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있다는 것이 행하지 않으면 배움의 의미가 없다.

자하가 말했다. "현명한 사람을 현명한 사람으로 대 접하기를 마치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고, 부모를 섬길 때는 있는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길 때는 몸을
바치고, 벗을 사귈 때는 진실한 말을 한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_ 「학이」,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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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의미는 ‘그 사람
의 마음을 ‘안다‘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어로 ‘안다‘라는 말은 ‘야다.
(yadah)‘라고 한다. 그 말의 뜻은 ‘몸과 마음을 써서 깊이 알다‘이다. 다시 말하면 ‘공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과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함께 깊이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는 것,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몸과 마음으로 안다‘는 뜻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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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신의 의지와 주체성이 함께 가야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알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틔워 주지 않는다. 한 모서리를 들어서 보여 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서리를 헤아리지 못하면, 반복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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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분명한 것은 내 몸을 움직이면서 갖게 되는 그 순간의 감각이다.

J. M. 쿳시의 소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마지막에,책 제목과 이름이 같은 늙수그레한 주인공이 단 하나 확신하는 대상은 사랑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다. 개구리 울음소리, 진흙탕에 갇혀서 억수 같은 비가 잠시 멎은 사이에 목청을 울려대는 개구리 울음소리이다.

니체는 말했다. ‘그 어떤 심오한 철학보다 더 큰 지혜가 육체에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마사그레이엄은 말했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싹할 정도로 서로 다른 동물들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모두 같은 동물들이다. 포대기에서 관을 향해 움직여가는 우리의 몸은 사람이 세상에 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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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남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은 물체를 움켜잡는 손가락 힘에서 확인되고 자라면서 심리적 정서적인 움켜잡음에서 확인된다.

신생아는 주먹을 쥐고 있을 때가 많다. 누가 그 엄지와 집게 사이를 쓰다듬으면 아기의 손은 그 물체를 꽉 움켜쥐는데, 양손으로 잡으면 제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 타고난 ‘움켜잡기 반사‘는 사람의 아기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인류 출현 직전에, 아기가 어미의 털에 매달려 다녀야 했던 진화 단계에서는 유용했을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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