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신청합니다. 작년 한해 본 것들을 돌아보면 안나까레리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죄와 벌 등 이었네요. 전반적으로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 였던 19세기에 출시된 문학이었습니다. 아직은 러시아 문학 중에서 접한 책들이 대개 레프 톨스토이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러시아 문학의 힘을 제대로 느꼈던 작년 한해였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문학 특강을 한다고 하니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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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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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에 앞서

오래 전부터 오프라인 모임 이외에도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생각했습니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보면서 혹시나 조금이라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지난주부터 [독서 삼매경 주간 추천도서] 라고 나름의 이름을 붙여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책으로 ‘G. 마르케스 - 백년 동안의 고독’ 을 소개했습니다. 부족한 글이기에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스스로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미친 듯 바쁘지 않으면 매주 한 권 정도는 꾸준히 소개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시고 이 글을 통해 좋은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2. 두 번째 선정 도서

이번에 추천할 책은 다가오는 일요일에 있을 [독서 삼매경] 세번째 모임 도서인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입니다. 
지난 12월부터 [독서 삼매경]에서는 ‘역사’를 테마로 한 도서를 진행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 E.H 카’ ‘지금 이 순간의 역사 – 한홍구’ 등을 진행했었고 그 때 역사에 대한 도서를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하던 중에 이 책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그저 일반적인 역사서들과 비슷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펼치자마자 분명 역사책은 맞긴 하더군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좀 더 폭넓은 과학 전반의 역사였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역사가 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죠. 혁신이라 불리는 것들 조차 어디선가는 존재했거나 그와 비슷한 것들이 진화하는 과정 중에 생긴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기록되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사실 엄밀히 말해 거의 모든 자연 과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진짜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나?

이 책은 한글 번역본을 기준으로 약 500페이지 가량의 두께를 자랑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전공서적 이상의 크기이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이런 두께의 책이 수십, 수백만 권이 있다면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백만 년 만에 만났다’라고 과장해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충실히 담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말하고자 이런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면 참으로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참고로 원문의 제목은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입니다). 이 책은 우주의 탄생부터 원자의 발견, 유전학의 발달, 인류의 기원 등을 밝히는 가운데 일어난 역사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4. 이 책은 백과사전식의 사실로서의 역사서인가?

지금의 ‘빅 데이터’와 같은 용어처럼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습니다. 정부 및 기업, 학계에서조차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의 공유가 늘어감에 따라 집단 지성을 통한 지식 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널리 퍼졌죠. 
집단 지성이란 인터넷이라는 누구나 접속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지식인들이 뭉쳐 어떠한 계통의 지식을 함께 기록하며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터넷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위키피디아’입니다.
과거의 두꺼운 종이의 백과사전이 정적인 지식을 담고 있다면 인터넷의 ‘위키피디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난 지식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수정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공신력 있는 새로운 학설을 발표하거나 어떤 중요한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면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업데이트가 되죠. 과거의 브리테니커 백과사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지식을 담고 있고 잘못된 지식은 빠르게 수정됩니다. 그러한 집단 지성의 노력 덕분에 -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위키피디아’를 레퍼런스로 인정하지 않지만 - 근래에는 위키피디아를 출처로 한 미디어 매체와 문서를 종종 볼 수 있게 되었죠. 
이 멋진 집단 지성의 결정체를 무협지의 정파라고 한다면 그 반대쪽에 사파라고 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이 있습니다. 바로 ‘엔하 위키’라는 곳입니다. 이것 역시 이용자가 자유롭게 문서 편집을 할 수 있는 사이트로 약 20만개에 가까운 문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엔하 위키’는 스스로를 오타쿠 관련 정보와 트리비아(하찮고 쓸데없는 것)로 가득찬 공간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떠한 소재에 대해서 재밌는 야사들이 상당부분 존재합니다. 
같은 소재를 두고 ‘위키피디아’와 ‘엔하위키’의 차이점을 이야기 한다면 전자는 보다 사실로서 기록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글의 전문성과 공신력을 담으려 했다면 후자는 하찮지만 재밌는 뒷담화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잡고 있습니다. 방대한 출처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로서의 과학의 역사와 그 멋진 역사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적절하게 버무렸죠. 만약 이 책을 고등학교 때에라도 접할 수 있었더라면 과학을 보는 눈이 분명 변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도입 부분에 쓴 이 책의 저술 의도에서처럼 이론 중심의 과학의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었겠죠. (물론 이 책은 만화책이 아닌 과학책이라는 점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5.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이 책은 2003년도에 쓰였습니다. 때문에 2014년까지 오면서 일부 수정된 과학적 사실에 대해 위키피디아처럼 수정되거나 보완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령 2009년에 태양계의 9번째 행성에서 퇴출당한 명왕성을 혜성으로 인정하며 이야기하는 부분이나 얼마 전 ‘일본의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쥐 혈액 세포를 약산성 용액에 잠시 넣었다 빼니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만능세포(STAP)가 되었더라’ 등의 최신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학사 전반의 중요 부분을 충실히 그리고 쉽게 다루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과학사적 업적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어감으로써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들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 느끼도록 하네요.
더불어 강력하게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앞서 말한 ‘위키피디아’와 ‘엔하 위키’ 등의 집단 지성 때문입니다. 검색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인터넷 백과사전은 책 안의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볼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제공하고 수정되거나 추가된 자료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돕습니다. 이 책은 단언컨대, 그러한 독자의 적극적인 감상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요구되는 책입니다. 
이 책의 큰 가치를 더 꼽자면 다양한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기 위한 끊임없는 인류의 노력과 과학 간의 유기적인 발전 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사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라는 점과 더불어 얼마나 행운아인가를 깨닫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6. 하고 싶은 말

훌륭한 책은 100년 이상을 가며 사람들의 패러다임을 전환 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고전들이 훌륭한 책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겠죠. 이 책은 세상에 나온 지 약 10년 밖에 되지 않아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에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이 대중을 위한 교양 과학서로서 고전의 반열에 슬슬 오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책 또한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고전에 가까운 대접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개정판에는 좀 더 경이로운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과학의 단면을 좀 더 담아야 할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건대, 먼 미래에도 이 책이 계속 존재한다면 쉽게 출처와 참고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컨텐츠를 담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 소재를 클릭하면 바로 검색이 되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북 컨텐츠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학의 첨단의 과학의 역사를 담고 있는 그 순간이 조만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하네요. 머지않아 올 그 때가 되면 아마 이 책을 몇 번이고 저의 아들딸들과 함께 들춰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몇 번이나 감탄을 해가며 들춰보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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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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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것은 참 무섭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이 고독을 벗어나고자 인간은 어디론가 소속을 구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유에 의한 고독을 피하기 위해 권위주의로부터 몸을 기댄다고 하죠. 그에 비하면 법정스님은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고독을 옆구리에 스치는 시장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차!' 하는 것은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시장기는 언제나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따라다닐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고독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나이를 먹고 삶의 회한이 가득할수록 고독감이 더 깊어지는 것일까요? 엄마의 젖 품안에서 살아갈 때는 그런 생각을 그리 품지 않고 있다가 나이가 짙어지고 서른이라는 고개를 넘어서고 나니 고독은 내 안에 또다른 나를 느끼게 되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또다른 나는 어린 시절에 하늘의 별과 달이 내가 좋아 쫓아 온다고 생각하던 때의 나이기도 하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포장마차를 밀어주던 때의 나이기도 합니다. 고독은 불행과 행복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고 그 행복과 불행의 교집합 사이에 존재하는 혼합물의 형태같기도 합니다. 때문에 행복한 위치에 있는 나는 그 안에서 불행에 위치한 또다른 나를 발견하고, 마친가지로 인생의 진흙탕 속에 위치한 나는 에덴 동산에서 젖과 꿀을 빨고 있는 또다른 내 안의 형제를 보며 놀라움과 동시에 슬픔을 교차시키지요. 그러고 보면 고독은 또다른 나 혹은 내 형제를 발견하는 행위같습니다. 이 존재는 마치 이율배반적인 것이어서 마치 한몸에 있되 내 뒤통수에 달려 있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 거울을 통해서만 어렴풋하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자성어 중에 맥수지탄이라는 게 있습니다. 무성히 자라는 보리를 보고 그 옛날 그 자리에 융성했던 한 나라의 멸망을 탄식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백년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은 한 집안의 5대에 걸친 흥망성쇠를 다룬 스토리입니다. 조금은 두껍고 조금은 허황된 것 같은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것이 바로 이 고사성어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번창했던 곳이 이제는 보리밭이 되었고 한 인간이 그 위에 서서 세월의 무상함과 대지 위에서 한낫 덧없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독감을 이 책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융성하고 강대했던 이도 가난하고 허약했던 이도 모두 시간 앞에서는 한낫 덧없는 존재밖에 될 수 없고 우리는 그것을 피하고자 아무리 저항하려고 해도 결국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생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는 대를 이어 태어나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는 어린 시절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간직했던 이조차 세월 앞에서는 썩은 내를 풍길 수 밖에 없는 되풀이 되는 반복을 역사라고 한다면 이 책은 역사를 은근하게 그리고 또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책에 있는 나이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라는 인물이 나이를 먹은 후, 밝고 넓은 텅 빈 길 위에 홀로 서있는 자신을 마주하고 죽음까지 이르는 장면에서는 슬픔보다도 먹먹함이 느껴집니다.  뭐라 잘 설명 할 수 없지만 슬픔보다 더 깊은 감정이며 우리 안에 너무 깊어 빛마저 들기 어려운 깊은호수가 존재한다면 바로 그 곳, 우리 가슴 정 한가운데 심층부에 자리한 것을 건드는 기분이 듭니다. 그곳은 무척이나 어둡고 침침합니다.

 

 

이 책은 참 재밌는 책입니다. 고독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어둡고 칙칙한 장마와 같은 책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밝고 찬란하고 마술같은 오색 향연이 더 많은 책입니다. 어떤 책들은 작가의 국적에 따라 그 나라나 지역적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가 조르바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스와 지중해의 모습을 책에 그대로 나타낸다면 이 책은 지중해와는 다른 남미 카리브 해의 느낌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밌고 환상적이며 읽고 있는 자신도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읽고나면 '고독'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고독한 이의 고독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그와 반대가 될 것 같은 상황들을 제시함으로서 종국에는 치명적인 고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강한 흡입력과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처럼요.

 

 

당신에게 있어서 고독은 무엇입니까? 매일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긍정을 한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인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1년도 아닌, 10년도 아닌 생(生) 전체를 마주하고 있는 고독,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고독을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요? 운명의 양피지를 모두 해석하고 나서야 자기와 자기까지 한 지역의 흥망성쇠와 함께 발버둥치던 그들의 역사가 모두 덧없는 것임을 알게되면서 '나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다시 고민을 하도록 합니다. 그 고민 속에서 어떤 구절 하나가 문득 딱 떠오르네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역사도 세월도 그리고 고독도 무심한 세월 앞에서 지나가고 또 누군가 똑같은 고민을 하겠죠. 그리고 언젠가 '모든 건 다 알려지기 마련이겠지.'는 생각을 품으면서요. 뭐, '다 상관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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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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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의 첫 장을 읽었습니다. '광주의 자식들, 그리고 노무현'이라는 제목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낀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시작하는 첫 번째 장을 천천히 읽는 동안, 가슴이 무척이나 먹먹해졌습니다. (사실 창피하지만, 펑펑 울었습니다.) 

피로써 자유를 노래한 그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무게는 우리가 느끼는 것과 정말 다를 수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더군다나 광주, 부산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우리나라의 군인이, 지켜야 할 국민을 총칼로 짓밟는 만행을 보며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는 이념을 넘어선 시대라고, 과거에 얽매여 사는 것만큼 시대적 착오는 없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그 토대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오기까지 그러한 피는 이 책에 나온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낀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나라를 변화시켜보려는 이들의 정신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비록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 당시에는 실패로 끝났을지라도 그 피와 눈물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제가 읽은 첫 장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이야기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현대사를 보면 굵직굵직한 이야기들은 다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모든 정치도 그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죠. 그 토대 위에서 이제는 학생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피가 민주주의의 탄생을 위한 뿌리였으며 살아남은 자의 눈물이 자양분이었다면, 지금 젊은이들이 외치는 자발적인 목소리는 그 결실입니다. 그리고 결실이 다시 땅으로 떨어져 새로운 뿌리를 내리려는 과정을 겪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열매가 썩어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과거의 나무에 가지치기하여 햇빛이 들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자갈도 걷어내어 양토만 남게 해야 합니다. 진보라고 표방하는 이들은 새로운 싹이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보수라 하는 이들은 적어도 자갈을 거둬줘야 합니다. 우리나라라는 거대한 숲이 자랄 수 있도록요. 그러나 그러한 가지치기도 잘하고 있는지 또 자갈도 잘 걷어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참 슬픈 책입니다. 슬픈 소설보다 더 슬프게 느껴지고 그 어떤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처럼 느껴집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지 그리고 미래에 어떤 가치를 전해 줄 수 있을지, 이 책을 통해 함께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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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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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에 역사 교과서 문제로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여러 말이 오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대안 교과서의 일제의 수탈을 근대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 주된 문제였죠.


위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 에서 E.H 카는 '역사는 역사가의 관점에서 미래의 가치나 목적을 가지고 쓰인 것으로 가치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합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유명한 말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을 풀어쓴 것이죠. 다시 말하면 역사는 어떠한 가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과거의 사실과 미래의 목적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작성되는 것이라 합니다. 
 
역사는 한가지 사실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실 가운데 가장 중요하거나 현재를 사는 역사가의 어떠한 가치, 혹은 관점에 따라 역사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배우고 그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다양한 과거 사실들 가운데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특히 중요한 부분이 모여 틀을 이루게 되는 것이죠.
 
민족의 역사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이끌어 내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가 미래의 그 교과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배우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사실의 일부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되는 것은 역사가의 저급한 의식 수준을 비판할 수밖에 없으며 어떠한 모종의 목적이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 없도록 합니다. 교과서를 작성한 역사가가 적어도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E.H 카가 말하는 역사를 통한 가치 창출과 미래에 대한 통찰은 비단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과 지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역사 역시 큰 의미에서 사회 과학이며 우리가 배우는 인문 과학, 자연 과학 역시 과거의 결과를 통해 어떠한 가치를 이끌어 내느냐, 어떠한 통찰을 발견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이니까요.


고등학교 3년 내내 줄기차게 들었던 E.H 카를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쑥스럽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벅차기까지 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배우는 현대의 모든 지식의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우리는 어떠한 통찰을 얻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다시 말하면 ‘왜?’ 와 ‘어떻게’를 통해 과거와 현재와는 다른 변화된, 진보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역사의 인식을 갖게 될지는 각자의 몫임과 동시에 역사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다양한 생각들이 늘어난 반면에 곡학아세 하는 이들로 하여금 바르지 못한 인식이 확대 될 수 있는 위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의 인식에 대해 합리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을 마련해 줄 다시 없는 기회를 만나는 것이라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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