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안녕
유월 지음 / 서사원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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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장을 다 덮고 확신했다. 나 이런 소설 좋아하는구나.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으면서도 지인들이 어떤 소설이 재밌는지 물어올 때, 정해져 있는 공식처럼 응당 추리소설이 가장 재밌다고 대답하는 나였다. 그런데 나란 사람은 추리소설 못지않게 이런 소설도 좋아하나 보다. 여기서 이런 소설이란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본 것처럼 생생하게 장면이 그려지면서 재밌고 웃긴데 감동과 교훈까지 있는 소설을 말한다. 분명 에세이류가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가사조사관과 임상심리사는 나에겐 다소 생경한 직업이다. 둘 다 드라마에서 몇 번 접해봤을 뿐 이렇게나 고충이 크고 힘든 직업인지 몰랐다. 역시 사람을 대하는 직업은 항상 험난하고 극한 것이다. 가사조사관을 두 번째 직업으로 삼고 열일하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 도연. 도연은 직장에서 동료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며 지내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할 말은 다하면서 상사의 이쁨을 받지 못하는 소신 있고 주관 있는 (어쩌면 직장에 한 명씩은 있는 캐릭터일지도 모르는) 여성이다. 언니의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녀도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을지 모르겠다. 임상심리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던 시절,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녀를 지켜보던 민교수는 그녀에게 조용히 심리치료를 권유한다. 도연은 그때부터 민교수를 은인이자 친구로 생각하며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 준 민교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민교수의 권유로 도연이 그때 적절하게 심리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도연은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리고 특히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처럼 여겼던 도연의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가족에 대해 상담하고 경청하고 조율하는 가사조사관이다. 특히 이혼 부부와 아이의 양육권에 대한 조사와 상담이 주를 이루었고, 무례한 상담자가 내뱉는 말에 도연은 또 상처를 받고 기가 빨리는 걸 느낀다. 도연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을 줄이게 된다.

소설 중반부는 도연의 첫 번째 직업이었던 임상심리사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가 왜 임상심리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슬프고도 씁쓸한 이야기. 도연의 멘토이자 선배, 좋은 회사 동료였던 지원. 도연은 딱히 잘못한 것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지원에게 미움받고 있었고 지원의 눈엣가시가 되어 심리실에서 스터디룸으로 쫓겨나는 지경까지 이른다.


˝상처를 후벼대는 지원의 말은 형벌 같았다. 비밀을 누설한 죄. 도연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p.106

지원이 먼저 마음을 열고 도연에게 가족사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도연도 지원을 믿고 언니 이야기를 덤덤하게 한 것뿐이었는데 지원의 말과 행동은 도연의 상처를 후벼파기 시작한다. 나의 비밀이 타인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말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도연이 가사조사관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인물, 시재. 도연은 시재와 알고 지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웃을 일이 많아졌고 계속 그녀가 신경 쓰여 챙겨주게 되면서 시재에게 자기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낸다. 항상 시재에게 충고하면서 어른스럽게 굴던 도연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나이가 한창 어린 시재에게 위로를 받으며 도연은 눈물을 쏟아낸다.


˝생각해봤는데요. 우리가 서로에게 치료자가 되어주면 어떨까요? 거기엔 슬픔만 있지 않게,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군데군데 끼어 있게.˝
p.208

우진에게 술자리에서 도연이 건네는 말이다. 소설의 결말은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희망적이고 따뜻하다. 무엇으로부터의 안녕일까. 도연의 주변 인물 중 누구 하나 가족사가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가족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버거움과 고통. 타인에게 드러낼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시재와 우진, 고인이 된 민교수에게까지 고단한 삶의 궤적을 엿보고 나만 이렇게 상처받고 힘든 것이 아니었음을 도연은 절감했으리라.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서로에게 치료자가 되어 준다는 것. 타인을 신뢰해야 가능한 일이리라. 도연 곁에 시재와 우진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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