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산지 벌써 15년.
이젠 이곳 날씨에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왜 나는 아직도 3월이 되면 따뜻한 햇살을 기대하는 걸까요?
쏟아지는 눈, 차디 찬 공기, 바깥에서 위로 받기 어려운 지금,
더더욱 집안에만 머물게 되네요.
뭐 그 덕에 책 열심히 보고 일기장에 일기도 엄청 열심히 끄적끄적 대고 있습니다.^^


80. "안나 카레니나 1", 레프 톨스토이 저, 윤새라 역,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1
81. "안나 카레니나 2", 레프 톨스토이 저, 윤새라 역,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1
82. "안나 카레니나 3", 레프 톨스토이 저, 윤새라 역,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1
일단 3권이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일절 들지 않을 정도로 재밌습니다.
아름다운 유부녀와 젊고 멋진 장교의 사랑과 불륜, 그리고 파국!
진짜 드라마틱하죠. 사람들의 마음을 확~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우리의 여주인공 안나 외에도 주인공이 또 한명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레빈입니다.
레빈은 안나와 상관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아는 이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단 한번 마주친 적이 있을 뿐인데요. 안나의 이야기와 평행해서 레빈의 삶도 계속해서 소설에 등장합니다.
시골 영지의 지주로 농사일에 몰두하며, 삶과 죽음을 고민하고, 너무나 모범적인 삶을 사는 그는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로서는 거의 매력이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실상 톨스토이는 레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이 사이 매력적인 여인 안나의 이야기를 넣은 것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안나의 죽음 이후 레빈의 삶을 그리고 있는 제8부를 읽다보면, 작가가 안나라는 여인을 완전히 잊은 양 레빈이 삶의 의미를 찾는 의식의 변화만을 집요하게 그리고 있거든요.
오! 불쌍한 안나.
무신론자였던 레빈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을 고민하다가 결국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에게 신이란 바로 선(善) 그 자체이고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됩니다.
그 동안은 마지못해 삶을 살아가던 그가 이 깨달음을 통해 내면의 큰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 됩니다.
참 여운이 기네요.
나에게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나에게 궁극적 실재란 어떤 모습인가? 라는 고민을 남겨주었죠.
레빈이 삶과 죽음 사이 치열하게 고민한 것처럼 나도 고민에 빠져봐야겠습니다.
죽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83. "습관의 힘", 찰스 두히그 저, 강주헌 역, 갤리온, 2012
습관은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 없이 행동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이 행동할 때 일상적인 것들은 생각 없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자잘한 행동들까지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한 삶이겠어요.
습관형성에는 3가지의 고리가 있다고 합니다. 신호가 오면 그에 따라 행동을 하고 이에 보상을 받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습관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소위 좋은 습관 (예를 들면 운동습관 같은 것)은 장려해야겠지만, 좋지 않은 습관(오후 4시경 쿠키를 먹는 것)은 바꾸려 노력해야 할 텐데요.
나쁜 습관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종의 보상이기 때문에, 내가 이 행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하여, 이전 습관의 보상과는 같되, 행동을 다르게 해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오후에 카페테리아에서 쿠키를 먹는 것이 사람들과의 대화를 원하는 행동이었음을 분석하여, 카페테리아에 가는 대신 주위 사람들과의 잡담으로 동일한 보상을 얻을 수 있겠지요.
이 책은 습관을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기업문화와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장시켜서 설명해 주고 있으며, 여러 사례와 인터뷰 그리고 연구보고서의 결과들을 제시하여 신뢰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한 번 읽어 보세요 ~
84.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저, 김태훈 역, 8.0, 2011
협상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가 관계 맺으며 하는 행동 모두를 협상이라고 봤을 때, 협상을 통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가치가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책의 내용이 대부분 구체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독자들도 실생활에 적응해 볼만한 것도 많이 있지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고 크게 와 닿는 게 많지는 않더군요.
그냥 맘 편한 대로, 정해진 규정대로 그냥 살렵니다.
물론 제가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느낄 경우에는 책에 나온 사례를 활용해, 정당한 요구를 할 수도 있겠지요.^^
아! 참! 꼭 기억해 둘만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협상 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절대 감정적이 되지 말라는 것이요.
이건 어떤 상황에서도 활용 가능한 황금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85. "소크라테스의 변명 외“, 플라톤 저, 권혁 역, 돋을새김, 2008
이 책에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변명”, “크리톤”, “파이톤” 이렇게 3편이 들어있습니다.
이 세 편은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부정했다는 혐의로 아테네 법정에 소환되어 자신을 변론하고,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의 내용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단연코 “파이돈”인데요, 소크라테스의 사형집행일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는 시미아스와 케베스와 함께 영혼불멸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불멸함을 입증하기 위해 대립의 원칙을 주장하며, 죽음은 삶에서 나오고 삶은 죽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이 다시 되돌아 온다고 증명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이미 알았던 것을 다시 상기하는 과정이며, 그것은 이미 그것을 기억하는 영혼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홀수라는 특성을 지닌 숫자 3이 결코 짝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생명의 특성을 지닌 영혼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죽음이 다가오면 그것을 피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불멸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죽음 앞에서도 결연하였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긴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크라테스가 말한 논리에 다 수긍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배운다는 것은 이미 알았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저도 이미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저는 이미 영혼이 존재 한다기 보다는, 생명의 발생 시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가 새 생명에 전달된다는 점에서 동의합니다.) 영혼이 생명의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불멸한다는 주장에는 많은 논리적 모순이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도 집요하게 반론을 펼치고 있죠!)
그래도 플라톤 당시 세계관이나 인생관에 비추어서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질문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저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어요.
공부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암기가 아니라, 왜 이것이 여기 있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요.
86. "국가론", 플라톤 저, 이환 편역, 돋을새김, 2006
또 다시 플라톤입니다.^^
소크라테스와 여러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개인의 정의를 규정하기 이전에 보다 큰 개념으로 국가의 정의를 규정해 보자고 얘기가 되어, 정의로운 이상국가의 모습을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나가는 내용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떠올랐습니다만, 아쉽게도 구체적인 내용이 생각나지 않더군요. 이런... 이럴 때 아주 속상합니다. 이걸 계기로 유토피아를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록한다는 게 정말 중요하네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국가가 발전하면 수호자계급이 생기게 된다
-이들은 기백과 철학자의 기질을 갖춰야 하므로 음악과 체육을 교육시켜야 한다.
또 사유재산을 허락하면 안 되고, 식량과 보수도 필요한 만큼만 지급하고 공동생활을 하고 금과 은을 가까이 하게 해선 안 된다.
-통치자는 국가의 수호자들 중 국가를 위한 일엔 열성을 다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엔 초연한 사람을 선출해야한다
-훌륭한 국가에 필요한 덕목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로, 국가의 정의란 국민들 각자가 자신의 소임을 다 하는 것이다.
-수호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남녀의 구별이 없으며,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수호자 그룹 내에서 남녀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으며(물론 이들은 모르게 우수한 남녀끼리 그리고 열등한 남녀끼리 관계를 맺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자녀들은 공동으로 양육 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들려면 철학자가 통치하거나, 통치하는 자가 지혜를 사랑해야 한다.
-통치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학문이란, 선의 이데아이다. 동굴안의 죄수들은 실재의 그림자밖에 보지 못하지만, 동굴을 벗어나 지상에서 실재를 본 자는 선의 이데아를 본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들을 다시 동굴로 내려가게 해서 동료들과 함께 하게 해야 한다.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수학, 기하학, 천문학, 변증론을 배워야한다
-국가체제에는 5가지가 있다. 최선의 국가체제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귀족체제이고, 명예체제, 과두체제, 민주체제, 참주체제는 잘못된 국가체제이다.
-그러나, 철학을 사랑하는 현명한 인간은 자신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평생을 바치며, 실제로 정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고 하늘에만 있는 자신이 스스로 세운 이러한 이상 국가에서만 정치를 할 것이다. (이런 반전이!!!)
결국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론을 펼쳤지만, 실재로 이런 국가의 현실화에 대해서는 본인도 의심했던 모양입니다.
책 내용이 무척 흥미롭긴 했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와 닿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동굴 비유만큼은 저에게 생각거리를 주었습니다. 즉, ‘진리를 깨달은 자 다시 세상으로 가야한다’는 그 부분이 아주 크게 와 닿았습니다.
며칠 전 읽은 책에서 선불교의 ‘십우도“얘기를 읽었는데, 거기에서 말하는 종교적 깨달음의 10가지 단계도 이와 유사합니다.
집을 나서서 소를 찾아 소를 길들이지만, 나도 잊고 소도 잊고, 근원으로 돌아갔다가 결국은 저자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돕는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진리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통하는 거겠죠?
좀 전에 일기예보를 봤더니, 요번 주만 넘기면 그래도 기온이 조금은 올라간다고 합니다.
지지난달 다녀온 베를린 신국립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죠.
“Alle reden vom Wetter. Wir nicht(모든 사람이 날씨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나도 모든 사람에 속하나 봅니다.
지긋지긋한 베를린 날씨 덕에 맨날 날씨 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