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발표 하느라 책 요약해 놓은 거 올려요.^^
이거 읽고 관심 생기신 분들께서 직접 사서 읽으신다면 저에게는 큰 기쁨 되겠습니다.
책을 다 읽은 날은 2013년 4월 26일
발표를 위해 요약한 날은 2014년 5월 12일
책 읽고 나서 1년도 더 지나서, 밑줄 그은 거 보면서 후다닥 요약한 거라
내용이 빈약할지도 모릅니다 .ㅠㅠ
우연과 필연, 자크 모노 저, 조현수 역, 궁리, 2010
1. 이상한 존재들
생명체를 특징짓는 세 가지 속성 : 합목적성, 자율적 형태발생, 복제의 불변성
복제의 불변성 : 고차원적인 질서를 갖춘 구조를 복제하는 능력
합목적성 : 합목적적인 의도의 본질은 종을 특징짓는 불변성의 내용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이 본질적인 의도의 성공에 기여하는 모든 구조와 성능, 그리고 모든 활동이 “합목적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불변성과 합목적성은 실제로 생명체를 특징짓는 속성에 해당하지만, 자발적인 구조형성은 속성이라기보다는 메카니즘으로 간주된다.
불변성의 역설
고도의 질서를 갖춘 어떤 구조가 유지되고 복제되고 증식된다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과 상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법칙에 따르면 모든 거시적인 계는 그것의 질서가 상실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 내의 어떤 부분적인 영역에서는 질서를 갖춘 구조가 형성되고 생장하는 일이, 즉 질서가 증가하는 일이 가능하다.
글루코스(포도당)와 같은 단순한 당과 무기염 몇 밀리그램이 1밀리리터 물 속에 용해되어 있고, 이 속에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를 한 개 심을 경우, 36시간 후 그 용액에는 수 십억의 박테리아가 생긴다. 이런 과정 가운데 당의 40%가 세포성분으로 전환되고, 나머지는 산화되어 이산화탄소와 물이 된다. 이 실험전체를 칼로리미터 속에서 행하면, 제2법칙에서 정해진 최소치보다 조금 더 증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박테리아 세포가 나타내는 극도로 복잡한 구조는 단지 보존될 뿐만 아니라 수십억배로 증가하였지만, 이에 필요한 열역학 비용은 완전히 지불된 것이다.
합목적성과 객관성의 원리
불변적 복제에 필요한 열역학적 대가는 조금도 틀림없이 지불된다. 이는 생명체의 합목적적 장치 덕분인데, 이 합목적적 장치는 너무나 완벽하여, 칼로리를 절약하면서도 지극히 복잡한 과정을 수행한다.
2. 생기론과 물활론
불변성과 합목적성 사이의 우선관계
불변성과 합목적성의 우선관계에 대한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이다.
다윈의 생각 : 불변성이 필연적으로 합목적성에 우선한다. 점점 더 고도로 발달되어 가는 합목적적 구조들이 출현하고 진화하고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불변성이란 속성을 소유하고 있는 어떤 구조에 많은 우연인 요란들이 계속해서 돌발적으로 발생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설은, 불변성을 일차적인 속성으로 생각하고 합목적성을 불변성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이차적인 속성으로 생각함으로써, 이제까지 제시된 여러 이론들 가운데 유일하게 ‘객관성의 공리’에 부합하는 이론이 된다.
다윈의 생각을 제외한 생명체에 대한 기타 이론들 비판
형이상학적 생기론 : 주창자 베르그송
생명을 어떤 ‘약동’이나 ‘흐름’으로 생각하는 것에 근거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생기론은 목적론적이지는 않다. 진화란 곧 생명의 약동으로서, 어떤 목적인이나 작용인도 갖지 않는다. 인간은 물론 진화가 도달한 최고의 단계지만, 진화란 결코 인간을 목적으로 지향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베르그송은 합리적인 지성은 단지 비생명적인 물질을 지배하는 데에만 특별하게 적합한 인식의 도구일 뿐, 생명의 형상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완전히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생의 약동’과 한 몸을 이루는 본능만이 생명 현상에 대한 직접적이면서도 전체적인 직관을 줄 수 있다.
과학적 생기론
엘자서 : 불변성이나 합목적성이 물리학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리적 힘들이나 화학적 상호작용들을 가지고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명체 속에 작용하는 또 다른 원리들(비오토닉 법칙들)을 연구해야 한다.
배의 발생 : 물리적 법칙만으로 배의 발생을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생기론자들은 생각.
그러나 이는 명확한 지식이나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현재 처한 무지에 의해 정당화되는 내용일 뿐이다.
분자생물학 내에서는 최근 20년 사이 미스터리가 남아 있을 영역을 크게 축소시켰다.
이제 생기론의 사변에 남겨진 영역이라고는 고작 주관성의 영역, 즉 의식 자체의 영역 정도이다. 그러나 곧 그에 대해서도 밝혀지게 될 것이다.
물활론적 투영
물활론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중추신경계가 고도로 합목적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인간이 이러한 의식을 영혼이 없는 자연에 투영하는 데서 성립된다.
과학주의적 진보론
테야르 드 샤르댕의 생물학적 철학 : 전적으로 어떤 시원적인 진화론적 원리가 존재한다. 진화론적 힘이 미립자들로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온 우주 전체에서 작용하고, 물질과 생명 사이에는 아무런 본질적 구분이 없다.
실증주의자 스펜서 : 어떤 알려지지 않은, 또한 알 수도 없는 어떤 힘이 우주 전체에 작용함으로써 다양성과 정합성, 특정한 형태들과 질서를 창조해 낸다.
변증법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은, 의식이 ‘물(物) 자체’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완벽한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그것의 강한 요구로 인해, 어떤 종류의 비판적 ‘지식의 이론’에 대해서도 ‘관념론적’이니 ‘칸트적’이니 하는 부정적인 딱지를 붙인다.
자연을 인간적 의미로 해석하고 정신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함. 어떻게 위장을 하건 간에 여기에 숨은 “물활론적 투영”이 드러난다.
당대의 과학에 대해 지식이 깊었던 엥겔스는 변증법의 이름하에 당대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과학 즉, 열역학 제2법칙과 진화에 대한 자연선택적 해석을 거부하였다.
이상의 모든 이론들은 예외 없이 어떤 시원적(始原的)인 합목적적 원리를, 생명권 단독의 원동력으로나 혹은 우주 전체의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현대과학의 눈으로 보자면 이런 이론들은 모든 틀린 것이고, ‘자연의 객관성’의 공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방법상의 이유로도 틀렸고, 사실의 차원에서도 틀렸다.
인간중심주의적인 환상
이러한 오류들의 원천에는 확실히 인간중심주의적인 환상이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화론에 결부된 이 새로운 인간중심주의가 사라지게 되었다.
생명권은 미리 예측 가능한 대상이나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어떤 특수한 사건을 이룬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필연적인 이유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기를, 우리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우리의 존재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기를 원한다. 모든 종교와 거의 대부분의 철학, 심지어 과학의 일부까지도 자기 자신의 우연성을 필사적으로 부인하려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영웅적 노력의 증거다.
3. 맥스웰의 도깨비
생명체의 구조적, 기능적 합목적성을 가능하게 하는 분자적 요인으로서의 단백질
단백질이야말로 유기체라는 화학적 기계의 활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이 기계의 기능이 정합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주며 또한 이 기계를 만들어 내는 주역임.
단백질은 거대한 분자로서, 아미노산이라는 화합물이 결합하여 중합된 결과로 만들어짐. 그러나 아미노산 잔기는 불과 20개의 화학종에 속하며, 이는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것임.
생명체의 구성이 이처럼 단조롭다는 사실은, 생명체들의 거시적인 구조의 놀라운 다양성이 실은 미시적인 구조의 역시 놀랄만한 단일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예증하는 것임.
단백질이 미시적 도깨비가 수행할 것만 같은 이러한 놀라운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분자들과 “비공유적”으로 결합하여 “입체특이성”을 갖는 복합체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임.
입체 특이성
효소 단백질의 특이성
1. 각각의 효소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반응만을 촉매
예) 효소 푸마라아제는
(가수반응)
푸마르산 ⇄ 사과산
(탈수반응)
2. 효소는 여러 화합물 중, 일반적으로 그들 중 오직 하나에 대해서만 반응
-푸마르산의 기하이성질체 (원소 내용은 같음, 모양은 다름)인 말레산에는 작용하지 않음
-사과산에는 두 개의 공학이성질체 (거울상을 이루는 것)인 L-사과산과 D-사과산이 있는데, 푸마아라제 효서는 오직 L-사과산만을 탈수시켜 푸마르산을 만들고, 푸마르산으로 부터는 오직 L-사과산만을 만듦.
효소가 바로 비대칭의 근원이 됨.
따라서 화합물들이 단백질(효소)와 결합하여 “입체특이성”을 갖는 복합체를 형성함.
공유결합과 비공유결합
-공유결합 : 엄밀한 의미의 화학적 결합으로 두 개이상의 원자가 전자쌍을 공유함으로써 생기는 결합
-공유결합과 비공유결합의 차이
결합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크기의 차이
공유결합 > 비공유결합
활성화 에너지
공유결합 > 비공유결합
따라서 비공유 결합은 낮은 온도에서나 촉매가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빠른 속도로 일어남.
비공유적 상호작용으로 이뤄진 구조가 안정성을 얻으려면 많은 수의 비공유적 상호작용을 수반해야 하고, 어느정도 에너지를 얻으려면 이들이 거의 붙어있어야 함
즉, 두 분자의 표면이 각자 상대방에 대해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한쪽 분자 속 여러 개의 원자들이 다른 쪽 분자 여러 개와 들어붙을 수 있어야 함.
4. 미시적 사이버네틱스
조절 단백질 : 알로스테릭 효소
다른 고전적 효소처럼 자신에게만 적합한 특이성을 가진 기질을 알아보고 그것과 결합하여 그것을 다른 물질로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이 효소들은 그 외에도 다른 화합물들도 선별적으로 식별하여 그것들과 (입체특이성을 갖도록) 결합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결과 기질에 대한 효소 활동이 더욱 활발해 지거나 저해되는 변화가 생긴다.
알로스테릭 상호작용 조절방식
피드백 저해 : 어떤 효소가 어떤 대사산물을 만들어낼 때, 처음의 효소가 이 대사산물에 의해 활성이 저해됨.
피드백 활성화 : 어떤 효소가 자신이 만든 대사반응의 최종산물이 분해되어 생기는 생성물에 의해 활성화됨.
평행적 활성화 : 어떤 한 계열의 대사반응을 일으키는 처음의 효소가, 이 계열과는 독립적으로 평행하게 일어나는 다른 계열의 대사반응의 결과로 합성되는 대사산물에 의해 활성화된다.
전구체에 의한 활성화 : 효소가 그 자신의 기질로부터 다소간 멀리 떨어져있는 어떤 화합물, 즉 전구체가 되는 어떤 화합물에 의해 활성화된다.
알로스테릭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
합목적적인 활동이 구성성분을 많이 가진 복잡한 시스템의 독점적인 전유물이 아니라, 단 하나의 단백질 분자도 이미 어떤 반응을 선별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화학적 정보에 따라 자신의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
무근거성
어떤 화학적 신호가 수행하는 기능과 이 기능을 통제하는 화학적 신호의 본성 사이에는 화학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개념. (화학적으로 자의적 연결임)
시스템에서 화학적 신호들의 전달과 해석을 가능하게 해 주는 분자적 상호작용들은 서로 다른 입체특이적 식별력을 가진 단백질 덕분에 일어나는 가설을, 또한 이러한 입체특이적 식별력을 가진 단백질들의 활동에는 알로스테릭 상호작용들에 대한 연구에서 밝혀진 화학적 무근거성이라는 원리가 적용된다는 가설을 지지함.
5. 분자 개체 발생
유기체 발생의 단계
1. 폴리펩티드 배열이 스스로 접혀져 입체특이적 결합력을 가진 구상단백질을 형성한다.
2. 단백질 사이의 (혹은 단백질과 다른 구성성분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세포소 기관이 형성된다.
3.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조직과 기관이 구성된다.
4. 이 모든 단계를 통틀어 화학적 작용들 사이의 상호조정과 분화가 알로스테릭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이 모든 현상들을 결정짓는 최종적인 원천은 유전정보다. 이 유전정보가 폴리펩티드 배열로 나타나고 이 배열이 초기조건에 의해 해석되어-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과되어- 이 모든 현상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체의 모든 합목적적인 구조와 작용이 이뤄지도록 하는 궁극적인 근거는 폴리펩티드 섬유의 아미노산 잔기들의 배열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아미노산 잔기의 배열이야말로 맥스웰의 생물학적 도깨비-즉, 구상단백질-를 낳는 맹아인 것이다.
6. 불변성과 요란
서양사상의 두 가지 입장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본질적으로 불변적인 형상들 속에 있다.
우주의 유일한 실재는 운동과 진화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두 가지 생각은 양립불가능하지 않음
해부학적 불변성
화학적 불변성
구조의 동일성 – 모든 생명체는 예외없이 단백질과 핵산이라는 고분자로 구성
기능의 동일성 – 기본적 화학적 조작들은 모든 유기체들에게서 동일한 반응에 의해, 동일한 반응들의 연쇄에 의해 수행됨.
기본적 불변 요소로서의 DNA
DNA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불변요소임. DNA의 불변적 복제의 비밀은 이중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사슬이 서로 결합하여 비공유적 복합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서로에 대해 입체 화학적 상보성을 갖는 데 있음.
복제 과정과 번역과정
DNA 서로 동일한 두 개의 이중쇄
↑ (복제)
DNA 상보적인 뉴클레오티드 배열을 갖는 이중쇄
↓ (번역)
폴리펩티드 아미노산 잔기의 선형 배열
↓ (표현)
구상 단백질 아미노산 잔기의 선형 배열이 스스로 접혀진 것
미시적 요란
물리학에 따르면 어떤 미시적인 존재도 양자적 차원의 요란을 겪지 않을 수 없음. 이런 양자적 요란들이 시스템 내에 쌓이면, 이 시스템의 구조가 점차적으로 변화를 겪게 됨.
이 미시적 요란들 중 몇몇은 DNA 상에 배열되어 있는 몇몇 원소들에게 다소간 띄엄띄엄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고, 이 오류에서 전사 상의 오류가 생겨나고, 이 오류는 저 맹목적 복제의 메커니즘에 따라 다시 전사되고, 이 오류는 충실하게 번역되어 아미노산 배열에 변화를 가져올 것임. 이것이 구상 단백질이 되면, 돌연변이가 지니는 유기체의 기능상 “중요한 의미”가 드러나게 됨.
이러한 변화를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고, 이것이 유전암호의 텍스트를 변경시킬 수 있는 유일한 원천임.
순전한 우연, 오직 우연, 절대적이지만 또한 맹목적인 것에 불과한 자유. 이것이 진화라는 경이적 건축물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임.
7. 진화
우연적인 사건들이 일단 DNA 구조에 새겨지고 난 다음에는 기계적으로 충실하게 복제되고 번역 됨. 이는 순전한 우연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필연의 세계, 가차 없는 확실성의 세계로 가는 것임.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영역은 엄격한 요구가 지배하는 영역이며 모든 우연이 배제된 영역이기 때문임.
우연이라는 원천의 풍요로움
생명체의 복제 장치가 지니는 보수성은 거의 완벽한 것이므로, 하나 하나의 돌연변이는 개별적으로 볼 때는 극히 드문 사건임, 그러나 개체군의 차원에서 보면 돌연변이가 결코 예외적인 현상이 아님.
현재 약 30억(이 책 발행 시 1970년) 인구수 상황에서는 매 세대마다 1천억 내지는 1조에 달하는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추산 가능함.(포유류의 게놈은 엄청난 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
언어와 인간의 진화
....
8. 지식의 최전선
진화의 양극단에서 지식의 최전선이 펼쳐지고 있음.
즉, 생명체의 기원문제와 합목적적인 시스템 - 중추 신경계 - 의 기능에 관련된 문제
생명체의 기원 문제
최초의 유기체가 출현하는 과정
생명체의 필수화학 성분인 뉴클레오티드와 아미노산이 지구상에서 형성되는 단계
이들로부터 복제능력을 가진 최초의 고분자들이 형성되는 단계
복제능력을 가진 구조들 주위에 어떤 합목적적 장치가 구축되는 진화가 일어나고, 그리하여 원시세포에 이르는 단계
첫째, 지구상의 어느 한 시기에 어느 정도 용량의 물이 생체 고분자의 두 종류인 핵산과 단백질의 기본성분들을 고농도의 용해 상태에서 포함할 수 있었다는 것은 증명된 일로 간주 됨.
둘째, 원시스프의 조건 속에서 어떤 합목적적 장치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의 복제를 진척시킬 수 있는 고분자가 형성되어야 했는데, 이 어려움은 극복될 수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셋째, 복제능력을 가진 구조 주위에 합목적적인 시스템이 점차적으로 발생함으로써 하나의 유기체, 즉 원시세포가 구축되었어야 하는데, 우리는 원시세포의 구조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함.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세포 조차도 ‘원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멈.
지구상에 생명이 출현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같은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명의 출연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사건은 오직 단 한번만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즉 선험적 확률이 거의 0이었다는 말임.
현시점에서 우리는 생명이 지구상에 오직 단 한번 출현했다는 것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임. 따라서 생명이 출현하기 이전에 생명이 그렇게 출현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 거의 0이었던 것도 역시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음.
이는 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애초부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성향과 상충한다. 운명의 존재에 대한 이 진한 향수애를 항상 경계해야 함. 현대과학은 모든 내재성을 거부한다. 운명이란 그것이 진행되어 나가면서 쓰여 지는 것이지, 결코 먼저 쓰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은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즉 생명권에서 유일하게 상징적 소통을 위한 논리적 체계를 사용할 줄 알게 된 이 종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쓰여 있던 것이 아니다. 인류의 출현은 또 하나의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 그 자체로 모든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는다. 생명의 출현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출현도 역시 유일무이한 것이라면 그것은 인류의 출현 가능성이 거의 0이었기 때문이다. 우주는 생명으로 충만해 있지도 않았고, 생명계는 인간으로 충만해 있지도 않았다.
또 다른 최전선 : 중추 신경계
......
9. 왕국과 어둠의 나락
인간의 진화에서 작용하는 선택의 압력
수십만 년에 걸친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인간의 신체적 진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행동이 그저 자동적으로 행해지던 것을 넘어서 문화적 성격을 띠게 된 이후부터는 문화적 특징 자체들이 게놈의 진화에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가 죽 이어져 오다가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드디어 게놈의 진화와 완전히 동떨어진 채 저 혼자서만 계속 진화하는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신화적) 설명의 필요성
수십만 년 동안 인간 개인의 운명은 그가 속한 집단이나 부족의 운명과 하나였으며, 집단을 벗어나서는 개인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어떤 신화적 설명에 대한 요구, 존재의 의미를 찾아 헤매도록 만드는 불안, 이러한 것들을 조상으로부터 계승하게 되었다. 모든 신화와 종교, 모든 철학과 과학은 바로 이 불안으로부터 창조되었다.
이러한 강렬한 요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즉 유전암호 자체의 어딘가에 적혀 있는 것이다.
물활론적인 “옛날의 결속”의 파괴와 현대인의 영혼의 질환
현대 사회는 과학이 가져다 주는 힘으로 무장하고 또는 그것이 주는 모든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면서도, 여전히 이러한 과학에 의미 이미 그 뿌리까지 괴멸된 가치체계 (물활론적 가치체계) 에 따라 살고 있다.
사람들의 거부감은 실은 과학의 본질적인 메시지 자체를 향해 있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신성 모독, 즉 가치에 대한 파괴임. 이러한 두려움은 정당한데, 실로 과학이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에서부터 유물론적 변증법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활론적 전통들이 그들의 가치와 도덕, 의무와 권리 그리고 금기를 옹호하기 위해 의존하는 신화적 혹은 철학적인 개체발생기 전체를 과학은 궤멸시켜 놓는다.
가치와 지식
지식의 윤리
현대 사회는 과학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과학의 산물을 먹고 살면서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점점 더 많이 과학에 의존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가 물질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은 지식을 가능케 한 이러한 윤리 덕분이며, 정신적으로 허약한 것은 바로 이 지식에 의해 궤멸된 가치 체계에 여전히 의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은 치명적인 것이다. 우리의 발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둠의 나락을 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모순이다. 오늘날의 세계를 창조해낸 것은 바로 지식의 윤리이다. 그러므로 이 지식의 윤리만이 오늘날의 세계와 공존할 수 있으며, 일단 제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오직 이 지식의 윤리만이 오늘날의 세계를 계속 진화시킬 수 있는 참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식의 윤리는 또한 어떤 의미에서 “윤리에 대한 지식”이기도 하다. 즉, 생물학적 존재가 가진 충동과 정념, 그리고 그의 절대적 필요조건과 한계 등에 대한 지식인 것이다. 지식의 윤리는 인간에게서 어떤 동물을 본다. 결코 부조리한 동물이 아니라 이상한 동물을,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상함 자체에 의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그런 동물을 말이다. 지식의 윤리가 보는 인간이란 존재는 생명계와 관념(사상)들의 왕국이라는 두 개의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는 존재이며, 가슴을 찢어 놓는 이러한 이원론에 의해 고통받는 동시에 풍요로워지는 존재, 이러한 고통스러운 이원론을 예술이나 시, 그리고 사랑을 통해 표현하는 존재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물활론적 체계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들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성을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억제하기를 원했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동물적인 특징들에 대해 혐오감과 공포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물활론적 체계와는 반대로, 지식의 윤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동물적인 유산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을 격려한다.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자질들, 예컨대 용기, 이타심, 관용, 창조적 야망 등에 대해, 지식의 윤리는 이러한 자질들이 모두 사회적, 생물학적 기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보면서도, 또한 이들이 초월적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즉, 지식이 윤리 자신이 규정하는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들이 기여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지식의 윤리와 사회주의 이상
지식의 윤리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기초가 될, 합리적이면서도 동시에 결연히 이상주의적인 유일한 태도이다.
사회주의가 이제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1세기가 넘도록 자신을 지배해 온 저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데올로기를 ‘재점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폐기처분하는 데에 있다.
참으로 과학적일 수 있는 사회주의적 휴머니즘을 위한 진리의 원천과 도덕적 영감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과학 자체의 원천에서가 아니고 어디겠는가?
오직 이러한 지식의 윤리가 사회적, 정치적 제도들의 기초로서 받아들여지고, 또한 이 제도들의 참됨과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서 받아들여질 때만이 우리는 사회주의에로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왕국은 유토피아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적 모순을 가진 지리멸렬한 꿈은 아니다. 이러한 생각은 그것이 가진 논리적인 내적 정합성의 힘만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생각은 참됨(진정함)을 추구하는 탐구가 필연적으로 이르게 될 결론이다. 옛날의 결속은 깨어졌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있다.