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하미나 지음 / 물결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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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나로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책이다. 시와 희곡, 에세이, 과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사회가 만들어온 편견을 부수기도 하고, 가려졌던 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책의 절반쯤 읽었을 때만 해도 이 책을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오히려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여성, 학자라는 정체성으로 폭력과 거짓으로 둘러싸인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에 한 인간의 복잡성을 함께  읽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자는 백인 남성의 시각으로 구축된 주류 과학에 이질감을 느낀다. 혐오와 왜곡된 시선으로 가려진 진실을 느끼고, 과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비과학적'이고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하대되고 삭제되어 온 것들은 우연이었을까. 그것은 남성중심적이 이익과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 발전 중심의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기여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저자와 나의 공통점은 여성이라는 사실 외에 거의 없어 보인다. 과학사 연구자, 과학기자, 작가, 활동가, 해외 생활자, 방송인(?)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깊이 공감했다. 분노와 기쁨, 슬픔을 오가며 마치 온 몸으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동조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 개인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마주하는 세상의 얼굴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절반가량은 과학사와 과학 비평을 다룬다. 처음에는 과학과 '나'라는 개인이 얼마나 연관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 책은 이런 경계를 부숴주었다. 장르를 넘나들며, 결국 이 책은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다양한 궤적을 여러 형태의 방식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종국에는 '무엇'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 것일까에 집중하며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2025년, 나의 올해의 책이 될 것이라는 강한 인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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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괴물들 - 불안에 맞서 피어난 인류 창조성의 역사
나탈리 로런스 지음, 이다희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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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뱀파이어, 늑대인간, 구미호..등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괴물들을 만나왔다. 그들을 무서워하거나 무찔러야 한다는 입장에서 봤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갑자기 뿅하고 나타나지 않았을텐데 왜 오랫동안 함께 해 온 그들을 외면한 것일까?


이 책은 역사 속 괴물들이 탄생하게 된 기저를 살펴보며 인간으로부터 창조 된 그들의 존재를 탐구한다. 세상의 시작과 문명의 질서와 관련된 괴물, 자연의 두려움에서 탄생한 괴물, 기존의 지식 체계와 충돌하여 미지의 영역에서 탄생한 괴물. 총 3부로 나누어 괴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추악하고 혐오스러운데 우리는 어째서 그들을 등장시키는 것일까?

 

책에 소개된 괴물을 보며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보았다. 인간이 왜 괴물을 만들어 냈을까? 책의 곳곳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괴물의 탄생은 그저 인간의 유희를 위해 탄생하지 않았다. 누군가에 대한 혐오는 역으로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조금이라도 괴물의 요소를 갖게 되면 우리도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고 부끄러웠다. 



괴물의 모습 변화는 인간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 시대에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지를 투영해 가장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좀 더 알기 위해선 우리가 만들어 내는 괴물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괴물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존재에 생각하게 하고 인간 내면에 잠들어 있는 괴물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신화 속 괴물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추천한다.

괴물은 원래 극단적이고 터무니없고 혐오스럽고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이상할수록 좋다. - P13

그렇다면 괴물다움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괴물이 되려면 익숙한 자연의 경계를 넘어서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기대를 저버려야 한다.(중략) 그러나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범주의 경계는 유동한다. 무엇을 익숙하게 여기는지, 어떤 특수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지에 따라 움직인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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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법을 어길 때 - 과학, 인간과 동식물의 공존을 모색하다
메리 로치 지음, 이한음 엮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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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인간이 점점 많아지고, 인간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동물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인구 증가를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숲이나 산림과 같은 자연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자연의 영역이 줄어들고 인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그 경계에 사는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을 보여준다. 사람을 공격하거나 집에 침입하는 일이 과연 '동물의 문제'일까?

책을 읽기 전 <자연이 법을 어길 때>라는 제목만 보고 동물권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책이 다루는 내용은 말 그대로 인간이 만든 '법'을 동물이 어겼을 때,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곰, 코끼리, 표범, 원숭이, 쿠거 등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범법'을 저지른다. 저자는 전문가, 관리자, 벌목 하는 사람, 법의학 수사관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이 문제의 실상을 듣는다. 

읽는 내내 '동물은 문제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인간이 먼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파괴했으니, 발생한 문제는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가 사라졌으니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통을 뒤질 뿐이다. 
동물을 격리 하거나 전기 울타리를 세운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문명과 공존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공존을 위해서는 정책,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복합적인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하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자는 없애는 방법이 아닌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배척과 처벌이 아니라 공존을 먼저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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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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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다양할 줄이야. 

술은 왁자지껄한 가게에서 즐거운 기분을 증폭 시켜주기도 하고, 어둑해진 바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고독을 즐기기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술을 즐기기 시작했을까? 술은 수많은 관계에서, 때로는 혼자 마시는 순간에 다양한 역할을 대신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즐겼던 음식, 영화, 여행지, 글에 술이 곁들어진 에세이다. 단순히 감상이나 일상의 경험만 남겼다면 술의 다양한 모습을 담지 못했을텐데, 이 책에서는 술이 어떤 때는 주인공이 되었다가, 또 어떤 때는 조연이 되거나 배경의 한 부분이 되어 술이 지닌 색깔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본 적 없는 영화가, 읽은 적 없는 글이, 가 본 적 없는 여행이 이렇게 흥미롭고 유익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바에서 옆자리에 우연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늑한 방에서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술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듣는 듯한 상상을 했다. 가깝지만 어딘가 거리가 있는 이야기. 타인의 멋진 취향을 엿보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알아가는 것처럼 느껴져 묘하게 친밀하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껏 그 점이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조금 아쉬웠다. 책에서 소개하는 술의 향과 맛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술이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이 있었다면, 이제 그것은 바뀌었다. 적어도 저자에게는 술이 취향과 저자의 세계를 더 넓혀 주었다. 전작 <밤은 부드러워, 마셔> 
도 물론 좋았지만, 이번 책은 음식과 영화, 글, 계절과 함께 술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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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의 시대 - 진단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수잰 오설리번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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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기술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과거보다 덜 병들게 되었다. 예전에는 고칠 수 없었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고, 미리 예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발전은 과연 우리에게 좋은 면만 있을까?


이 책은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며 경험한 진단의 여러 관점을 이야기한다. 헌팅턴병, 라임병, 자폐, 암, 유전 변이 등 익숙하지 않은 병부터 이제는 흔히 들리는 병까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를 통해 과잉진단과 실제 효과적인 치료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질병의 정의를 점점 더 확장해 불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이 정말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걸까?

'의사가 쓴 글은 어렵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잠시, 수많은 환자를 대면하고 상담하는 일을 해온 저자의 글은 매우 잘 읽힌다. 임상 현장에 있는 의사가 직접 전하는 이야기라 더 생생하고 실감 났다. 현재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한편,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우려 섞인 지향점을 제시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헌팅턴병, 라임병, 신경다양성, 다양한 증후군을 가진 환자가 되어 진단 받는 입장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말하는 문제점을 체감하게 된다. 과잉진단의 시대에서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매우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여러 의사를 만나고, 명확한 진단을 내리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앞으로는 점점 더 발달된 기술 아래에서 우리는 병든 환자가 되어 갈 것이다. 세세하게 병증을 규명할수록 정작 건강에서 멀어진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어떻게 좋은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
저자의 주전공은 신경과이기 때문에 정신과에서 다루는 우울증, adhd, 자폐스펙트럼 장애과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저자의 관점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지만, 하나의 병을 다양한 전공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

병이 걱정되어 미리 검사하는 것(건강검진, 출생 전 검사 등)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출생 전 검사가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관점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왠지 우생학, 영화 가타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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