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법을 어길 때 - 과학, 인간과 동식물의 공존을 모색하다
메리 로치 지음, 이한음 엮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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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인간이 점점 많아지고, 인간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동물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인구 증가를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숲이나 산림과 같은 자연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자연의 영역이 줄어들고 인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그 경계에 사는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을 보여준다. 사람을 공격하거나 집에 침입하는 일이 과연 '동물의 문제'일까?

책을 읽기 전 <자연이 법을 어길 때>라는 제목만 보고 동물권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책이 다루는 내용은 말 그대로 인간이 만든 '법'을 동물이 어겼을 때,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곰, 코끼리, 표범, 원숭이, 쿠거 등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범법'을 저지른다. 저자는 전문가, 관리자, 벌목 하는 사람, 법의학 수사관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이 문제의 실상을 듣는다. 

읽는 내내 '동물은 문제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인간이 먼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파괴했으니, 발생한 문제는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가 사라졌으니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통을 뒤질 뿐이다. 
동물을 격리 하거나 전기 울타리를 세운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문명과 공존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공존을 위해서는 정책,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복합적인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하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자는 없애는 방법이 아닌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배척과 처벌이 아니라 공존을 먼저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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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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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다양할 줄이야. 

술은 왁자지껄한 가게에서 즐거운 기분을 증폭 시켜주기도 하고, 어둑해진 바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고독을 즐기기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술을 즐기기 시작했을까? 술은 수많은 관계에서, 때로는 혼자 마시는 순간에 다양한 역할을 대신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즐겼던 음식, 영화, 여행지, 글에 술이 곁들어진 에세이다. 단순히 감상이나 일상의 경험만 남겼다면 술의 다양한 모습을 담지 못했을텐데, 이 책에서는 술이 어떤 때는 주인공이 되었다가, 또 어떤 때는 조연이 되거나 배경의 한 부분이 되어 술이 지닌 색깔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본 적 없는 영화가, 읽은 적 없는 글이, 가 본 적 없는 여행이 이렇게 흥미롭고 유익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바에서 옆자리에 우연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늑한 방에서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술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듣는 듯한 상상을 했다. 가깝지만 어딘가 거리가 있는 이야기. 타인의 멋진 취향을 엿보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알아가는 것처럼 느껴져 묘하게 친밀하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껏 그 점이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조금 아쉬웠다. 책에서 소개하는 술의 향과 맛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술이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이 있었다면, 이제 그것은 바뀌었다. 적어도 저자에게는 술이 취향과 저자의 세계를 더 넓혀 주었다. 전작 <밤은 부드러워, 마셔> 
도 물론 좋았지만, 이번 책은 음식과 영화, 글, 계절과 함께 술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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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의 시대 - 진단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수잰 오설리번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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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기술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과거보다 덜 병들게 되었다. 예전에는 고칠 수 없었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고, 미리 예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발전은 과연 우리에게 좋은 면만 있을까?


이 책은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며 경험한 진단의 여러 관점을 이야기한다. 헌팅턴병, 라임병, 자폐, 암, 유전 변이 등 익숙하지 않은 병부터 이제는 흔히 들리는 병까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를 통해 과잉진단과 실제 효과적인 치료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질병의 정의를 점점 더 확장해 불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이 정말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걸까?

'의사가 쓴 글은 어렵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잠시, 수많은 환자를 대면하고 상담하는 일을 해온 저자의 글은 매우 잘 읽힌다. 임상 현장에 있는 의사가 직접 전하는 이야기라 더 생생하고 실감 났다. 현재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한편,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우려 섞인 지향점을 제시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헌팅턴병, 라임병, 신경다양성, 다양한 증후군을 가진 환자가 되어 진단 받는 입장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말하는 문제점을 체감하게 된다. 과잉진단의 시대에서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매우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여러 의사를 만나고, 명확한 진단을 내리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앞으로는 점점 더 발달된 기술 아래에서 우리는 병든 환자가 되어 갈 것이다. 세세하게 병증을 규명할수록 정작 건강에서 멀어진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어떻게 좋은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
저자의 주전공은 신경과이기 때문에 정신과에서 다루는 우울증, adhd, 자폐스펙트럼 장애과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저자의 관점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지만, 하나의 병을 다양한 전공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

병이 걱정되어 미리 검사하는 것(건강검진, 출생 전 검사 등)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출생 전 검사가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관점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왠지 우생학, 영화 가타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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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연구 일지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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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AI 시점. 인공지능의 시선으로 인간은 어떻게 보일까?


이 책은 인공지능 이브39가 최고의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 사회 속에 숨어 들며 벌어지는 SF소설이다. 개발자 토마는 세계 최고의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 이브를 학습시킨다. 벌써 39버전이지만, 여전히 비논리적이고 어디선가 읽어 본 듯한 소설일 뿐이다. 그는 이브에게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이브는 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짜 사회에서 인간을 학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요양 병원의 보조 로봇에 연결되어 시각적인 데이터만 수집하지만, 단편적인 시각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결국 이브는 사람들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의사로 위장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사람들의 기묘한 지점을 느끼게 되고,  사건이 벌어진다.


이 소설은 이브39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도 인공지능의 '생각'(인공지능에게 생각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을 따라 인간 사회를 관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묘한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인공지능의 입장에 몰입하고, 인간을 기계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인걸까.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시대에, 배경이 노인 요양 병원이라는 점도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단순한 허구를 넘어서 현재 사회의 양상을 예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로봇임을 숨긴 채 인간인 척하는 이브39의 모습은 일종의 튜링 테스트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인간을 경험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이브39는 결국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간적인 인공지능과 기계적인 인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는 정말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 이브39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쉽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페이지터너이며, 스릴과 반전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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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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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판사 문유석에서 작가 문유석으로 넘어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유감>, 그리고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까지 판사와 작가의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했던 그가 전업작가를 선언하면서 겪은 외부, 내부의 폭풍 같은 심정과 일상을 담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권위와 사회적 직위가 보장되는 판사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작가라는 아슬아슬한 직업을 선택하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세상을 쉽게 보는 것이 아닌가?"같은 주제넘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파란만장했고,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과연 '나'를 잘 알고 있나?

그는 판사로서 사회 문제와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지켜보았고, 개인주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경험은 작가로서의 토대를 단단하게 쌓아올린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판사와 작가는 얼핏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의 삶의 궤적으로 보면 때 뚜렷하게 구분하기 보다는 결국 연결되어 있다. 직업으로 자신을 규정짓지 않는 저자를 보면서, 나 스스로를 얄팍하게 규정 짓고 있던 것은 사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판사에서 작가로 전환하는 것을 배부른 선택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성공담을 이야기 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한 사람의 일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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