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들어가기에 앞서

오래 전부터 오프라인 모임 이외에도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생각했습니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보면서 혹시나 조금이라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지난주부터 [독서 삼매경 주간 추천도서] 라고 나름의 이름을 붙여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책으로 ‘G. 마르케스 - 백년 동안의 고독’ 을 소개했습니다. 부족한 글이기에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스스로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미친 듯 바쁘지 않으면 매주 한 권 정도는 꾸준히 소개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모쪼록 즐겁게 읽어주시고 이 글을 통해 좋은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2. 두 번째 선정 도서

이번에 추천할 책은 다가오는 일요일에 있을 [독서 삼매경] 세번째 모임 도서인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입니다. 
지난 12월부터 [독서 삼매경]에서는 ‘역사’를 테마로 한 도서를 진행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 E.H 카’ ‘지금 이 순간의 역사 – 한홍구’ 등을 진행했었고 그 때 역사에 대한 도서를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하던 중에 이 책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그저 일반적인 역사서들과 비슷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펼치자마자 분명 역사책은 맞긴 하더군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좀 더 폭넓은 과학 전반의 역사였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역사가 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죠. 혁신이라 불리는 것들 조차 어디선가는 존재했거나 그와 비슷한 것들이 진화하는 과정 중에 생긴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기록되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사실 엄밀히 말해 거의 모든 자연 과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진짜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나?

이 책은 한글 번역본을 기준으로 약 500페이지 가량의 두께를 자랑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전공서적 이상의 크기이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이런 두께의 책이 수십, 수백만 권이 있다면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백만 년 만에 만났다’라고 과장해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충실히 담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말하고자 이런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면 참으로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참고로 원문의 제목은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입니다). 이 책은 우주의 탄생부터 원자의 발견, 유전학의 발달, 인류의 기원 등을 밝히는 가운데 일어난 역사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4. 이 책은 백과사전식의 사실로서의 역사서인가?

지금의 ‘빅 데이터’와 같은 용어처럼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습니다. 정부 및 기업, 학계에서조차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의 공유가 늘어감에 따라 집단 지성을 통한 지식 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널리 퍼졌죠. 
집단 지성이란 인터넷이라는 누구나 접속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지식인들이 뭉쳐 어떠한 계통의 지식을 함께 기록하며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터넷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위키피디아’입니다.
과거의 두꺼운 종이의 백과사전이 정적인 지식을 담고 있다면 인터넷의 ‘위키피디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난 지식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수정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공신력 있는 새로운 학설을 발표하거나 어떤 중요한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면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업데이트가 되죠. 과거의 브리테니커 백과사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지식을 담고 있고 잘못된 지식은 빠르게 수정됩니다. 그러한 집단 지성의 노력 덕분에 -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위키피디아’를 레퍼런스로 인정하지 않지만 - 근래에는 위키피디아를 출처로 한 미디어 매체와 문서를 종종 볼 수 있게 되었죠. 
이 멋진 집단 지성의 결정체를 무협지의 정파라고 한다면 그 반대쪽에 사파라고 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이 있습니다. 바로 ‘엔하 위키’라는 곳입니다. 이것 역시 이용자가 자유롭게 문서 편집을 할 수 있는 사이트로 약 20만개에 가까운 문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엔하 위키’는 스스로를 오타쿠 관련 정보와 트리비아(하찮고 쓸데없는 것)로 가득찬 공간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떠한 소재에 대해서 재밌는 야사들이 상당부분 존재합니다. 
같은 소재를 두고 ‘위키피디아’와 ‘엔하위키’의 차이점을 이야기 한다면 전자는 보다 사실로서 기록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글의 전문성과 공신력을 담으려 했다면 후자는 하찮지만 재밌는 뒷담화 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잡고 있습니다. 방대한 출처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로서의 과학의 역사와 그 멋진 역사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적절하게 버무렸죠. 만약 이 책을 고등학교 때에라도 접할 수 있었더라면 과학을 보는 눈이 분명 변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도입 부분에 쓴 이 책의 저술 의도에서처럼 이론 중심의 과학의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었겠죠. (물론 이 책은 만화책이 아닌 과학책이라는 점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5.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이 책은 2003년도에 쓰였습니다. 때문에 2014년까지 오면서 일부 수정된 과학적 사실에 대해 위키피디아처럼 수정되거나 보완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령 2009년에 태양계의 9번째 행성에서 퇴출당한 명왕성을 혜성으로 인정하며 이야기하는 부분이나 얼마 전 ‘일본의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쥐 혈액 세포를 약산성 용액에 잠시 넣었다 빼니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만능세포(STAP)가 되었더라’ 등의 최신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학사 전반의 중요 부분을 충실히 그리고 쉽게 다루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과학사적 업적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어감으로써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들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 느끼도록 하네요.
더불어 강력하게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앞서 말한 ‘위키피디아’와 ‘엔하 위키’ 등의 집단 지성 때문입니다. 검색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인터넷 백과사전은 책 안의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볼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제공하고 수정되거나 추가된 자료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돕습니다. 이 책은 단언컨대, 그러한 독자의 적극적인 감상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요구되는 책입니다. 
이 책의 큰 가치를 더 꼽자면 다양한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기 위한 끊임없는 인류의 노력과 과학 간의 유기적인 발전 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사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라는 점과 더불어 얼마나 행운아인가를 깨닫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6. 하고 싶은 말

훌륭한 책은 100년 이상을 가며 사람들의 패러다임을 전환 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고전들이 훌륭한 책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겠죠. 이 책은 세상에 나온 지 약 10년 밖에 되지 않아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에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이 대중을 위한 교양 과학서로서 고전의 반열에 슬슬 오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책 또한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고전에 가까운 대접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개정판에는 좀 더 경이로운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과학의 단면을 좀 더 담아야 할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건대, 먼 미래에도 이 책이 계속 존재한다면 쉽게 출처와 참고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컨텐츠를 담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 소재를 클릭하면 바로 검색이 되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북 컨텐츠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학의 첨단의 과학의 역사를 담고 있는 그 순간이 조만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하네요. 머지않아 올 그 때가 되면 아마 이 책을 몇 번이고 저의 아들딸들과 함께 들춰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몇 번이나 감탄을 해가며 들춰보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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