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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타작 하는 날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15
윤기현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2014년 3월
평점 :
책 읽는 가족- 보리타작 하는 날
구수한 된장찌개와 보리밥 같은 책
읽으면서 온기가 느껴지고 묵직한 목화솜 이불 덮은 듯한 느낌을 받는 책은 참 드문데
이 책이 딱 그 느낌이에요.
아줌마는 시골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마당이 있는 이층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서
우리 아버지가 병아리며, 토끼, 강아지, 고양이... 그리고 한쪽 화단엔 계절 식물들을 키워주셨어요.
무남독녀인 외동딸이 외로울까봐 한시도 마당을 비워놓는 일이 없으셨어요.
색예쁜 봉숭아, 벽을 타고 해를 바라보러 올라가는 나팔꽃,
자기가 고추 나무인줄 알고 대가 두껍고 크게 자라는 고추,
통실한 가지, 아삭 아삭 싱싱한 오이, 그리고 한켠엔 겨울 김장 김치를 묻어놓는 큰 항아리 입도 기억나요.
철되면 고추장 담그고, 간장 달이고 장독이 쉬는 날도 없었고요. 볕이 좋으면 장에게 해 보여준다고 뚜껑도 열어놓고 혹여 비오면 저를 냅다 불러 뚜껑 닫게 하시곤 했어요.
마당의 온 생물이 내 놀이터였고, 내 장난감 이었답니다.
아마 시골에 살았더라면 마당이 아니라 온 마을이 장난감이었을텐데 말이죠.
빨간 벽돌을 돌로 찧어서 고춧가루라고 하고, 고춧잎 빻아 나물이라고 짓고 소꿉놀이도 했었고요.
이 책을 읽는데 갑자기 필름처럼 내 어린시절이 촤르르륵 지나가요.
따뜻했던 날들이요. 책이 주는 영감은 기억속의 촉각 후각 미각 다 느껴지네요.
1999년 나 온 책인데 많은 친구들이 읽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아줌마가 느낀 이 느낌을 다른 친구들도
느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림이 어찌나 따뜻한지. 글과 찰떡 궁합 이에요.
아줌마는 우리 아이들 책을 권해줄 때 글도 중요하지만 삽화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열어주고, 오감이 아닌 제 육감도 열어주는게 바로 삽화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따뜻한지 몰라요.
주인공 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이에요.
여름엔 냇가에서 빨가 벗고 인디언 놀이도 하고, 가을엔 추수하는데 부모님 일손을 돕고요, 겨울 준비 할 땐
곳감 만드는데도 한 몫 하고요.
아버지가 보증을 잘 못 서 큰 손해를 보고서 어머니에게 화풀이 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들이 많이 속상해 해요.
어머니를 안타까워 하고 슬퍼하고 애달파 하는 아들들이 참 대견하면서도
아줌마는 엄마입장이여서 그런지 마음이 짠 해요.
우리 아이들 앞에서 웬만해선 싸우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되요. 아줌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내가 처음이라
잘 못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아줌마가 속상해 하는 모습을 보면 그대로 전달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부분은 어둡게 읽어주지 않았어요.
온 마을이 잔치를 할땐 어른 어린이 할거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즐겁게 잔치를 즐겨요.
요새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잖아요.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필요까지는 없지만
참 안타까워요
아줌마는 현재 빌라에서 사는데요. 건물에 9가구가 살아요. 우리는 한달에 한번씩 반상회를 한답니다.
봄, 여름, 가을에 반상회 할땐 옥상에서 해요. 불판에 숯도 피우고 고기도 굽고 옥상 한켠의 텃밭에 상추를 따서
싸먹기도 하고요.
어때요? 꼭 지금 이 책에 나온 시골 같지 않아요?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참 재미있어요.
요새 김장철이잖아요?
아침에 아이들과 학교에 나설 때, 문에 봉지가 달랑 달랑 걸려있어요. 보면 김치 한쪽씩 들어있죠.
각자 김장 하는 날짜가 다르니 어느집이 걸어놓은지 모르지만
그렇게 매년 자기집 입맛대로 만든 김치 한쪽씩 먹는 재미도 쏠쏠해요.
얼마나 재밌는데요. 이걸 과연 누가 걸어놨을까 맞추는 재미도 있고요.
아이들은 산타클로스 선물 받은냥 “오!! 또 걸려있어요~” 하고요.
서울에 산다는건 어쩔땐 숨이 막히고 각박하고 답답한데요.
나부터 옆집에 손을 내밀면 그 집이 마당이 되고 그 마당이 마을이 되더라고요.
오랜만에 읽은 마음 따뜻한 책.
오늘은 된장찌개를 해야겠어요.
이 책을 읽으면 자꾸만 이상하게 하얀 두부가 숭덩 숭덩 들어간 얼큰한 된장찌개 생각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