신은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라고 말하는 캐서린을 보라. 약 200년이 지난 지금도 캐서린의 저 대사는 사랑에 빠진 청춘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폭풍의 언덕>의 또 다른 매력은 입체적인 캐릭터에 있다. 캐서린 언쇼를 잃고 복수의 화신으로 태어난 히스클리프의 야성적인 매력은 지금껏 등장한 여느 소설 속 악한들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진정한 나쁜 남자랄까?(사실 진짜 나쁜 놈이기는 하다) 이외에도 무려 500여 쪽에 달하는 이야기를 처음 본 사내에게 털어놓는 넬리의 사람 좋음과 입담, 히스클리프에게 학대받으며 멍텅구리로 자라난 헤어튼 언쇼와 아버지의 원수 히스클리프마저 품는 캐서린 린튼의 자애로운 모습은 독자에게 절망 속에도 꽃은 피어난다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이외에도 워더링 하이츠의 황량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배경 묘사와 연출 역시 본 작품을 한 단계 높은 위치에 갖다 놓는다. 


 무릇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의 단어로 인간 존재를 규정할 수는 없다. 각자 자신만의 맥락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 소설들은 인물을 전형성에 가둬놓는다. <폭풍의 언덕>에는 전형적인 인물이 없다. 전형적인 인물이 없기에 전형적인 스토리도 없다. 혹자는 본 소설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의 인간을 창조해, 선과 악에 대한 판가름이 아니라 선악이 한데 어울려 몸부림치는 인간 실존의 세계를 강렬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렇다. 소설을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저 인물은 저렇게까지 할까?라고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속성을 예리하게 통찰해냈다(무려 30살에). 그렇기에 <폭풍의 언덕>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읽기가 녹록하지 않았다. 길기도 길거니와 비슷한 이름의 다른 인물이 자꾸 나와 인물관계가 헷갈렸고, 번역투가 주는 답답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이 책을 추천한 이에 대한 의리와 가끔씩 튀어나오는 마음을 울리는 대사들(위와 같은) 때문이다. 이는 곧 내가 소설을 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폭풍의 언덕>을 읽을 예비 독자들도 내가 느낀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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